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행복보다 사소한 행복
저번 '거제에서 살면서 변한 것 (1)'을 며칠 만에 7천 명이 봤다는 푸시가 울렸다. 혼자 쓰고 혼자 쌓아가는 글이지만, 그럼에도 읽어주는 이가 있다면 감사한 일. 아무래도 서울, 아니 도시 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그곳 밖에서의 삶은 어떤가, 살만한가 하고 읽어보셨지 않을까. 살던 곳을 벗어나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먼저 앞설 테니까. 더군다나 '서울 공화국'인 한국에서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소외감이 느껴질만한 요소가 다분하기에, 도시를 벗어난 삶을 산다는 건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거제에서 살기로 하고 나서 가장 많이 다짐했던 건 '여유롭게 살아보자'였다. 물론 도시에서만큼 일자리가 많지는 않아서 지갑은 얇아지겠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기는 만큼 정서적인 여유는 빼앗기기 마련이라는 생각이었다. 돈을 아끼는 건 남편과 나의 생활과 소비 패턴이라면 가능했다. 크게 가리는 음식이 없으니 집에서 만들어먹어도 좋았고, 카페보다 더 좋은 바다뷰의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카페에 갈 일이 없어졌고, 만나는 사람이 줄어드니 옷이나 화장품을 살 일도 거의 없어졌다. 쉽게 말해 물욕이 많이 사라지는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도시에 살면서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고 만나야 하는 사람도 많아서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을 생각해서라도 해야 하는 것들이 꽤 많았다. 나에게 집중된 삶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맞추어 사는 삶이 먼저였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해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싫다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시간들이 나와 남편 두 사람이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랐던 것. 연고 없는 도시에 와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부부로서 '우리'로 살다 보면 서로가, 또는 각자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때에 행복을 느끼는 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정말 별 것이 없다. 맛있는 음식을 상에 두고 TV를 틀어놓고 웃고 떠들다가 누웠다가 얘기하는 것. 그러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드라이브 겸 나갔다가 산책하고 오는 것. 또 내가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맞추어서 그가 무얼 좋아할지 고민하며 저녁을 만들고, 그가 도착해서 '내가 왔다!' 하고 나를 안는 것. 지금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고, 다행히 이런 여유들을 누릴 수 있으니 온전히 즐기자는 마음으로 이 모든 순간들을 행복으로 치환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다고. 언젠가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그때 조금 여유가 없어지더라도 그때 나름의 행복을 또 찾겠지 하고.
이전에 내게 정서적인 여유가 없을 때에는 행복해지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들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어렵게 티켓팅한 공연, 손꼽아 기다리는 여름 휴가, 웨이팅이나 오랜 예약 끝에 성공한 음식점으로의 방문, 혹은 몇 달 간의 노력 끝에 만든 몸으로 바디프로필을 찍는 일이라던가. 매일의 사소한 행복보다 어떤 특별한 이벤트들을 통해 행복과 삶의 이유를 찾았던 때의 나는 '지금만 조금 버티자'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 때에도 물론 하루하루의 조그만 행복들을 찾았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매일의 지금을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 것.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리워할 지금의 여유들을 몸에 아로새기며 한껏 누리자는 것.
그렇게 살아도, 꼭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살아가는 방법은 또 있더라는 것을 우리는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도시에만 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인생의 가치들은, 생의 발견들은 또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킬지 모르겠지만 여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겠다는 마음만은 그대로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