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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May 05. 2021

10일 만에 집 계약서 두 장이 생겼다

내일이면 또 이사를 한다. 이사를 한 지 불과 열흘 만에 말이다. 원래 살던 집보다 넓고 신축이라고 해서, 아기를 데리고 집을 또 보러 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고 해서, 단 한 번, 십 분정도 본 집을 덜컥 계약한 것은 아마 우리 부부의 실수였나 보다. 안방 옆의 작은방 강마루는 썩어가고 있었고, 그 정체 모를 냄새에 대해서는 빈집의 냄새겠거니, 청소를 하면 괜찮아지겠거니, 청소를 하고 나서도 냄새가 계속 났을 때는 도배를 새로 하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도배 기사님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벽지의 문제가 아니라 바닥의 문제라고 했다. 도배 기사님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무언가를 알아보는 동안, 나는 일하러 간 남편에게 긴급한 일이 생겼다며 카톡을 했다.  


대구 시내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큰 공원도 근처에 있고, 시장도 멀지 않아서 입지가 괜찮은 편이라고, 월세도 이만하면 적당하다고 우리 부부가 입을 모았던 이 아파트는, 시공 단계에서 시멘트 위에 강마루를 설치할 때 본드가 채 마르기 전에 시공을 하는 바람에 마루가 썩어 들어가는 일이 몇 년 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완공 후 건설사에서 제공한 보수 기간에 보수신청을 한 세대들이 많은데, 이 집은 시기를 놓친 것 같다면서, 전에 살던 사람은 어떻게 이걸 모를 수 있었냐고 하면서, 도배 기사님은 고개를 저었다.


나와 남편은 곧장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완강하게, 바닥이 썩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도배 기사님도, 아마 거의 그럴 확률이 높다고 추측할 뿐이지 바닥을 뜯어보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전문가가 온다고 하더라도 확신할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도배 기사님은 벽지를 고치러 온 집에서 일은 못 따내고, 마루 기사님 명함 하나만 남겨 놓고는, 그렇게 떠났다. 도배 기사님의 양심 발언에 대해서는 지금도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집주인이 바닥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완강한 태도를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우리 집에 와보지도 않았다. 자기가 상태를 아는 집이니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결국 집을 중개한 부동산에서 대신 찾아와서 방 냄새를 맡아보더니 여기서는 사람이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집주인에게 자기가 한 번 더 설득을 해 보겠다고 나섰지만, 집주인은 그쪽에게도 계속 화만 냈다고 했다. 거의 그렇게 며칠 간을 집주인에게 마루를 고쳐 달라고 말하고, 한편으로는 마루 시공비가 얼마인지 알아보면서, 거의 일어나서 하루 종일 어디엔가 전화를 하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아기를 보다가 쓰러져 잠에 드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집에 남아서 마루를 사비로 수리하고 집주인에게 청구를 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집주인은 우리에게 꼭 이 집을 고집해야겠냐면서, 그냥 다른 곳으로 이사를 나가면 안 되냐고 말했다. 남편은 그 통화를 녹음해서는, 보증금을 안 돌려주는 상황이 제일 골치 아픈 상황인데 먼저 나가라는 말을 들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면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나가자고 했다. 그 편이 아무래도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거실과 주방의 마루도 아주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다시 새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동안 아이는 서재로 쓰려고 했던 작은 방에서 이불을 깔아 놓고 자고, 어쩔 수 없이 고양이가 그 냄새나는 방에 있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고양이를 돌보러 그 방 안에 들어갔다. 약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아이와 놀아주고, 재우고, 분유를 먹이고, 빨래를 하고, 아, 샤워를 하는 것조차 벅찼다. 아주 오랜만에 생리 주기가 이상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겪고, 내일이면 이사를 간다. 정말로 더 좋은 집이고, 이름을 대면 정말 거기로 이사를 가냐는 소리를 들을 만한 아파트라, 남편은 거기서는 그런 자잘한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남편이 나와 아이를 지켜주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 이런 일을 다시는 겪게 하고 싶지 않고,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 돈이야 벌면 그만이라면서, 청소야 하면 그만이라면서, 남편은 지금도 이사 갈 집에 혼자 청소를 하러 갔다. 나는 아이를 재우고, 내일이면 떠날 이 집과 고요히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열흘 전에 쌌던 이삿짐이 박스채 그대로다. 짐도 풀지 못한 채 열흘을 살면서 몇 개의 옷만 돌려 입고, 요리도 잘 해먹지 못하고, 아이 앞에서 웃는 데에도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을 내야 했다.


이런 시간이 지나고 내일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날 거라고, 그렇게 이런 고생들은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갈 거라고,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돈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물론 하나의 에피소드이고, 우리 엄마는 마루가 썩어 들어가는 집이 어디 흔하겠냐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삶은 어쩌면, 뜻 모를,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것이니, 언젠가 이 열흘 동안 느낀, 처참하고, 아이에게 미안하고, 과거의 선택이 후회스러워서 시간을 돌리고 싶은, 이런 감정을 비슷하게 다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모든 감정들이 하나의 체험처럼 느껴진다. 남편은 새 아파트에 가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고, 나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말이다.


이 하나의 마음에 대해서 쓰는 동안, 또 하나의 저녁이 지나간다. 아이는 결국 저 작은 서재에서 자는 것에 어느 정도의 적응을 했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새로운 방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 가며, 새로운 벽지와, 새롭게 펼쳐진 창 밖의 풍경과, 새로운 전등 모양을 눈에 부지런히 담겠지. 부모의 작은 실수가, 집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이사를 온 실수 때문에 내 아이가 무언가에 더 수고스럽게 적응해야 하고, 힘을 들여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유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연결된 것이 가족인 것도 같다. 떼려야 땔 수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는, 나의 실수가 당신의 피해가 되고, 당신의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되고, 내 노동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다. 그런 것이, 더 좋은 집이라고 해서 어디 달라지겠는가. 이사를 해서 다른 집 안에 담기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내뿜는 고유한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건 내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마음 하나가 달그락거린다. 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돈과는 상관없는 모양으로.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나는 내일의 이사를 준비해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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