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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Dec 28. 2023

누군가를 존경할 수 있다는 마음

박미옥, <형사 박미옥> / 이야기장수


박미옥, <형사 박미옥> / 이야기장수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말을 쉬이 하기는 어렵다. 멋있는 사람은 많지만,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길이 나지 않은 곳에 몸소 길을 만들어내면서도, 자신의 일에 대한 올바른 신념을 지니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더 말을 보탤 것도 없이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 전설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형사 박미옥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그에게 찾아가 그 말을 건네고 싶었다.

"이제 나는 이미 현장이 된 사람보다 현장이 되기 이전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다가왔다. 그 많은 범죄자들을 만나면서도 어떻게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내내 생각했다. 그에게는 형사로서의 일이 '범인'을 잡는 일이라기 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인 것 같다. 우리는 어떤 범죄 사건을 뉴스로 접하면서 그 범죄의 흉악성에 대개 집중한다. 그 사건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의 편견들이 부서지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가 설령 범죄자일지라도, 누구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의 오래된 상처를 들여다 보면, 피와 눈물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수 있음을.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더는 이런 일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풀어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까지도.

박미옥에게는 여형사로서 늘 편견과 싸워야 했던 시간들이 길었다. 자신이 세운 기록들을 스스로 갱신하고 있는 동안에도 여형사라는 존재를 낯설어하던 사람들. 그들에게 박미옥은 자신의 업적으로 대답했다. 더 말을 보탤 것도 없이 자신은 '형사 박미옥'이라고. 어디서나 당당할수 있던 그의 태도는 어쩌면 나지 않은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한 사람의 숙명이었던 게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멍해지기도 했다. 이름만 들어도 국민 모두가 아는 사건들을 해결했던 그의 뿌리에는 자신과 같은 여형사들이 더는 그런 질문을 받지 않게 하겠다는 책임감도 있지 않았을까.

그 많은 현장들을 만나고 범인들을 잡아온 그의 이야기는 모두 '형사 박미옥' 자신을 향하고 있다.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를 보며 내가 해온 일들이 나를 향하는 삶이 되려면 어떤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 발자취들을 돌아보며 스스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나의 뿌리에는 어떤 것들을 심어두어야 할까. 오랫동안 사람으로서 존경할 수 있는 누군가를 책에서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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