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당시 회사에는 세 분의 임원이 계셨다. 영업, 기획, 자금.
작은 상장회사였던 우리 회사는 깨끗한 임원실이 하나씩 배정되었고, 국산 업무용 차량 1대, 노트북, 업무용 핸드폰이 지급되는 정도의 대우를 받았다. 급여는 잘 모르겠다.
각 세 분 밑에는 해당 분야별로 여러 부하직원들이 있었는데, 상사의 방을 정리 정돈하는 일은 꼭 룰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 해당 팀의 어린 직원들이 하곤 했었다. 청소해 주시는 분들이 따로 계셨으니, 청소라기보다는 정리정돈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매일은 아니고, 출장 전후로 준비자료나 파일 정리 등이 필요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얘기를 하면 MZ 들은 다 박장대소할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 부서는 지원부서여서 다들 여직원들이었지만 모두들 그 일을 하기 싫어했다.
그 일을 왜 꼭 여직원들의 일이라고만 치부했었는지도 참 어이가 없긴 하다.
직장생활에서 청소라는 게 뭘까?
물론 새벽에 우리가 출근하기 전, 쓰레기를 비워주시고 기본적인 청소를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작게는 자기의 책상, 그 주변, 동료 직원의 자리, 상사의 자리, 탕비실의 상태, 공용 냉장고의 상태 등 업무를 하는 그 공간의 곳곳에 대한 관리, 그 공간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무슨 특별한 마음에서는 아니었는데, 나는 우리 팀 임원실 청소를 내가 하겠다고 했다. 후배도 선배도 있었지만, 다들 그 일을 하기 싫어했고, 그 생색 안 나는 일을 서로에게 미루는 모양새도 좀 별로인 거 같아서였다.
그 임원분은 무척 무심하신 성격이셨는데, 업무 이외의 것들에는 크게 터치하지 않으시는 그 무심한 성격이 나는 좋았다. 무엇보다도 다혈질이 아니고 잔잔하신 성정도 부하직원들에겐 큰 장점이 아닌가 말이다.
Respect.
함께 일하는 동료나 선후배 간에
존중하고 respect 하는 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걸 갖고 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아마 그 방을 깨끗하게 가끔씩 정리 정돈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내 책상을 청소할 때, 임원실의 책상, 탁자, 책장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흐트러진 물건이 있으면 정리해 꽂아 두었다. 그는 특별히 고맙다거나 그런 인사는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오히려, 직원들 사이에서 그걸 곱게 보지 않는 시선들이 있음을 서서히 느꼈을 뿐.
내가 특별히 상사에게 아부를 한다거나, 오버스러운 충성이라는 표현, 유난스럽다, 잘난 척한다 뭐 대략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돌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회사에서 튀거나 유명한 직원도 아니었고, 때때로 나는임 원실 뿐 아니라, 탕비실 데스크나 수납장, 공용 냉장고도 한 번씩 락스물로 깨끗하게 청소하곤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뒷담화는 나오지 않았다. 탕비실 같은 공간이 깨끗해지는 건 그들도 모두 좋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함께 하기도 하면서.
부처님 말씀에 하심(下心)이란 말이 있다. 나를 낮춘다는 말이다.
아마 그 당시에 접했던 이 말이 참 와닿았던 것 같다. 모두가 나를 드러내고 돋보이려는 세상에서, 문득 그 고단한 잘난 척을 멈추고, 평안하게 무게 중심을 아래로 낮추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인생을 통틀어, 그 시절 30대 중반의 시간이 참으로 고단했기 때문에.
그 이후, 회사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기회들마다 그 상사는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챙기고 인정해 주셨다.
덕분에 서울 촌사람이었던 나는 상사들을 따라 해외전시회 구경도 많이 하고, 상사들을 따라 비싸고 훌륭한 식당들 구경도 많이 하고, 인생을 사는 방법도 많이 배우고 들었던 것 같다.
하심을 가지면, 관계 사이에 작은 꽃들이 만발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요즘은 그때의 나처럼 에너지가 넘치지 못하다. 쉽게 지치고, 눕고만 싶은 날들이 많다.
갱년기라는 심술이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그렇게 고단해 한숨 자려 누운 자리에서는, 30대 시절 내가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의 꿈을 자주 꾼다. 스트라이프 투피스 입고 화장하고 나서는 꿈을, 그런데도 아직도 자꾸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을 꾸는 걸 보면, 아직도 인생의 정확한 길을 찾지는 못했나 보다.
그때 그 책꽂이처럼, 그때 그 책상처럼, 다시 반듯하게 매일을 정리하며 나를 다잡고 살아봐야겠다.
그때처럼 나를 낮추고 하심의 미학을 종종 다시 발휘해 봐야겠다.
55번째 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