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살바에 죽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몸은 생기를 잃었고, 정신은 녹아버려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집에서 나와 출근을 했고 간신히 회사에 도착하고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와 또 같은 잠에 빠지는 게 나의 지난. 6개월간의 일상이었다. 지속해 오던 운동은 수많은 핑계를 대가면서 정신을 세뇌시켜 합리화하는 길에 이르렀고, 머리와 정신은 계속해서 추락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머릿속으로는 “이제 그만할래”를 계속 되뇌었다.
드라마틱한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지구가 종말 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 내 주변 인물이 떠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 밤이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정확히 일주일 전. 나는 다시 살고 싶어졌다.
운동을 했다. 6개월 만에 심장이 뛰었고, 몸 안에 공기의 흐름을 고막으로 들을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방치됐던 엔진을 가동시킨 다음날 아침 나는 반가운 근육통을 마주했다. 이 녀석이 참 반가웠다. 몸이 아픈데 속으로 ”그래 이거였지… 맞아 “하며 얼굴엔 미소도 뗬다. 그리고 또 운동을 하러 나갔다. 나의 온몸이 움직이는 것을 거부했다. 동작을 진행할 때마다 몸에 붙은 근육들이 소리 질렀다. ”미친놈아 쉬어야 한다고!! “ 나는 답했다. “살고 싶어, 다시 살고 싶어.” 아픈 몸을 움직이기를 끝내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을 때쯤 근육들이 다시 말을 걸었다. “고맙다.” 이번에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나는 목표 같은 걸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 꿈도 없다. 학창 시절 꿈을 적어내라는 가정통신문을 가져가면 부모님께 드리고 나서 다음날 아침 식탁 위에 있는 종이를 챙겨 학교 조회시간에 가정통신문을 다시 수거하겠다는 선생님에 말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나는 꿈을 적어내곤 했다. 진짜 뭘 하고 싶은지를 적는 게 아닌 그냥 그저 그런 꿈. 그럴싸해 보이는 꿈. 납득이 갈만한 꿈. 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잘했으니 축구선수를 적어냈었고, 중학교 때는 축구선수를 하기에는 늦은 나이라 눈치 보며 적은 ”체육교사“라는 직업이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따라와 나는 결국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시작할때쯤 체대입시를 준비했다.
꿈이 없으니 목표가 없었다. 목표가 없으니 동기가 확실하지도 못했다. ”수능“이라는 주어진 목표가 있는 고등학생의 생활과 “국민의 3대 의무”라는 군생활, “취업”이라는 대학 생활이 끝나자 나는 동기 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동쪽에서 동풍이 불어오면 내 몸은 서쪽으로 날아갔다.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날아갔다.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나는 민들레 홀씨라고 믿었었다. 언젠가 나도 뿌리내려 꽃을 피울 것이라고, 그게 설령 아스팔트 위일지라도 나는 생명력 깊숙이 회색 바닥에 노란 꽃을 보이겠다고.
이제야 마침내 그 꽃이 폈다. 더 정확하게는 필 준비를 하고 있다. 눌러앉을자리를 잡았다. 이제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꽃이 필 것이다. 하고 싶은 게 있다.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지 않겠다. 안되면 내년에 올해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도전하겠다. 하지만 적당히 하겠다는 건 아니다. 목숨을 걸어 한 발 내딛겠다.
평소에 잠들기 어려워 새벽을 깊게 마시고 자곤 했었던 내가. 어제는 앞으로의 일어날 일들이 설레서 잠을 설쳤다. 잠에서 깨어나 생각했다. “나 다시 살 수 있구나, 나 지금 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