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후회라고 하더군요
진정한 사랑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었죠
그리고 그걸 잃고 나서야 크게 후회했어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후회라고 하더군요.
검은 양복에 걸친 검은 타이를 한 손으로 만져대던 마이크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성 바톨로뮤 교회의 엄숙함에 주변 사람들도 흐느끼기만 할 뿐,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건 교회의 엄숙함 때문이 아니었다. 귀신처럼 검은 천들을 둘러싼 채 눈 앞에 놓인 관 하나와 그 앞에 놓인 웃고 있는 한 장년의 청년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마음 속으로 저마다 지은 상대의 호칭을 불러대고 있었다. 어떤 이는 실습실에서 받은 도움을 떠올리며, 또 어떤 이는 생에 처음 마주친 끔찍한 사건에서 도움 받았던 것을 기억하며, 또 어떤 이는 지리한 수사의 끝에서 그가 보여준 선행을 기억하며 그를 추억했다. 간혹 저 멀리 아프간의 한 낯동안 총격전 속에서 뛰어다니던 동료로서 그를 기억하던 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 관의 주인이 바라던 대로, 그가 가장 행복했던 고국 안에서의 시간을 추억했다. 그가 그 고국을 사랑하게 된 시점이 언제부터 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신부님의 말씀이 끝난 뒤 그의 누나가 그토록 원했지만 생전의 고인이 바라던 대로 성 바톨로뮤 근처의 공동묘지에 안치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이크는 여느 장례식처럼 바로 발길을 돌리기보단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물렀다. 길쭉하게 뻗은 메타세콰이어 사이로 불어오는 처량한 바람은 셔츠를 여밀만큼 쌀쌀했지만 그보다 그의 오랜 친구가 마지막 선택을 하면서 그 자신에게 떠넘겼던 쓸쓸하고 안쓰러운 기억들이 좀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전에 고인이 지내던 주거공간에서 그를 추모하며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야기를 하는 게 보통의 절차였으나 마이크도, 존의 가족들도 그럴 수는 없었다. 심지어 셜록은 장례식장에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신부님의 말씀이 이어지면서, 가족들이며 사람들 하나 하나 다가와 눈물의 키스를 건네면서, 하다못해 안치하는 그 순간에라도 와주길 바랐지만 냉정하게도 셜록은 털끝도 보이질 않았다. 마찬가지로 셜록은 221B를 그의 추모장소로 쓰고 싶어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연락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마이크는 그럴 수 없었다. 그토록 처절하게 바랐던 존의 뜻이 있었으므로. 하지만 셜록의 소식을 듣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존을 알고 있던 이들은 대부분 셜록도 알고 있었으니까.
"자꾸만 나를 존이라고 불러대서 나중에는 화까지 냈더니, 그래도 여전히 존이라고 부르더군." 레스트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들이켰다. 말해서 속 시원하다기보다는 씁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직도 그 회선을 해지 못한 거 있죠. 일주일에 주기적으로 연락이 50통 이상이 오면 해지할 수가 없대요. 그게 다 그 셜록이라는 인간 때문이에요." 해리엇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에게서 잠시 건네받은 핸드폰에는 늘상 존이 달고 다니던 셜록의 문자가 수백통이 와 있었다. 대부분은 어디에 있냐고 묻는 질문이었다. "왜 존은 그런 꼴통같은 놈하고 있었던 걸까요? 할 수만 있으면 조만간에 이 번호를 차단하고 회선도 해지해버릴까봐요." 그렇게 말하고는 해리엇은 다시 그 폰을 자신의 가방에 집어던지듯 넣어버렸다. 희한하게도 그 순간에 마이크는 해리엇의 눈과 존의 눈이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시신 옆에서 존이 죽지 않았을 경우에 대해 몇 번이나 이야기했어요. 조금 웃기죠?" 몰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다. 딴에는 농담으로 던지는 것이었거나, 혹은 분위기를 풀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마이크는 그에 응수하기 위해 작게 '허'하고 웃어보였다. "나중에는 제가 나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 말을 중얼거리더라고요." 몰리가 그렇게 말을 끝마칠 때에는 꽤 심각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슈는 신문에서였다. 존의 블로그가 뚝 끊기고,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나름대로 221B에 꽃다발이며 초를 밝혔지만 문제는 셜록이 자신의 활동도 멈춰버렸다는 것이었다. '충실한 친구'로서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책임감 없고, 제멋대로에 다분히 신경질적인 그 행동을 '재수없어 하는'사람들도 생겨났다. 사건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 재수없음을 감수하고 사건을 의뢰하는 자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셜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하루 종일 그 221B에 처박힌 채 해골하고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신장 검사를 하러 온 허드슨 부인이 해준 말에 의하면 전적으로 그러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존을 추모하고 있었다. 마이크는 존이 했던 말들을 조금씩 마음에서 읊조리며 그를 기억했고, 그가 가진 씁쓸한 사랑의 기억을 작은 서랍에 넣어두며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셜록이 그를 찾아온 것은 늦은 밤이었다. 마치 존이 처음 그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오러 찾아오던 날 밤처럼 어딘지 모르게 비가 온 뒤 개인 느낌이 들었다. 여차하면 마이크에게 몹쓸 소리라도 내뱉거나 주먹질이라도 할 것 같았지만 셜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몰골과 두 눈에 그 감정들을 모조리 쏟아부은 채로 마이크를 내려다보았다. 마이크는 머뭇거리며 문을 열어주었다.
셜록은 마이크가 차를 내올 때까지도 말 한마디 없었다. 결국 마이크가 그의 앞에 차를 내놓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자네가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고 해서 존이 살아있다는 건 아니야. 그건 자네도 알잖아."
셜록은 존의 이름을 듣자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의 눈앞을 감추고 있는 머리칼이 그 미동에 흔들리는 게 여실히 보일 정도였다.
"오지 그랬어." 마이크는 존의 죽음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는 대신 화제를 돌려버렸다. 셜록의 두 눈이 초점을 잃은 채 흔들렸다. "다들 자네 걱정 뿐이야. 요새 코빼기도 안 보인다면서."
"일은 이제 완전히 그만 둔 거야?"
셜록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알아야겠어. 이미 칼앤에릭 심리 센터에 연락도 해봤지만 자네가 아니면 말해줄 수 없다더군." 마이크는 그 시점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물론, 셜록이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 터다. 당연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시점의 일이 궁금해졌다는 게 어딘지 모르게 마음 쓰였다.
"대체 자네와 존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마이크는 잠시 고민했다. 존이 이걸 알려주길 바랄지 아닐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의 마음 속 절망 옆에 조금만 자리가 있었더라도 마이크에게 어떤 지침이라도 내려주지 않았을까. 그가 절망에 지쳐서 런던 한복판으로 뛰쳐나가기 이전에 말이다. 하지만 그래, 존이라면 그럴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뉘우치고 잘라내고 두려워할망정 능숙하게 숨기지는 못했으니까.
"얼마 전에..." 셜록이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에게 솔직히 털어놓더군. 나에게 '감정'이 있다면서."
그 이야기는 마이크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센터를 찾아가 최면 요법을 받기 전 날 밤. 존은 고주망태가 되어서 마이크의 사무실에 방문했다. 문고리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마이크는 순간 밖에 있는 사람이 침입자인 줄 알았다. 얼굴에는 타박상이, 주먹에는 작은 창상이 있었다. 꽤 오랜만에 보는 존의 좋지 못한 습관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이크가 아무리 물어도 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담 일자를 바꿔보는 게 어떨지도 물어봤었다. 하지만 존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사코 센터에 가겠노라 답했다. 상담을 받으러 가기로 한 이상 더 존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아 보여서 마이크는 그대로 존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배려했었다.
이제야 조금, 그 날 밤 존이 미친 듯 런던 거리로 뛰쳐나간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셜록의 반응은 불보듯 뻔하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존은 그 날 밤 셜록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고, 매몰차게 거절 당한 채 런던 거리 거리의 술집마다 싸움을 걸어서 자신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만큼 망가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목도한 게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으니 견딜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셜록은 이미 존이 가지는 감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마 그 당시만 해도 존이 어느 정도로 이 감정에 진실했을지는 몰랐으리라. 아니, 마이크 본인이 찾아가서 어떤 말을 한다고 한들 셜록은 들을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존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증명이었다. 마침내 사라져서야 보여줄 수 있는 증명.
마이크는 마음을 먹었다. 그는 존이 자신을 찾아왔던 날부터 그가 셜록의 일로 뛰쳐나가기 전까지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셜록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은 그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생경한 것이었다.
"그래서...결국 존의 꿈에 있던 남자는 누구였지?"
"그건..." 답은 단순한데 왠지 모르게 마이크 자신도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존 자신이었어. 결국 꿈 안에서도, 밖에서도 존은 자기 자신에게서만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거지.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가 꾸게 된 꿈 때문에 그가 자네를 향한 감정을 지니게 된 게 아닐까 하고.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반대였던 거야. 자네에 대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꿈을 꾸게 된 건 아닐까."
셜록은 그 말을 듣더니 잠자코 더 고개를 숙였다. 이내 쿨쩍 하는, 꽤나 볼품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전부야. 자네가 그토록 궁금했던 것들은 다 이야기해줬어. 이제 속이 시원한가?"
마이크의 마지막 말에 셜록이 고개를 들었다. 텅 빈 눈동자에서 쿨럭 토해내듯 눈물이 흘러내렸다. 연기로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감정이 밀쳐 올라온 것 같았지만 그 감정은 그렇게 솟아오를수록 셜록의 저변으로 침전하는 것만 같았다. 셜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이크는 대답해야 할 기분을 느꼈다.
"자네는 궁금한 게 풀리면 바로 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니까. 자네가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은 모두 알았잖아."
"그래." 셜록은 힘없이 입술 한 켠을 들썩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거지?"
"알고 난 뒤에 해야 할 게 남아서 그래." 마이크가 대답했다. 셜록이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왜 눈물이 흘러넘치는지도 알 수 없어졌다.
알고 난 뒤에는, 온전히 느끼는 것 뿐이니까.
그래, 그런 일을 해주던 남자가 있었다. 이제야 셜록은 조금씩 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가 그토록 매달리던 사건들을 정리하던 것도, 알 수 없이 짜증이 나던 것도, 아침에 일어나서 햇빛에 눈에 부실수록 세상에 대해 화가 나던 것과 매일 아침 놓여 있었던 찻잔 중 하나를 무심결에 깨트린 것도, 맞은 편 소파에 시선이 가던 것도, 손에 든 해골이 성에 차지 않아 저 멀리 바닥에 던져두었던 것도, 어떨 때에는 미칠 것만 같다가 이내 그 감정이 눈에서 쉴새 없이 흘러내리는 것도.
훌륭한 추리든, 허우대만 좋은 개소리든 그럴싸한 마술이든 그 앞에서 온전히 느끼는대로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졌으니까.
“밤이 되면…” 셜록은 갑자기 말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는 이제 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한 셜록 앞에서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밤이 되면, 나는 도망치듯 달려가던 그를 따라 달려가
뒤돌아 있는 그의 어깨를 힘껏 움켜쥐고는 그를 멈춰서.
아무리 흔들어도 돌아보지 않는 그의 귓가에 대고
흐느끼기만 하는 그 등을 붙잡고 내 사랑에 대해 말하지.
되돌릴 수 있을까,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그가 고개를 돌릴 때가 되면 다시 아침이야.
셜록은 말하다 말고 거의 정신을 잃을 만큼 오열했다. 그 찢어질 듯한 소리가, 눈물 떨어지는 소리가 소름 돋을만큼 쓸쓸해서 마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셜록을 안아주었다. 바깥 바람이 차가워서인지, 무심코 열어둔 창문 때문인지 때아닌 미풍이 두 사람을 한 바퀴 돌고 지나갔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