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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27. 2021

너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냐



"낭만 타령 좀 그만할래?"


내가 말하자,


"밝은 척 좀 그만해."

라며 너는 비수를 꽂았지.



"그러고 있으면 네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줄 알겠어."

하고 내가 비꼬자,


"원래 누구나 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자기가 제일 슬픈 법이야."


그렇게 응수하는 너를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지.



너는 참 

사람을 한 방에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각자에 따르면,

있는 대로 '우울한 척'과 '밝은 척'을 하고 앉아있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서

서로를 향해 비난하고 비수를 꽂아대는 모습은

참 볼 만했지.

한심하기 그지없고 말야.






근데 그거 아니.



나는 잠자코 가만있었지만,


줄곧 네 어깨를 감싸주고 싶었다는 것.


너를 안아주고 싶었다는 것.


이게 정말 밝은 척으로 보여?

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보면 그냥 이렇게 돼, 

왠지 들떠, 

힘들고 처져있는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 

반짝거리는 것들을 나누고 싶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것.




우리는 조심스럽게 서로를 비난했지.


서로 이해할 수 없다 힐난했지.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어.


반드시 이해할 수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나도 네가 온전히 이해돼서 사랑하는 게 아냐.

너 역시 그럴 거라는 것.


우리는 각자의 심해로 잠수를 떠나기라도 한 듯

심연의 상태에 빠진 채

입을 꾹 다물었지.




그 정갈한 침묵 속에

한 마리의 심해어처럼

덩그러니 놓여,



너의


단정한 손목시계,

심각해질 때만 생기는 미간의 세로 주름,

가지런하고 깨끗한 손톱,

가늘고 긴 손가락,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른손 중지의 투박한 굳은살

같은 것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어.




너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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