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든 건 모험담이 된다
"OO 씨 해고 당했었어요? 왜?"
보통 이 질문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해고 사유에 대한 회사의 '공식적인 사유'가 궁금한 것이고,
두 번째는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이다.
보통 사람들은 후자에 대한 극적인 대답을 기대한다.
그러곤, 그걸 물어본 이들은 해고당한 이보다는 자신이 '낫다'라는 생각을 하며 얄팍한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직원도 함께 퇴출당한 정리해고의 사유였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나의 진짜 해고 사유는 결국 '두 번째 의미'와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얼굴에 침 뱉은 격인 이 얘기를 왜 하려는가?
결국, 나는 잘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우 많이!
1. 첫 번째 해고와 그 결과
"그러면 팀장님은 뭐 하셨는데요?"라고 말하고 한 달 뒤 권고사직 당한 사건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해고당한 이유가 내가 정말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팀장은 전형적인 '책임회피형' 인간이었고, 자기 보다 윗 상사인 부장에게 깨지고 나면 본인의 매니지먼트에 대한 부족을 탓하기보다 신입 팀원의 역량 부족을 근거로 언제나 Back-up 희생양을 만들어 놓고 안전하게 회사생활을 영위하는 리더였다.
본인이 끌고온 프로젝트에 아무런 일은 안하면서 누가봐도 실적을 낼 수 없는 상황에 나를 질책하는 팀장에게 당시 나는 억울하고 황당한 마음에 뱉은 말이었다."그러면 팀장님은 뭐 하셨는데요?" 라고.
팀장은 '네가 감히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느냐' 노발대발했고 나는 실수했다는 생각에 즉시 사과했다.
그리고 며칠 뒤, 팀원들은 하나 둘 나를 은근히 거리를 두며 묘한 분위기가 조성되더니 결국 2주 뒤 팀장은 나를 불러내 '더 이상 함께 못 하겠다.' 라며 권고사직을 내밀었고 사실상 해고였다.
내가 회사에서 한 잘못은 '나보다 윗사람에게 대든 것.'
대든 사유는, '나보다 윗사람의 행동은 비겁했기 때문.'
순전히 나만의 고집만 밀고 나갔더라면 해고 통보에 억울하여 인사팀에 얘기라고 해보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그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은근히 해고사유에 대해 이해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초년생 때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말이 기본적으로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알지만 나보다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 생각도 올바를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마치 교과서에는 쓰여있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지켜야 하는 사회 규범 ('회사에서는 윗사람이 비겁한 행동을 하더라도 내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면 안 된다.')을 어겨 마땅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해고를 당하고 한 동안 내적으로 많이 주눅 들어있었다.
이 계기로 이때 처음 링크드인 계정을 만들었고, 부랴부랴 이직 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해고 노티스 한 달, 마지막 출근 1주일을 앞두고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결과: 국내 최고의 기업이자 모든 한국 부모님들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그' 회사로 이직이 되었다.
2. 두 번째 해고와 그 결과
첫 출근날 과장에서 대리로 번복한 회사 회장의 사위에게
"나는 절대 받아 들 수 없다"라고 했다가 3개월 뒤 잘린 사건이다.
이 회사는 앞서 이직한 그 국내 최고 기업은 아니다. 그 국최기업은 참고로 직장 상사와의 트러블 1도 없이 몇 년 아주 잘 다니다가 자기 계발을 이유로 자진 퇴사했으며 내가 살면서 했던 퇴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퇴사였다고 자부한다. (박수 칠 때 나왔기 때문)
각설하고, 이 두 번째 해고 직장은 그 국최기업을 퇴사하고 잠깐 초심을 잃어 호기심에 지원서를 넣었다가 완전히 똥 밟은 케이스였는데,
나의 해외취업 및 대기업 경력을 사유로 대리 나이에도 파격적으로 과장직급 제안, 나쁘지 않은 연봉 오퍼에 오케이 해서 들어갔다가 웬걸 그런 채용 의사결정의 배경을 내가 소속하게 될 사업부 그룹장에게 인사팀에서 미리 통보하지 않아 그룹장은 번복해야 한다며 나의 출근 첫날을 매우 망쳐버린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회사 회장의 사위였다.
결론은 인사팀이랑 사업부가 서로 소통 안 해서 생긴 문제를 나보고 회사 실세랑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윗사람에게 또 허리 꼿꼿하게 세우며 내 주장을 하는 것이 이전 첫 번째 해고 경험으로 살짝 졸아있긴 했지만 여전히 억울한 마음은 잘 가시지 않았고, 결국 퇴사 아니면 수용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고 하는 그룹장에게는 처음에는 절대 수용 못 한다 다른 식으로든 보상을 해달라 요구했다.
하지만 그룹장은 보상은 없으며 싫으면 나가라고 하였고,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지출해 버린 기회비용들이 아까워 수용하기로 결정, 그러나 그 사이에 이미 고분 고분하지 않은 나의 태도가 싫었던 그룹장은 결국 나를 수습기간 끝물에 잘라버렸다.
결과: 마지막 출근 후 2주 뒤, 망설였던 영국 취업을 도전, 이직처 없이 곧 바로 출국. 구직 활동하며 런던 체류 약 4개월째,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나라 아랍에미리트에서 오퍼를 받아 빠른 영국 손절 후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 '두바이' 삶이 펼쳐졌다.
3. 세 번째 해고와 그 결과
사소한 언쟁 중 나에게 "(신발) 짜증 나네"라고 한 사장에게
"나한테 사과해라"라고 했다가 영원히 퇴근당해 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내 브런치에서 꺼낸 적이 없는 새로운 에피소드이다. 두바이에서 첫 직장 스토리.
아쉽게도 이 회사는, 나에게 새로운 나라에서의 삶의 기회를 주었지만 마지막은 완전히 이상했던 회사다.
런던에서 잘 되지 않았던 구직활동에서 구원해 준 사장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입사를 했다.
사장도 나에게 큰 기대를 했고, 나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중동 시장을 경험하며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사장은 종종 도가 지나칠 정도의 다혈질, 부정적인 측면에서 micro control로 팀원에게 업무 위임/신뢰를 잘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입사 후 첫 PT 가 있었는데, 그 PT가 충분히 맘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장은 내 월급 200만 원을 깎아버렸다. 현지 노동부에 신고하고 싶었으나 새로운 나라에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이즈가 생기는 것이 매우 부담이 되어 그냥 받아들였다.
그렇게 완전히 의욕상실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회사를 다녔다. 200만 원이 작은 돈도 아니고 물가 비싼 나라에서 생활비도 계획보다 쪼들려 난감했지만 사실 돈보다 더 힘 빠지는 건 뭔가 주도적으로 일을 해보려고 하면 자꾸만 Stop 시키는 사장이었다. 그렇다고 본인의 의견을 따라가겠다고 하면 나보고 또 너무 수동적이 다며 뭐라고 했다.
좋은 사업 기회를 발견했지만 여전히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집중하며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장의 의견에 언쟁을 벌이던 중, 심장이 얼어붙는 듯 한 육두문자가 날아왔다. 순간 마음이 철컹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입은 할 말을 잃었고,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 며칠 잠을 설쳤다.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영원히 머릿속과 마음에서 떨쳐내지 못할 것 같아 3일 뒤 사장실에 들어가 용기 내어 말했다. "저한테 사과해 주세요."
사장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욕은 나에게 한 게 아니라 그냥 본인의 감정이 올라와한 말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얘기했다.
"귀는 내 의지대로 열고 닫을 수 없지만, 입은 그게 가능합니다. 사장님은 제게 욕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 귀는 열려있었습니다."라고.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입사한 지 1년 즈음되었을 때 사장이 나를 방으로 불렀다.
이만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해고 사유는 '업무 능력 부진.'
비겁한 사유에 웃기지도 않았지만 나도 질문했다.
"제게 업무 할 기회는 준 적 있었냐."
갑자기 또 나앉게 된 상황에 최소한 비자 취소 유예 기간 3개월을 겨우 받아내 그 기간에 현지에서 인생 6번째 구직 활동을 하게 됐다.
결과: 해고 통보 2개월 뒤 전 직장 연봉 대비 30% 더 주는 글로벌 기업으로 이직. 그리고 얼마 전에는 중동 취업 성공 사례로 ㅁㅁ경제 신문에도 실렸었다.
'OO 은 버릇은 없지만 일은 잘한다.'라고 평가하고 내가 마음껏 일 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지금 상사는 최고의 복지인 것 같다.
+ 추가로 나에게 신발 날렸던 그 사장님네 회사는 내년에 완전히 문을 닫게 될 예정이라고 얼마 전에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겉으로는 쌤통이다 싶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회사였는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마치며,
해고 3번을 통해 내가 얻은 (나만의) 인사이트로는 다음과 같다.
1. 좋은 직장 (상사) 후에 다음 직장(상사)은 이 전 직장만 못 하다.
2. 안 좋았던 직장 이후에 보통은 그보다 나은 직장이 온다. (90% 이상)
3. 취업은 마음먹으면 3개월 안에 어떻게든 된다. (진짜 몰랐던 사람에게도 연락 온다)
4. 월급 오르는데 이직만 한 게 없다. (같은 직장 5년 다닌 것보다, 1년씩 이직해서 5개 직장 다니는 게 연봉 상승이 훨씬 빠르다. 고속 인플레이션 시대에 어쩌면 괜찮은 방법일 수도.)
5. 생각보다 잦은 이직, 짧은 근속연수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 없다.
6. 나는 단 한 번도 다음 이직처를 미리 구해 놓고 퇴사를 해본 적이 없다. (=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
7. 근본 성질은 안 변하지만 처세는 발전한다.
8. 이직을 5번 하면 취업이 (또는 인생이) 두렵지 않다. (담력 매우 상승)
9. 실패를 해결하는 방법은 정신적으로 일어서는 것이다. (명랑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10. 마지막으로, 어떤 의사결정도 다 괜찮을 것이다. (적당한 합리화는 나를 보호한다.)
당신의 용감무쌍도, 여정도, 실패를 지나며 더 단단해지길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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