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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니처럼...

그가 떠난 후(11)

by 김영주

2년간 섬긴 <엄마랑 아가랑>을 떠나는 날이었다. <엄마랑 아가랑>은 우리 교회에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신생아부터 취학 전 애기들이 그 이름처럼 엄마와 함께 기도도 하고 말씀도 듣고 찬양을 하거나 (아주 어린 경우는 듣기만 하고) 율동과 여러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귀여운 아기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는 사심으로 충만했던 사역이었다. 우리 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누구든 참여할 수 있어 부모 중 한 편이 다민족인 경우도 더러 있는데 몇몇 백인 아빠들은 한국에 살았던 경험들이 있어 깜짝 놀랄 만큼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분들도 여럿이었다. 딱 한 가정이기는 하나 부모 모두 현지인인 가정의 애기와 엄마가 참여한 경우도 있는데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정도만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어로만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기도 했었다. 선생님으로 섬기는 집사님들의 재능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애기들은 물론 엄마들과 이미 애기들 할머니 나이인 내게도 모든 순서는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이곳에도 물론 딩크(Double Income No Kids) 가정이 있겠지만 적어도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정은 대체로 두 자녀는 기본이며 둘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이 적지 않아 다음 세대를 기대하는 이전 세대로서 뿌듯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러한 일상을 보내던 중 갑자기 그가 떠났었다. 이곳은 초중고의 경우, 연간 4학기의 학제인데 우리 부서는 학교 학기에 맞추어 진행하고 있다. 나는 그가 떠난 후 세 번째 학기 중 세 번을 나가지 못했고 마지막 학기인 네 번째 학기의 8주 과정을 마친 날, 우리 스텝은 함께 식사를 하며 한 해를 정리했었다. 그리고 이 부서의 권사 사역 2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내게 스텝들이 준비한 카드와 선물 그리고 온갖 꽃들이 어우러진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을 때 나는 별 수 없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4학기 시작과 함께 다시 사역의 현장으로 복귀했을 때, 고맙고 사랑스러운 선생님들의 위로에 늘 마음이 울컥했었고 잘 마쳐야 한다는 다짐은 매 순간 해야만 했었다. 모두의 사랑과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선생님들이 안겨준 파스텔 톤으로 핑크 핑크한 꽃다발이 어찌나 예쁘던지! 특히 여름철에는 분홍의 소담스러운 꽃송이가 사랑스러운 피오니가 피어나는 계절이다. 그 꽃다발에도 탐스런 피오니 두 송이가 어우러져 있었다. 나는 콘솔 위 그의 곁에 그 꽃다발을 꽃병에 담아 꽂아 두었었다. 애들 교회에서 성탄절 행사를 한 날, 아들은 차와 핑거푸드로 교회 식구들과 교회를 찾은 손님들을 섬기는 교회 카페에서 혼자 30분간의 순서를 맡았었다. 찬양을 한다기에 공연인 줄 착각하여 친구 가족도 초대하였었는데 그날 아들은 고독한 싱어로 카페 한쪽에서 아빠의 애창곡인 찬송가 301장을 비롯해 8곡을 열창을 했었고 친구가 안겨준 꽃다발도 받았었다. 그날 꽃다발에도 피오니 두 송이가 어우러져 있었다. 이 꽃다발 역시 꽃병에 꽂아 콘솔 위 그의 곁에 놓았다. 그런데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기까지 하더니 매일 물을 갈아 주어도 꽃들은 생기를 잃어갔고 그중 가장 탐스럽던 피오니가 제일 먼저 만개하고는 꽃잎을 떨구었다. 다른 꽃들에 비해 가장 빨리 단번에 후두둑 꽉 차게 피었던 꽃잎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 그가 떠올랐다. 쏟아지듯 단번에 모두 떨어지는 피오니의 꽃잎들이 마치 그와 같다고 생각되었다. 어느 꽃들보다도 꽃잎들로 켜켜이 가득 차 꽃송이가 크고 견실했던 피오니는 안타깝게도 가장 빨리 활짝 핀 후 한 잎도 남김없이 후두둑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물끄러미 사진틀 속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같아. 피오니…”


오늘은 아들의 서른 살 생일이다. 아들 회사는 직원 생일 휴가 제도가 있어 오늘 하루는 휴가이다. 드디어 그의 이름판이 완성돼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세 식구가 그곳의 두 식구, 엄마와 그를 만나러 갔다. 15년 전 소천하신 친정 엄마와 그는 같은 메모리얼 파크에 함께 있다. 특히 매장으로 모신 엄마의 산소에 화장으로 세 명 더 함께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번에 알게 되어 그는 엄마와 함께 머물게 되었고 그의 옆에 내 자리도 확보되었다. 무남독녀였던 나의 엄마를 20년간 모셔준 남편은 이제 엄마가 먼저 쉬시고 계신 곳으로 이 땅에서의 그의 마지막 자리를 잡았다. 그간 그렇게도 날씨가 좋더니 오늘은 비가 온다. 아들은 챙겨 온 물티슈로 할머니 비석과 아빠의 이름판를 정성껏 닦았고 딸아이는 제 동생에게 우산을 받쳐주었다. 다음번 순서는 계획한 대로 아들이 좋아하는 일식 대빤 야끼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들의 5살 생일날부터 다닌 그 식당은 우리 가족 모두 즐겨 찾던 곳이었다. 추억의 장소이니 역시 아빠와의 추억을 서로 나누며 아주 차분한 분위기로 식사를 했다. 원래 각 테이블마다 셰프가 조리 과정 중 여러 가지 묘기도 곁들여 보여주는 곳이라 다소 떠들썩하고 간간히 셰프의 수고에 박수도 보내고 하는 곳이지만 오늘은 모두 미소와 눈인사로만 식사를 마쳤다. 가장 신나서 손뼉 치고 웃고 엄지 척을 보내던 그가 없어서였을까?


딸아이가 하루는 뜬금없이 아빠는 지금 유럽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유럽 어디냐니까 손흥민 선수의 찐팬이던 아빠가 분명 영국에 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냐니까 “소천하셨다는 말이 좀… 부담스러워서…”라고. 할머니 때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딸아이는 천국이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도 알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주변에서 모두 아빠가 소천한 것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그냥 자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고… 그래도 나는 어디일지 짐작해야 하는 유럽 어딘가 말고 우리가 만나러 갈 하늘나라에 계신 걸로 그냥 받아 들이자고 했다. 알겠다고는 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딸아이도 나도 아들도 가족과 친구, 교회 식구들도 그 누구도 아직 그의 소천을 받아들 일 수 없을 만큼 그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다. 꽃잎으로 꽉 찬 피오니처럼 존재감이 확실하던 그가 피오니처럼 단숨에 꽃잎을 떨구고 사라졌으니… 산소에 갈 때, 빗줄기가 제법 굵어 오늘은 꽃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러나 주말쯤 날이 개면 함께 다시 오기로 했다. 그날은 오직 피오니만 한 다발 가져와 꽂아둘 생각이다. 곧 후두둑 꽃잎이 떨어질 것을 알지만 그의 이름판위로 흩뿌려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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