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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할 대상의 중요성

by 노용우

외롭다. 공허하다. 공하고, 허하다. 겨울이면 항상 외로움을 느껴왔다. 아니 가을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관계없다. 나의 외로움이란 사랑의 영역이 아니다.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나의 외로움은 충족되지 않았다.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었던 내 강아지도 나의 외로움을 채울 수는 없었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날이 조금이라도 추워지면 나는 항상 정신을 못 차렸다. 이번 가을의 회피 방법은 알콜이었다. 술을 마실 수 있을 때마다 술을 마셨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일어나 전날을 저주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시작한 나에게 보내는 저주는 부정과 분노, 우울을 거쳐 퇴근할 때쯤이면 또다시 타협에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방 안에 의자에 앉으면 수용이 머리에 스며들어 카드를 주섬주섬 챙겨 또 편의점으로 가게 되는 것이 나의 가을이었다. 작년도 그랬고, 재작년도 그랬다. 학생 때는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주위에 누가 계속해서 있었으니 괜찮았을 것이다. 항상 혼자가 문제다. 가을이 전조증상이었다면. 가을을 보내고 맞이하는 겨울은 클라이막스가 나올 차례였다. 그러니 다가오는 봄은 감동의 여운을 느끼는 외로움이 스몄고, 여름이 돼서야 뜨거운 햇살을 피하러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나의 계절이었다. 그래. 지금은 겨울. 이미 나의 계절의 클라이막스는 시작되었다. 사람들과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부터 나는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혼자 있으면 힘들기에 만남을 길게 유지한 탓에 집으로 가는 길에는 항상 어둠이 깔려있었고, 추운 바람만이 내 볼을 부비고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길을 달려 도착한 집이 싫어졌다. 추위도 많이 타는 놈이 그래서 밖으로 내 돌아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 또한 짧았다. 오후에는 잠깐 영상까지 온도가 올라가는 일이 있었으나 그 순간이 짧아서 더욱 외로워졌다. 가을에 치료제는 술이었지만 지금은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눈 떠보면 겨울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치료제가 없어서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계절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그 치료제를.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에너지를 모두 발산해 버릴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 했다. 그것이 게임은 아니었다. 조금 더 건국적인 것. 그것을 찾고 나면 나는 그제야 조금 나아질 거 같다. 전력질주하고 싶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마음껏 화내고 싶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어쩔 때는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싶다. 팔을 공중으로 콱콱 돌리고 싶고 다리를 땅땅 박으며 진동을 일으키고 싶다. 내 심장 소리와 숨소리를 동시에 듣고 싶다. 엄지부터 새끼까지 관절 하나하나 저릴 정도로 힘에 부쳤으면 좋겠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다시 보거나 두 번 보면 왠지 모를 연민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고 싶다. 귀가 터질 정도로 고막이 울리고 손을 가져다 대면 고막의 진동과 손바닥의 저림이 동일했으면 좋겠다. 나의 속을 알아봤으면 좋겠다. 나에게 감동받았으면 좋겠다. 나의 감정이 너의 감정과 같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술이었으면 좋겠다. 싸움이었으면 좋겠다. 전쟁이었으면 좋겠다. 피가 뭉쳐도, 피가 흘러도, 피가 뿜어져 나와도 그 피가 선명한 빨간색이라면 그것도 좋겠다. 내 목숨을 걸 정도였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가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같은 개소리는 말고, 그냥 내가 받아들이는 내 인생에서의 최고로 농도가 짙었으면 좋겠다. 꾹꾹 눌러 담겼으면 좋겠다. 몰입… 몰입도 좋지만, 내가 지워져도 좋겠다. 그 순간에 빠지면 내가 내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기절해도 좋겠다. 부러지고 깨지고 박살 나고 죽어도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이 모든 걸 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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