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에 굽고, 그릴에 굽고, 오븐에 굽고.
관련된 기본 스페인어를 한번 볼게요
* 아사르 (Asar) : 굽다
* 아사도 (Asado) : 구이요리
* 아사도르 (Asador) : 구이용 그릴이나 로스터
* 오르노 (Horno) : 오븐 (예전엔 이게 스페인 아궁이였지요)
* 그리고 고기 굽는 뿌연 연기가 배경으로 깔리면, 스페인 구이요리의 한 장면이 멋지게 연출되겠네요.
스페인 구이요리에서 제일 유명한 두 가지 메뉴를 한번 찾아 봤습니다.
첫째, 꼬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
아기돼지 (애저)를 통째로 바비큐로 구워내는 스페인 전통 요리인데요. 스페인 중부 까스띠야 데 레온 (Castilla y León)의 세고비아 지역에서 유명한 요리로서, 마치 베이징덕처럼 겉바속촉의 식감이 특징입니다. 과거에 애저는 특권층들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식재료였다고 하는데요.
*아직 젖먹이 어린 돼지를 깨끗하게 내장을 제거한 후
*본연의 향취를 위해 최소한의 양념 (소금, 후추, 마늘, 박하향이 나는 오레가노와 향긋한 월계수 잎 등의 허브)만으로 간을 한 다음
*200도 정도의 온도로 오븐(오르노 : Horno)에서 2시간 정도 구워내면 끝입니다.
*완성되고 나면 애저 특성상 육질이 매우 부드럽기 때문에, 굳이 칼로 자르지 않고, 큰 접시로 잘라서 서빙해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른 나라 출장에서 한 번 먹어봤어요!
당시 식당 매니저 분이 잘 조리된 맛있는 애저를 웨건으로 가져와, 우리 테이블 앞에서 마치 공연하듯이 큰 접시로 고기를 잘라주었는데, 그전에 아기돼지의 영혼을 위한 기도문을 낭독하는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해줘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식당에서는, 고기를 자르고 난 후의 해당 접시를 깨는 퍼포먼스까지 해주셔서 다들 웃고 놀라고 했었죠.
맛은 정말 베이징 덕을 연상시키는 매우 부드럽고 향긋한 허브향이 배어 있었구요,
화이트 와인과 같이 먹었더랬죠! 날씨가 되게 쌀쌀했던 날로 기억나는데, 구이요리 특유의 따뜻함이 참 좋았어요.
잠깐 삼천포로 빠지면,
최고의 소고기는 아르헨티나잖아요?
예전에 어느 출장자분에게 듣기로, 아르헨티나에 가서는 "소고기 먹어봤다"는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망신만 당한다고 하더라고요.
즉,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먹어보기 전에는 소고기를 먹어봤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만큼, 소고기에 대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어요.
아르헨티나에서의 Asado는 단순히 요리를 지칭하는 게 아닌,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구운 고기와 와인을 함께 즐기는 일종의 파티로서, 종일 또는 밤늦게까지 즐긴다고 하네요.
정말 말 그대로 요리가 인생과 문화가 된 케이스라고 생각되네요.
둘째, 꼬르데로 아사도 (Cordero Asado)
이번에도 어린 동물인데, 돼지 대신 양고기입니다.
새끼 양이죠. 이 양고기 요리도 역시, 같은 스페인 중부 지방 까스띠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에서 매우 유명하고 오늘날까지도 매우 사랑받은 메뉴라고 해요.
요리법은 위에서 본 새끼돼지 요리인 꼬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와 비슷하네요.
어린 새끼 양 (또는 산양)을 깨끗하게 내장을 제거하고, 아까처럼 기본양념으로 간을 한 다음 오븐에서 구워내는 방식입니다.
양고기는 한국인에게는 먹을 기회가 매우 드문 육류이긴 한데요, 왠지 식감은 새끼돼지보다는 좀 질기지 않을까 싶네요. 같이 낼 때, 와인이나 감자나 양파볶음 같은 사이드 메뉴와 함께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사도(Asado)의 요리 도구로는 어떤 걸 쓸까요?
스페인 부엌 한번 상상해 볼게요
아사도르 (Asador) - 캠핑이나 바비큐 파티에서 흔히 보는 로스터나 그릴을 말합니다.
숯불을 이용하여 직화구이 고기를 구울 때 사용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아사도 도구입니다.
빠리야 (Parrilla) - 스페인 석쇠, 불판 같은 거라고 보면 될 거 같네요.
그릴에서 고기를 구울 때 사용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특히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아마 그 옛날 목동 가우초(Gaucho)들이 많이 사용했던 도구 같아요.
빠리야를 표방하는 아르헨티나 아사도 전문 식당이 있네요.
가게 로고만 봐도, 아사도의 역사가 한 눈에 상상이 되요.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식당입니다)
로고 디자인이 너무 예쁜 가게입니다.
오르노 (Horno) - 오븐입니다. 옛날에는 아궁이의 의미였겠지요.
오븐은 가장 나중에 발전한 기구인데요. 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약간 있습니다.
스페인은 모로족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요. 스페인 문화에 아랍의 색채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죠.
당시 아궁이 문화가 있었던 모로족들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빵을 굽는 용도의 오븐이 생겨났고 이후
점차 육류의 조리에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화벽돌로 만들어진 전통방식의 오르노에 장작을 태워 조리하는 전통방식의 유명 식당들이
아직 스페인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해요. 화덕 문화라고 생각됩니다.
아사도르 ---> 빠리야 ----> 오르노
이런 형태로 아사도의 도구는 진화했습니다.
쌀쌀한 날, 이런 따뜻한 전통 오븐에 맛있는 고기를 올려두고, 담백한 와인과 익힌 채소로 만든 사이드 메뉴를 두고 두런두런 긴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중간에 마음이 릴렉스되면
김현식의 '추억이야기' 노래가
함께 앉은 친구들 모두의 입에서 흥얼대며 나올 것만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