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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May 07. 2024

거제에서 살면서 변한 것 (1)

어디서든 살 순 있다고

거제에 살게 되면서 변한 것이 꽤 많은데, 가장 큰 것은 어디에서든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대구에서 나고 자랐던 10대 시절의 나에게는 언제나 서울은 대학교만 가면 꼭 살겠다는 도시였고, 끝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에는 드디어 나도 TV에서나 보던 곳들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꽤 설렜다. 대학교 때에는 대학 생활을 서울에서 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지만, 직장을 다니게 되고 결혼을 생각하면서는 여느 누구나 그렇듯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결국 경제적인 면이나 당시 내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지였던 경기도에 집을 마련했다.

그렇게 대구에서 19년, 수도권에서 13년을 살며 도시에 익숙했던 내가 남편을 따라 거제로 오게 되었다. 남편 역시 경기도에서 평생을 자랐던 터라 평생 도시에 살았던 둘이 거제에 오게 된 것은 아주 큰 변화구였고, 그 변화들을 이제 4개월 차인 지금까지도 매일 느끼면서 살고 있다. 매일 자기 전 누워서 얘기할 때나 운전을 해 다닐 때마다 얘기하는 도시와 이곳의 다른 점들은 우리의 생각까지 꽤나 많이 변하게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건 교통이었다. 도시, 특히 서울에서는 막차가 12시가 넘는 시간에도 있었기에 생활하는 시간대가 많이 달랐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에도 막차가 있는 시간까지가 헤어지는 시간대이기도 했고, 그렇다보니 가게들도 그 시간까지 운영하는 곳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래도 가게와 상점들이 그만큼 있지 않은 탓인지 거리 자체도 저녁 8시만 되어도 어둡고, 9시가 넘으면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그에 맞추어 생활을 하다 보면 귀가 시간도 자연스레 당겨지게 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도시에서 지내던 때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줄어들기도 한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시내 쪽으로 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10대도 안 되어서, 되도록이면 운전을 하는 것이 몸이 편하다. 12년 동안 장롱면허였던 내가 운전을 배우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버스 정류장과 정류장 사이가 멀기도 하지만, 그 사이의 길들이 차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라 걷기에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운전을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걷는 시간이 줄어들어 운동을 애써 시간내어 하지 않으면 운동량도 굉장히 줄어든다. 그래서 운동을 다니려고 알아보았는데, 이 부분에서도 변화가 느껴졌다. 남편과 나는 무에타이나 킥복싱과 같은 격렬한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체육관이 우선 집 근처에 없어 차로 다닐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니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애초에 선택을 하려 했던 것이 우리의 오산이었을지도. 차라리 이리저리 알아보면서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게 장점이라 생각하며 다닐 곳을 점찍어두었다.

이렇게 살다 보니 편한 것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할 때, 선택지를 많이 두고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나름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또 바쁘게 살아야한다는 강박이 있던 둘이었는데,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 먹고 잠시 산책가는 그 정도만으로도 하루가 꽉 찬다는 것을 느껴보며 삶의 여유가 생겨났다. 조금 더 게을러진 건 있는 것 같지만, 그 여유를 몸에 조금씩 묻혀가며 우리만의 리듬을 찾고 있다.


언젠가 다시 어디론가 발령이 날 그이기에, 이렇게 살아보니 둘 다 함께 얘기한 것이 있다. 어디에서든 살 순 있겠다는 것. 집을 보러 갈 때 어떤 건 있으면 좋겠고, 어떤 위치에 있으면 무엇이 편하고 등을 따지기 마련인데 도시와는 조금 다른 이곳에서 살다보니 그런 시설들이 있으면 물론 편하겠지만, 없다 해도 아주 불편하게 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디에 살든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라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룬다는 건 사는 곳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겠다는 것.


때때로 이곳에서의 삶이 지루할 때도, 도시가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살 때의 빡빡한 일정들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던가 싶을 만큼 지금은 지금대로 또 편안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곳과 저곳 모두 우리가 적응하고 마음 먹기 나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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