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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May 28. 2024

시어머니를 꿈에서 만났다

어머님을 보내고 난 후

남편과 만난지 1년 반 남짓 지났을 때,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던 날이었다. 근무 때가 아니면 그래도 연락이 잘 되던 그였는데 그날따라 연락이 너무 안 되어서 전화를 여러번 했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어렵사리 연락이 되었을 때에는 어머님이 쓰러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와의 연락이 더 어려워졌고, 나는 쓰러지셨다는 말만 들었던 터라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어 속이 타기만 했다. 그때의 나는 또 더 어렸기에 연락이 되지 않는 내 입장만 생각한 채 무슨 일인지 알려달라, 전화라도 해 달라며 그를 보채기 바빴고, 위중했던 그 순간에 그를 더 힘들게만 만들었던 나였다.


그날 이후로 어머님과의 대화는 할 수 없었다. 가끔 눈을 뜨시거나 기침을 하시기는 하지만, 의식이 있으셨던 것인지 알기 어려웠던 채로 시간이 흘렀다. 그의 가족들은, 그러니까 지금 나의 시댁 가족들은 그런 어머니, 아내를 정성껏 돌보셨다. 병의 세월이 길어지면 가족 간에도 싸움이 나기 마련일 텐데, 나의 시댁 가족들은 힘들지만 그런 서로를 보듬으며 묵묵히 긴 세월을 견뎠다. 매번 대단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매일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하시면서 어머님 곁에서 항상 돌보시는 아버님은 '아이구 예뻐, 우리 마누라'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좋은 말을 해 주면 어머님도 알아듣고 행복해하실 거라면서. 결혼 할 때보다 살아가면서 아내가 더 사랑스러워졌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었다. 이건 어떤 사랑인가 하면서.

묵묵히 어머님을 보살피던 아버님께로부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고. 멀리 살게 된 우리는 서둘러 갈 준비를 했다. 언젠가는 예견 된 일이었지만 그 날이 왔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서서히 마음을 정리해왔던 가족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세월만큼 기적을 바라는 마음도 조금씩은 자라났기에 그 마음들이 한번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남편이 다리를 다쳐 초보 운전이지만 내가 운전을 해 보겠다고 나섰는데, 사실 어떤 정신으로 운전 3개월 차인 내가 안양까지 운전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별 다른 말 없이 갔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떤 말도 지금은 필요치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실 나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전화 너머에서나 들었지, 쓰러지시기 전 어머님을 뵌 적이 없었기에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남편에게 어머님을 진작에 한 번 만나보지 않았던 것이 많이 후회가 된다고 하자, 남편은 오히려 그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많은 두 사람이 서로 정이 생겼던 상태에서 어머님이 떠나시게 된다면 그건 더 슬플 거라고,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지금이 서로에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진짜일까. 그래도 나는 어머님과의 대화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던 것이 지금까지도 못내 아쉽다. 어머님을 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어머님께 제가 당신의 며느리라고, 당신의 아들을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당신의 아들과 평생 재미있게 살겠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만 같아서.

그렇게 인사를 했던 게 마음에 계속 걸려서였을까, 어젯밤에는 어머님과 여느 시어머니와 며느리처럼 일상을 보내는 꿈을 꾸었다. 어머님께서는 내게 같이 장 보러 가자며, 너가 좋아하는 수박 사러 가자고 하셨고 나는 남편에게 태워다 달라고 말했었다. 일상일 뿐인데 꿈에서 만나야 했던 것이 슬펐지만, 꿈에라도 찾아와 주신 어머님께 감사했다. 그래도 당신의 아들과 살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고 계신 것 같아서. 그 인사를 하러 오신 것 같아서. 이제 더는 마음에 걸리는 일 없이 남편과 행복하게 살 생각만 하라는 말씀 같았다.


오랫동안 아픈 채로 고생하셨던 어머님, 이제 당신의 아들도, 딸도 각자의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니 지켜봐 주세요. 잘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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