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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Nov 01. 2024

사람을 믿기 어려워지는 직업

교도소 인턴 일기

"저 사람 왠지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어, 좀 그렇게 보인다. 근데, 우리 와이프가 원래 이렇게 사람 못 믿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많이 바뀌었네?"


요즘 남편과 뉴스를 볼 때면 나의 내면이 조금 변화했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을 잘 믿지 않게 된 것이랄까, 의심이 많아진 것이랄까. 사람을 잘 믿고 의심하는 것을 피곤해 하던 나였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그의 내면에 숨은 다른 마음은 없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대뜸 의심부터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 내면에는 그렇게 숨은 마음들이 있지,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어떻게든 치장할 수 있지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일 뿐.


남편과 연애하던 때에는 사람에 대해 의심을 내비치는 그의 모습에 "오빠는 왜 그렇게 의심이 많아? 사람의 부정적인 면부터 먼저 보는 것 같아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그에게 말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그는 "매일 수용자들을 만나니까 사람을 볼 때 의심부터 하게 되네"라고 답했다. 교도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에게는 누군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하루에도 숱하게 의심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많았을 터였다. 어느 때에는 믿고 싶었고 믿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의 말이 거짓인 것을 알았을 때, 그 실망감은 생각보다 더 후폭풍이 셌었다고. 

교도관은 수용자들을 감시하고 교화하는 일이 주요한 역할이다 보니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들은 구속된 이후부터 판결이 난 이후 형집행까지 수용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다. 수용자가 아프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아픈 것인지 병원을 나가려고 꾀를 부리는 것인지 의심부터 해야 하고, 매일 판사에게 반성문을 제출하는 수용자가 실상은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지켜봐야 하며,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입소하는 수용자를 마주해야 하는 일. 남편을 비롯해 내가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보고 들은 교도관들의 일이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기 쉬운 직업이었다.


교도관인 그와 연애한 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8년인데, 내가 직접 이곳에서 이 직업을 곁에서 지켜보기 전까지는 그의 그런 의심들을 '그럴 수 있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인턴으로나마 구치소를 경험하게 된 이후에는, 나 역시 사람에 대한 의심을 본격적으로 품기 시작했다. 겁이 많아졌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수많은 수용자들의 판결문을 보면서 느낀 것은, 범죄는 생각보다 항상 더 가까이에 있으며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뉴스로만 보던 사건들을 판결문으로 마주하는 일은 범죄의 정황들을 더 가까이에서 속속들이 알게 되는 일이어서 어떤 때에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나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들도 많았다. 접하는 사건들이 쌓일수록 사람을 보는 내 시선도 함께 변해갔다.


인턴인 나는 수용자들을 마주하지 않는데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들을 직접 마주해야 하는 교도관들에게는 그 생각들이 얼마나 깊게 자리했을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온 사람이라도, 일과 사람에 치이다 보니 '교화란 가능한 것일까'를 매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 교정의 실상이다. 남편과 함께 구치소에 출근하면서 교정의 실태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범죄와 사법제도에 대해서 가끔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때마다 말하는 것이 있다. 사람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는 늘 고민되지만, 그 고민이 시작되기 전에 의심이 먼저 시작되는 건 어쩔 수 없어진 것 같다고. 이전에는 그 의심을 두고 이전에는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부정적인 게 아니라 주의를 한번 더 해본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남편의 일터인 구치소에서 함께 하면서 그의 시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대화를 할 때에도 그가 말하는 것들을 조금 더 빠르게 캐치해낼 수 있어진다. 다행히 나도 그 변화가 꽤 마음에 든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진 만큼 내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더 얻은 느낌이랄까. 교도관인 남편과 그의 동료들을 곁에서 볼 때마다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는 것, 그러면서 내 시선도 함께 변화해가는 것이 신기하고도 흥미로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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