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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로 설국 여행을 떠나다.

꽃보다 父子 1 / 일본 홋카이도편

by 이순열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를 다시 찾게 된다면 코발트 블루의 높은 하늘과 청량한 공기 내음을 잊지 못해서 일거다. 예전에 스위스를 여행할 때 인터라켄 호수에서 만난 에머날드 물빛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다 다시 찾아간 것처럼.


세시간여의 비행끝에 일본 홋카이도의 관문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해 다소 지루한 입국절차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설국에 도착했음 알리는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가 나를 마중했다. 숙소가 있는 삿포로행 버스에 오르니 주변 풍경이 설국임을 실감케 하였다.


저 멀리 순백의 높다란 설산들이 보이고 설산을 경계로 에머랄드 빛깔의 하늘이 그라데이션하게 서서히 짙어지더니 구름사이로 보이는 높은 하늘에는 유럽에서나 볼 수 있던 짙은 코발트 블루의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 땅을 처음 밟으면서 강열한 첫 인상이엇일까 궁금 했는데 그 해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삿포로 명물 시계탑 도심으로


한해동안 대학 입시 준비로 고생했던 큰 아이와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여러 곳을 저울질 하다 설국으로 유명한 일홋카이도로 정했다.


임박한 일자의 항공편 요금도 만만치 않고 여정을 잡는게 힘들기도 해서 패키지로 예약을 하였다. 그러나 패키지의 빠듯한 일정이 아빠와 첫 여행을 하는 아들에게 기억에 남을 추억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예약을 취소 하고 자유 여행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일본 최북단의 섬 홋카이도로 떠나는 항공권을 발권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4박5일의 일정동안 어디로 가야할지 교통편은 어찌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터넷 호텔 예약 사이트인 부킹닷컴을 통해 첫날 삿포로에서 묵을 호텔을 예약하고 렌트카를 예약하려다보니 설국으로 유명한 그곳에서 자동차 여행가능한지도 알 수 없었다. 설국열차로 여행하는 것도 멋져 보였지만 혹한의 날씨에 역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이동 방법이 문제였다. 교통편을 고민하다가 안전한 여행을 우선 순위에 두어 결국 자동차 대신 기차로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삿포로의 중심 오도리 공원


일본 홋카이도의 최대 도시 삿포로를 베이스캠프 삼기로 했다. 하루는 홋카이도 남단에 위치한 일본 최고의 미항이라는 하코다테를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는 여정도 괜찮아 보였고 하루는 일본의 최북단으로 설국열차를 타고 끝없설원을 야수처럼 헤쳐 나가는 상상의 나래도 펼쳐 보았.


이른 아침 비행기라는 부담 때문일까 아니면 전날 홋카이도에서 진도 7의 지진이 있었다는 뉴스에 신경이 쓰였나 잠을 설치다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였다. 알람을 맞추어둔 5시까지 뒤척이다 아들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서둘러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6시반 이었다.


일본으로의 비행기 이륙시간까지 2시간이 남아 여유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체크인 카운터 줄이 지그재그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처음으로 편법을 동원해서야 어렵사리 비행기표를 발급 받았으니 이런 상태라면 적어도 출발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아야 안심이 될 듯 싶었다.


초등학생때 패키지로 베트남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로 7년만에 국제선 비행기를 타는 아들은 설레인듯 약간 상기된 모습을 보였다. 돌이켜보면 며칠간 짬을 내어 여행하는 것이 그리 힘든 일도 아닌데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공부를 핑계로 가족과의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미안했다.



영화 “러브레터”의 도시 오타루에서 설국의 밤을 보내다.


오타루의 명물 운하의 야경


"오겡키데스카(お元気ですか)"


설원을 향해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첫사랑의 연인을 향해 외치던 첫 장면이 인상적 이었던 영화'러브레터'의 무대가 오타루다.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어느 겨울밤에 분위기와 어울리는 영화를 찾다가 보게 된 영화가 '러브레터'였는데 첫 사랑의 희미한 기억의 끈을 찾아 떠나는 추억 여행과 영화속 엄청난 폭설은 오랜 시간 여운을 간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상태라 오타루를 가면서도 영화 '러브레터'를 연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상술에 능한 여행사들은 오타루를 '러브레터'의 도시로 포장하여 영화에 나왔던 장소들과 오타루의 명소인 오르골 유리공예 공방들에 성지 순례하듯 관광객들을 자연스레 끌어들이는 것을 보면서 잘 만든 한편의 영화는 평범한 도시를 꿈의 장소로 만들어내는 마법을 가진 듯 하였다.


홋카이도로 오기전 사진으로 본 오타루의 명소 운하는 베네치아인들이 보면 코웃음 칠만큼 작고 소박해 보였고 홋카이도 베스트셀러 여행기 '홋카이도,여행, 수다' 송인희 작가의 오타루에 대한 평도 패키지 여행객들로 가득한 매력없는 도시로 묘사했기에 오타루는 이번 여정에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래서 삿포로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고 역으로 가서 홋카이도를 3일간 기차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JR패스를 발급 받은 후 삿포로 시내에서 저녁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역사 밖으로 나오니 특별히 갈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선택한 곳이 삿포로에서 기차로 한시간여 거리에 있는 오타루였다.


역을 빠져나와 마주한 오타루의 첫 인상은 삿포로처럼 세련된 도시의 풍경은 아니었지만 소박하고 한적한데 거리마다 눈에 파묻혀 소담스럽게 눈까지 내리고 있으니 마치 도시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오타루 시내의 야경


19세기말 일본 개항기때 지어졌다는 나지막하지만 고풍스런 건물들의 지붕에는 수십센티 높이의 눈으로 덮히고 처마에는 고드름이 치렁치렁 매달리고 거리는 나트륨 등불의 노란빛에 물들여진 설국의 밤풍경은 너무도 낭만적으로 보였다.


이곳의 명물 운하를 거닐고 있을때 마침 눈발까지 흩날리니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거리를 활보하는 느낌이 들었다. 폐점시간을 앞둔 전통시장에서 디즈니 에니메이션 겨울왕국 엘사의 렛잇고 노래까지 흘러나오니 오타루의 겨울밤 분위기가 더욱 달구어졌다. 아마도 그날 밤 오타루를 가지 않았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밤늦게 삿포로의 숙소로 돌아와서도 다음날 행선지를 정하지 못해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백조 무리가 설산을 배경으로 유유히 노니는 사진 한장에 마음이 이끌려 이전의 계획들을 접고 홋카이도 동부지역으로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영화 “철도원”에서나 봄직한 기차를 만나다.



삿포로에서 특급 열차로 네시간여를 달려 홋카이도 동쪽 끝단에 있는 쿠시로에 도착했다. 오는동안 차창을 통해서 보이는 경치는 인간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듯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설산 그리고 간간이 하천들만 있을 뿐 이었다. 원시자연이 이런 것인가 하고 감탄사를 날리다 보니 시간의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쿠시로에서 동북단 아바라시로 향하는 노선으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다른 플렛폼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어느 철도원의 인생을 그린 영화‘철도원’에서나 봄직한 한량짜리 기차를 만났다.


영화를 보면서도 꼭 한번 타보고 싶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느리기에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산책하듯이 살펴볼 수 있고 앞뒤로 난 창을 통해 철로의 평행선이 서서히 멀어져 가다 한점으로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기차의 매력이었다.


철거덕 소리가 정겨운 한량짜리 기차

생각보다 눈이 덜 왔는지 맨땅이 드러난 황량한 평원에는 곳곳에 무성한 갈대밭이 펼쳐졌다. 나뭇잎을 벗어버린 빽빽한 숲 사이로 말라붙은 물웅덩이 흔적이 드러나고 하천 물줄기가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니 이 구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쿠시로 습지대임을 알 수 있었다. 여름에 다시 이곳을 찾아와 늪으로 펼쳐진 원시 정글을 자세히 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지대를 빠져나와 외딴 역에 정차해 기차 밖으로 나오니 하얀 설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량의 기차가 홋카이도의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철도원도 없는 무인역 구간을 평생동안 묵묵히 오고 갈 녀석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설원을 달리던 한량짜리 기차는 어느 외딴 시골역에 우리를 떨구어둔 채 사라졌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두시간여 동안 아들과 나는 오래전에 인적이 끊긴듯한 마을을 거닐면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적한 고요를 만끽했다. 분주했던 시간을 벗어두고 마주했던 이시간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미치도록 그리워할 것이다.



일본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가 온천 탐방 이었지만 이번에는 온천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렸다. 그것은 동행하는 아들이 사춘기 이후로 아빠와 목욕탕에 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생각과 달리 온천에 대한 호기심을 보여 마침 역 근처에 있는 동네온천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설이 낙후한데다 입욕권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탈의실을 바라보는 구조라 수줍움 많은 아들이 이 온천탕에 들어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기차를 반대 방향으로 타서 내린 다른 시골역에서도 온천을 찾아 가보니 우리의 동네 대중탕 같은 온천이었다. 마을의 사랑방처럼 탕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인사말도 건네고 대화를 나누는게 그동안 가본 관광지 온천탕과는 색다르게 정겨움이 느껴졌다. 성분표를 보니 나트륨과 칼륨이 주된 미네날인 미끈미끈한 물의 감촉이 시골 마을 온천치고는 온전한 온천수를 만난것 같아 기뻤다.



이곳이 진정 홋카이도의 겨울 왕국 !


자정을 넘긴시간 호텔 창밖풍경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인 가와유 온천역에 도착하니 시계는 밤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역사를 빠져나오자 예상과 달리 인적이 없는 썰렁한 거리가 우리를 맞았다. 교통편도 끊어져 4키로 거리의 마을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야 하는 상황 이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둠속 혹한의 날씨에 미끄러운 눈길을 얼마간 걸어보았다. 추위도 추위지만 눈에 덮혀 인도와 차도가 구분이 되지 않는 도로가 위험스러워 걷기를 포기하고 지나가는 차량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삼십여분 동안 한 대의 차량도 만나지 못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호텔로 보이는 건물이 있어 안으로 들어 가려 했으나 문이 잠겨있어 당황스러웠는데 그때 주차장에서 차량의 움직임이 보였다. 급하게 다가가 운전석에 있는 젊은 여성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여자 혼자서 낯선 남자 둘을 만나 겁이 났을텐데 기꺼이 차에 타라고 했다. 어둠을 뚫고 지나가는 십여분의 시간이 너무도 송구하고 미안한 마음에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고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온천마을에 도착해 우리를 내려주고 되돌아가는 차량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어쩔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며 걷던지 아니면 무한정 지나가는 차를 기다려야 했기에 이름도 모르는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을에 도착하니 매캐한 유황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차가운 대기와 만나 안개처럼 마을에 자욱한게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거리에 설치된 온도계는 영하 20도를 가리키고 셀카 찍는 손조차 순식간에 얼어붙으니 진짜 겨울 왕국에 온 것이 분명했다.



백조의 호수를 홋카이도에서 다시 조우하다.


가와유온천의 새벽

다음날 잠에서 깨자마자 호텔에 딸린 온천탕을 찾았다. 대욕장을 전세낸듯 아들과 단둘이 달걀 썩는듯한 유황 냄새가 풍기고 비취색 물빛이 나는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특유의 기분 좋은 감촉이 전해왔다.


온천 음용대가 있어 한컵을 마셔보니 산도가 높은지 식초를 마시는것 처럼 신맛이 강했다. 며칠만에 시커멓게 녹이슨 호텔 로비에 전시된 못을 보니 처음 몸을 담갔을때 피부에 자극이 오고 눈에 물이 닿으니 따가왔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호텔 직원에게 백조가 있는 굿사로 호수로의 교통편을 물어보니 택시밖에 없는데 십만원이상을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지도를 살펴보니 호수까지 4킬로 정도의 거리라서 돈도 아낄겸 트래킹 삼아 눈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얼마간 걷다보니 방향이 확신이 서지 않아 지나가는 차가 있어 손을 들어 차를 세웠다. 운전석에 있는 인상 좋은 할아버지에게 호수가에서 노니는 백조 사진을 보여주며 방향이 맞냐고 물으니 그곳에 가려면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우리를 차에 태웠다.


하늘이 겨우 보일정도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십여분을 달리니 오른쪽 숲속 나무 사이로 설산으로 둘러싸인 짙푸른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후 사진에서 보았던 백조의 무리가 보이는 호수가에 우리를 내려주고 친절하신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갔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사는 사람들이기에 마음씨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조의 호수 굿사로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둘레가 50킬로가 넘는 장대한 칼데라 호수에 백조의 무리가 설산을 배경으로 귀태를 뽐내며 유유자적 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에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 스위스를 여행하다가 백조들이 노닐고 있는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 풍경을 즐겼었는데 그에 못지않은 아름답고도 장쾌한 호수였다.


호수 가장자리에 솟아나는 따뜻한 온천수 때문에 겨울이면 백조들이 날아들어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는다는데 백조가 없는 이 호수를 상상하니 너무도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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