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롱할영 May 31. 2024

바다 곁에 사는 기쁨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거제에 처음 옮겨 왔을 때는 겨울이었다. 바다가 지천에 있는 지역이라 주말이면 바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비수기라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해수욕장이라 해도 우리가 알고 있던 분위기를 내는 곳은 없었다. 겨울 바다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청량한 바다의 느낌은 역시 겨울 바다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것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우리가 있는 이곳 거제가 어떻게 변할지 겨울부터 기다려온 우리였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집 앞 해수욕장에도 사람이 조금씩 더 많아지고 있었다. 아침에 내다보아도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게 보이고, 특히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놀러 온 가족들이 모래성을 쌓다가 바닷물에 들어갔다가 바다를 완연하게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우리가 그려온 바다의 모습이 제법 갖춰지기 시작했다. 특히 집 앞 바다는 해질녘의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라, 그 즈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일몰을 바라보며 캠핑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시 바다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어줘야 바다의 맛이 난다. 활기로워진 바다에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맛도 있으니까. 


남편이 다리를 다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걷기에는 무리여서 이맘 때부터 바다를 알뜰하게 누리며 살아보자던 우리의 계획은 조금 미뤄졌다. 그도 거제에서의 여름을 기대하며 캠핑 의자와 차박 용품들을 조금씩 사 모았건만, 당장 이번 여름에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매번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름은 꽤 길어서 괜찮다는 말을 했지만,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시작 되기 전인 지금이 바다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서로 알고 있으니 아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다고 바다를 집에서만 볼 수는 없는 것. 집에서 바라보기만 하기에는 이 계절과 날씨가 아깝다며 목발을 챙겨든 남편이 차에 시동을 걸라고 말했다. 햄버거라도 사서 바다 앞에서 먹자고. 차박까지는 못해도 차크닉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최근 큰일을 치렀던 우리에겐 이 차크닉까지도 소소한 행복이 되리란 걸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날은 흐릴지라도, 바다를 거닐 수는 없어도, 바다 앞에 나와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기분에 작은 파랑이 일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여름 해변 노래도 같이 틀었다. 집에만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꽤 다운되어있던 터라 이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종종 이렇게 멍하니 바다를, 바다의 사람들을, 모래사장을 바라보고 있자고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바다를 누리는 일 뿐이라고. 


1시간도 채 있지 않았지만, 일상을 여행하듯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것이었구나를 다시 느꼈다. 우리의 하루를 행복한 날로 기억되게 하는 것은 하루에 1시간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행복한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면, 그 꿈을 만들어가는 건 매일의 찰나라고. 기쁨의 순간들이 쌓이면 언젠가 행복으로 덧입혀질 거라고. 함께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 기억들을 함께 추억할 사람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것이 지금 내 옆에 있는 당신이라서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이곳에서의 여름을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해보자고. 

이전 17화 시어머니를 꿈에서 만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