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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20. 2021

시 같은 편지를 써



이를테면 한 줄짜리 편지 말야.


문장은 점점 더 간결해지고

그 짧은 문장에 담긴 함축적 의미 때문에

문장의 무게는 자꾸 무거워져.


한 문장 만으로도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 문장을 쓰는 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단 하나의 어미를 선택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자연스레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런 시 같은 연애편지들을 써.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봐.



그러다 문득,

구구절절 감상을 늘어놓던 시절의 편지가 그리워져.

형용사와 부사로 가득하던,

그 감정의 절제라곤 없는 편지들.

되려 감정의 과잉에 가까웠지.


폭포처럼 감정을 쏟아내고 

혼자 호들갑 떨고

슬펐다가 기뻤다가 설렜다가 주눅 들었다가

한 문장 안에서도 몇 번이나 감정이 오락가락 소용돌이치곤 했지.






그토록 과하고 촌스럽고 정신없고 민망한 문장을

이제 다시는 쓸 수 없을 거야.

그렇게 절절한 순수함도 이제는 제법 퇴색되어 가겠지.


그래도 빛바랜 순수함을 마주하는 게

씁쓸하지만은 않더라.



약한 건 약한대로 눈부시고

강한 건 강한대로 아름다우니까,

미숙한 건 미숙한대로 황홀하고

성숙한 건 성숙한대로 훌륭하니까,

짧은 건 짧은대로 강렬하고

긴 건 긴대로 은은하니까,

처음은 처음대로 완전하고

성장은 성장대로 완벽하니까,




그저 그런 모든 마음들이 한없이 소중하다는 사실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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