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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디나에서 만난 슈퍼마켓 '두 번째 이야기'

사우디 사람들은 어떤 술을 마실까?

by 오스만

휴일인 오늘 아침(이슬람 휴일인 금요일) 잠에서 깨어 보니 휴양도시로 유명한 프랑스 '니스'에서 대형 트럭을 이용한 소프트 타깃 테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 왜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이들은 '알라후 아크바르/하나님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الله أكبر)'를 외치며 스스로를 '지하디스트 (성전 주의자)'나 '순교자'로 자처하는 것일까? 해당 기사에 줄줄이 이슬람을 비하하는 댓글이 또 달릴 것을 생각해 보면 비무슬림인 나부터가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니스 사고 희생자들의 삼가 명복을 빌고 이슬람 정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벌이는 온갖 더러운 행위들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들 중 가장 고귀한 생명을 도외시하는 자들이 어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인다는 말인지 참 아이러니하다.

아름다운 니스해안


오후 12시 40분. 금요예배 (쌀라 툴 주므아/صلاة الجمعة )를 맞아 예배당 스피커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의 설교가 방 안에 까지 들려온다. 저 설교의 어디에 생명을 경시하고 그 생명을 함부로 앗아 하나님께 영광을 바치라는 뜻이 담겨 있나?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과 같이 오리니' 내일 있을지 모를 세상 멸망을 대비해 오늘 전 재산을 보혜사 성령의 화신에게 바치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누군가 떠들어 대며 '예수를 찬양하라'라고 한다 해서 기독교 전체가 논란의 중심에 설 하등 이유가 없듯이 온전치 못한 논리에 현혹되어 이슬람을 들먹이는 정신병자들이 이슬람 전체를 세상의 바닥으로 끌어내리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가 온전히 구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아랍'과 '이슬람'의 개념인데 아랍이라고 하는 것은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스스로를 아랍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주권이 있는 국가의 개념이고 이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꾸란 (قرأن)'을 인정하고 무함마드 (쌀 랄라 후 알라이후 쌀람/다른 이름의 무함마드와 구분되는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 호칭)가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 무슬림들의 공동체를 '움마(أمة)'라고 한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는 인구 2억 6천만 명의 '인도네시아'가 되고 세계 최대의 아랍 국가는 인구 9천만 명 (약 천만명은 콥틱 기독교도)의 이집트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란은 아랍국가가 아닌 '페르시아 이슬람 국가'이며 터어키 또한 '비아랍 이슬람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슬람과 아랍을 구분해야 한다.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이슬람 이전의 시대를 무슬림들은 '무지의 시대 (자힐리야/جهيلية)'라고 하고 이슬람이 마침내 도래하면서 '진리의 시대'가 되었다고 여기는데 이슬람 이전 무지의 시대에는 아랍 부족 전체에 음주가무가 횡행하였고 이로 인한 폐단이 수시로 벌어졌기에 이를 시정하고자 무함마드 (쌀라라후 알라이후 쌀람)는 '술에 취하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권고'하였고 오늘날 대부분의 비 모슬렘들이 이슬람은 술을 금기 시 하는 종교라고 여기게 되었지만 이슬람 시대 이후에도 음주문화는 명백히 존재했고 '아부 누와스(أبو نواس)'와 같은 유명한 시인들이 중국의 '시선 이태백'과 같이 술을 찬양하고 술을 즐기는 남자들의 호방함'을 즐겨 노래하기도 했다. 전에 언급했듯이 아랍세계에서 식도락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샴 지역'의 유명한 음식들이 안주문화의 소산이고 증류주로 유명한 우리나라 소주나 중국의 '바이주'의 원류가 이라크의 '아락'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술 마시는 아부 누와스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의 현직 국왕은 '두 성지의 수호자 (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로 불리는데 여기서 말하는 두 성지는 메카와 메디나의 모스크를 의미하고 이 두 지역은 이슬람 세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 극도로 보수적이고 종교적 성향을 가진 사우디 사람들은 과연 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 답은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데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판매는 하지만 알코올 (الكحول/놀랍게도 이것이 아랍어임을 알아야 한다)이 전혀 함유되지 않은 무알콜 맥주만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알콜 홀스텐 맥주

알코올이 함유되지 않은 맥주다 보니 맥주 고유의 향이나 맛으로 승부를 보기 힘들어서였을까 기본 '클래식'한 맥주 이외에도 다양한 과일 맛을 낸 맥주들이 유독 눈에 띈다.

다양한 과일맛 무알콜 맥주

딸기, 사과, 포도, 레몬, 파인애플, 복숭아, 라즈베리, 석류 등의 맛이 나는 맥주를 팔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맥주는 그래도 '클래식'이다. 과일 맛 맥주의 경우 맥주와 주스를 혼합한 맛이랄까? 아무튼 해마다 새로운 과일 맛이 추가되며 해당 맥주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맥주로는 '무씨'와 '버드와이저', '바비칸', '홀스텐' 등이 있다.

다양한 절임안주?

지중해성 기후 작물로 유명한 중동국가들은 다양한 절임(또르쉬/تورشى라 한다)을 밑반찬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올리브, 오이, 무, 당근, 고추 등을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 먹고 있다. 고기와 빵과 함께 곁들여 먹는 것도 좋지만 하나하나가 훌륭한 술 안주거리로 손색이 없다. 분명 술 문화와 함께 그 조리법이 발달했던 것이 분명해 보이고 특히 올리브의 경우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지중해변 국가인 리비아 (애석하게도 당신이 생각하는 그 리비아가 맞다. 시리아와 더불어 지금 만신창이가 된 그 나라)의 북부 해안가에 태양신 아폴론이 여자 '키레네'를 납치해 와 그 땅의 이름을 키레네라 짓고 올리브 농사와 양봉을 그 둘의 아들에게 가르쳤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유명한 올리브 산지로써 이 지역 올리브로 인해 남부 유럽의 올리브 농가가 모두 울면서 포도농장으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있다. 유명해진 프랑스 와인은 그럼 모두 리비아 덕분인가?


아랍어로 '싸딕 (صديق)'은 '친구, 벗'을 의미하고 '싸디끼 (صديقي)'는 '내 친구, 벗'을 의미하는데 술을 금지하는 중동국가 (물론 세계 최대의 아랍국가인 이집트와 인접국가 터어키처럼 술 제조, 판매, 구입이 합법화된 나라도 있다. 이집트의 사카라, 스텔라 맥주나 터어키의 에페스 맥주는 아주 유명하다)에서 밀주를 지칭하는 은어가 바로 '싸디끼'다. 싸디끼는 곡류나 과일 등을 이스트 등으로 1차 발효한 후 2차 증류하여 무색, 무취한 것이 특성이며 플라스틱 물병에 담아 놓을 경우 물과 육안 구별이 어려운데 투명도가 높고 냄새가 없는 것을 상품으로 여긴다. 매우 알코올 도수가 높아(말 그대로 밀주라 매번 도수가 변한다) '스트레이트'로 사용하지 않고 통상 주스나 무알콜 맥주 등으로 희석하여 사용하는 것이 관례이다. 1970년대 중동 붐으로 이 지역에 진출한 많은 한국분들이 이 밀주의 이름을 '싸데기'라고 했는데 이는 아랍어 '싸디끼'의 한국어 버전으로 이해해야지 어떤 분의 주장처럼 이 술을 마신 사람이 이성을 상실하여 아무에게나 '귓싸데기'를 날려 대서 그 이름이 굳어졌다는 것은 그 논거가 매우 취약하지 않는가 하는 게 나의 어줍챦은 소견이다.


한편 2015년 11월 펩시콜라 캔으로 위장한 하이네켄 상표의 맥주를 몰래 밀수입하려던 업자들이 사우디 경찰에 대거 적발되었다. 술의 제조, 유통, 판매, 구매행위가 일절 금지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이 같은 행위가 적발되면 매우 엄중한 처벌을 피할 수가 없으며 국선 변호인이 본 사건을 기피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소한 아래 사진이 보여 주는 형량을 피해 가기는 힘들지 않을까? 회초리 70대 공개 처벌형이다.



아랍어로 '술에 취한' 상태를 '싸크란 (سكرا)'이라고 하는데 뭔가 상대방이 정신을 못 차리고 횡설 수설 하는 상황에서는 사용될 수 있겠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이 표현의 사용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발효의 과정이 당분의 화학적인 변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면(설탕이 아랍어로 '쑤카르'/그러고 보니 설탕 대체품으로 개발된 '사카린'도 여기서 나온 말인 듯) 위에 언급한 '술에 취한'이라는 표현은 '당분에 절여진' 또는 '설탕에 길 든'이라는 뜻의 풍자적 의역으로 받아들임이 가능하리라 생각되며 커피나 차 등의 기호품은 말할 것도 없고 과자, 과일 등 당분이 듬뿍 함유된 것을 최상품으로 치는 이들의 유구한 습관이 어쩌면 금기된 술을 대체하는 문화인류학적 금단 현상이라면 나의 짧은 억측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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