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회사의 거래처 중에 늘 우리 팀을 유독 챙겨주시던 이사님이 계셨다.
나에게는 크게 삼촌뻘이나 되는 분이셨는데도 늘 격이 없이 우리 팀 대해주셨고, 연말이면 좋은 식당에 초대도 해주시고, 가끔씩 오셔서 비싼 점심도 사주시곤 했다.
그분의 미식은 남달랐는데, 서울 시내의 비싸고 좋은 식당은 다 단골이신 거 같았다.
특히 그분은 가족사랑이 남달랐는데, 맛있는 식당은 그곳이 혹여 해외라고 해도 꼭 기억해 두었다가 가족들을 데리고 간다고 했다. 아내 사랑, 아이 사랑이 대단했다.
뭐든 말이야, 단골이 되는 게 좋아.
그래야 좋은 가격에 늘 좋은 대접을 받는 거지.
여행 가면 꼭 팁은 여행 시작 전에 기분 좋게 먼저 주고.
함께 식사를 하면, 숱한 해외출장 때 겪은 에피소드 얘기를 듣는 재미가 솔솔 했다.
당시 조선호텔 지하 오킴스라는 바에 자주 갔었는데, 그곳에서 늘 즐거운 대화를 많이 나눴던 추억이 있다.
어느 날, 기분 좋게 와인을 몇 잔 드신 날, 라이프 스토리를 잔잔하게 들려주셨다.
그는 너무 젊은 나이에 외국계 회사의 임원이 되었다고 했다.
세상이 다 우습고 시시했다고 한다. 젊고 젠틀한 외모와 회사 명함 하나만 들고나가면, 세상에 안 넘어오는 여자가 없고, 회사 근처에 어느 식당을 가도 각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이에 비해 호화로운 식당과 술집을 원 없이 다니며 유흥과 쾌락에 심취했단다.
그러던 중, 거래은행의 담당 여직원과 사랑에 빠지는 사단이 나고야 만다.
해당 여직원은 미혼이었고, 미국에서 학교를 나와 기업외환팀 전담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다 미국에 계시고, 한국에 혼자 나와 은행에 취업해서 일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미 아내와 결혼해 아이가 셋이나 있었던 그는,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랑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고 했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퇴근 후면 나도 모르게 그녀를 만나러 가고 있었지.
시간이 지나자, 여자분이 더 열렬히 그를 사랑했고, 함께 한국을 떠나 자기 부모님이 계신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새 출발하자면서.
한국에서 일군 사업과 이미 이룬 가정이 있는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와의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아내는 이 상황을 결국 다 알게 되었지만, 한 마디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혼자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가 화병으로 퍼져 아내는 온몸에 건선이 뒤덮이는 중병에 시달리게 되고, 나중에는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약물 부작용에도 시달렸다고 했다.
아내는 맘에 화가 쌓여 온몸의 피부가 다 뒤집히는데도, 그는 그 은밀한 사랑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그 여직원이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다른 분을 만나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나면서 정리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고, 아내의 병도 점차 가라앉아 건강을 회복했다고 했다.
지나칠 만큼 젠틀한 스타일의 그에게, 이제는 누구나 너무 가정적인 아빠라고 느껴지는 그에게, 그런 이야기가 있었을 줄 몰랐다. 사람의 겉모습은 너무 중요하고, 또 너무 별거 아니기도 한 것이다.
그때 침묵을 지켰던 아내는, 그가 돌아온 이후에도 그 일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채 자기 자리를 잘 지켜냈다고 한다. 덕분에 아이들도 하나도 흔들림 없이 잘 컸고, 사업도 다 궤도에 올라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아내에게 사과했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그건 그들의 이야기일 뿐.
그 이야기를 듣던 날은, 눈이 부시게 날씨가 좋았던 어느 고급 일식당이었다.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었어.
세상에는 그렇게, 멋진 외모의 '여전히 나쁜 놈', '한 때 나쁜 놈이었던 좋은 놈'이 공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