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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Nov 16. 2023

또다시 찾아온 겨울.

겨울에 관한 뻔한 추억팔이.

나는 크리스천이다.

모태신앙은 아니다.

첫사랑인 아내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제 발로 교회를 찾아갔다.

제 발로 찾아간 게 벌써 13년 차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혹시 전도하려는 속셈인가?’

‘교회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라고 생각한다면 전혀 아니다.

      

주일 아침.

분주하게 교회 갈 준비를 한다.

외출복 선택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책을 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무색해지게 갑자기 추워졌다.

가을 옷들은 내 피부를 스치듯이 옷 장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이가 들면서 겨울 필수품이 되어버린 내복들의 위치를 아내에게 연신 물어본다.

못 찾기 선수인 나는 늘 아내에게 핀잔을 먹지만 못 찾는 건 여전하다.    

 

교회로 가는 길.

나무들은 이제 제법 겨울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자동차 밖 풍경은 차가웠고,

창밖의 냉기는 유리를 통해 내 피부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렇게 겨울이 오는구나 싶을 찰나에 창문으로 눈인지 비인지 알아보기 힘든 것들이 묻어 나왔다.

이윽고 눈이라고 할 만큼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이거 첫눈 아니야?”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까지 겨울 노래를 함께 부르며 기분이 더 좋아졌다.

비록 눈은 5분도 안되어 그쳐버리고 비가 되었지만,

우리에게 첫눈은 그저 아름답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38살 동갑내기 부부에게도 6살 어린이한테도 말이다.     


겨울을 참으로 좋아했다.

어릴 적 이야기지만 말이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겨울보다 여름이, 여름보다는 가을이 그리고 가을보다는 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겨울이 밀려나기 시작한 것은 눈사람을 만들 순수함과 추위를 이겨낼 만큼 열정이 식어버리고,

함께 눈싸움을 하던 친구들과 몸이 멀어질 때쯤인 거 같다.

그때부터 겨울은 춥고 짜증 나는 계절이 되었다.  

   

겨울옷은 두꺼워서 불편하고 빨래양도 두꺼운 옷 덕분에 만만치 않다.

출근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든 운전을 할 때 든 하얀 눈은 반갑지 않았다.

오죽하면 하늘에서 예쁜 쓰레기가 내린다는 말이 나왔을까?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는 내 몸과 마음도 함께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렇게 겨울을 싫어하면 할수록 어른이 되어갔다.  

    

뒷자리에서 조막만 한 입으로 겨울 노래를 흥겹게 부르는 아들 눈에서는 겨울의 추위 따위는 느낄 수 없다.

나도 분명 겨울을 좋아하는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한없이 기다리고는 했다.  

    

슬레이트 지붕 밑으로 내려오는 기다란 고드름은 나에게 훌륭한 장군의 칼이자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아삭아삭한 얼음과자였다.

어른이 되어가며 눈 오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아파트가 즐비하고 슬레이트 지붕을 가지고 있던 주택들이 사라지면서 내 키만 했던 고드름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눈밭에서 실컷 뒹굴고 추운 날도 이겨낸 땀구멍 덕분에 젓어 버린 옷.

그 옷을 벗어던지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으로 들어가면

발꼬락부터 찌릿찌릿 간질간질한 기분은 이제 기억 속으로만 남았다.  

   

겨울에만 맛볼 수 있던 엄마표 고구마튀김은

지금은 분식집에서 사 먹어야 볼 수 있게 되었다.

공짜로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둘 것을 하는 후회가 남는다.   

  

폭설로 도시에서 시골로 출근을 하지 못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임시휴교가 내려진 학교.

그 덕분에 친구들과 거북이 그림이 그려진 비료포대를 가지고 뒷산으로 달려갔던 기억.

엉덩이 쿠션이라면 포대 안에 지푸라기나 눈을 잔뜩 넣었던 기억.

이제는 빨강, 파랑 플라스틱 눈썰매가 대신한다.  

   

그날의 색과 냄새 그리고 감정까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지만 다시는 그럴 수 없음에 약간은 서글퍼진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동심으로 돌아갈 희망 말이다.


바로 겨울이며 아들과 눈썰매며 눈싸움이며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눈초리를 피해 합법적으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들은 나에게 잃어버렸던 많은 것들을 채워주었다.


'추위를 이겨낼 열정'

'함께 눈밭에서 뒹굴 친구'

'그리고 몸은 성인이지만 아이와 함께 놀며 되찾은 순수함'

    

그것을 알기에 몇 년 전부터는 겨울이 설레고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눈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이번겨울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으로 기도해 본다.

    

또다시 겨울은 왔고,

뉴스에서는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잔뜩 겁을 준다.

쫄지 않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열심히 겨울을 즐겨보리라 다짐해 본다.




※추억에 공감하신다면 저랑 같은 시대 혹은 군, 면, 리 단위에 거주한신 분들이겠지요?

이 글을 읽고 여러분의 겨울이면 생각나는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겨울에 내린 폭설은 우리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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