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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효과

by 노용우

릴스나 숏츠를 보다 보면 동기부여 카테고리의 영상이 많이 나온다. 나는 처음 그것을 봤을 때 너무 좋았다. 실제로 영상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몸을 움직였다. 헬스를 했고, 방에서 팔굽혀펴기를 했고, 턱걸이를 했고, 러닝을 하러 나갔다. 이것이 벌써 5년 전이다. 20대 초반에 나는 저런 것들을 주위에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언어적 습관도 긍정적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20대 중반이 되었고, 더는 동기부여 카테고리의 영상들에게 영향받지 않는다. 이제 질렸다. 지긋지긋해져 버렸다. 자꾸 나의 인생을 더 더 더 날카롭게 만들어 칼을 갈고 갈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다. 솔직히 이제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을 지켜내는 것에도 적지 않은 힘이 들어간다. 여기서 또? 더? 못하겠다. ‘나는 이제 못하겠어’를 외치고 성장을 그만둔 지 1년 정도 되었다. 몸도 움직이지 않았고,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책이나 도움 된다고 생각하는 팟캐스트들을 끊어냈다. 이렇게 살기로 마음먹은 처음에는 엄청 좋았다. 모두가 공원을 빙빙 돌며 러닝을 할 때, 나는 한걸음 떨어져 공원 벤치에 앉아 타코에 맥주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더는 저렇게 기를 쓰며 살지 않아”라고 혼자 자위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름대로의 우월감에 빠졌었다도 고 말 할 수 있다. 얼마 지나니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싫어하던 사람.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서 현실을 보지 못하고 과거 속에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미련하게도 나는 내 머릿속 소리를 무시했다. 그렇게 계속 멈춰서 지냈다. 나는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라는 말에 빠져서 살았던 거 같다.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라는 말은 재수생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인데, 수험생의 고등학교 3학년 신분에 공부가 하기 싫어서 저 말을 믿어버린 것처럼. 나는 변명하고 도망쳤다. 이제 다시 힘들어봐야겠다. 멈춰 있는 건 없는 거 같다. 존재하는 것은 두 가지. 성장. 아니면 퇴보. 그때부터 미련하게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공원을 돌던 쟤들은 지금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벤치에 나와 나란히 앉았던 그들은 지금 뭐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소문에는 길거리에 내앉았다고 하기도 하고, 지인들과는 연락이 완전히 끊겨서 실종됐다는 소문도 있다. 지금 다시 공원을 돌기로 마음먹으면 엄청난 땀을 흘려야 할 걸 안다. 그게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무서워서, 또 겁먹어서 여기에 앉아 있으면 벌어질 일들이 더 무서워지기 시작하다. “비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던 나였는데, 이젠 그렇게 나쁘기만 한건 아닌듯하다. 상대방과 비교하고 나의 인생이 초라해 보인다면 상대방을 따라가기 위해서 나의 삶을 나아지기 위한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방과 비교하고 나의 인생이 초라해 보인다고 상대방의 인생을 깎아내는 것이 좋지 않은 것이지.

이제 다시 인정하고 나아가야겠다. 내 인생이 구렁텅이에 빠져버려 완전히 X 된 건 아니지만,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충분히 나아질 기미가 있고, 괜찮아지려면 다시 걸어야 한다. 그렇게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야 한다. 이젠 다시 뛰어야 한다. 나의 땀 냄새와 겨드랑이와 등 가슴에 난 땀이 옷을 적셔도 그런 거 따위는 상관 쓰지 말고 다시 뛰어야 한다. 온몸이 젖도록. 옷이 전부 젖어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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