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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n 24. 2024

김비서는 달린다

“여보게, 세상에 어떤 일도 화장실 거사를 끊고 튀어나와야 할 만큼 급한 일은 없다네.”

작은누나에게 내가 보낸 톡이야.

출근길, 전에 없이 전화를 걸었더니 작은누나 목소리가 좀 이상하더라고.

아무래도 어디가 아픈가 싶어 다시 톡을 보냈잖아.

저런!

글쎄 변기에 앉아있다 혼비백산 전화를 받아서 그랬다는 거야.

평소 전화하는 시간이 아니라서 무슨 일 생긴 줄 알았다나.

내 엄마가 그러시잖아.

항상 조마조마 마음 졸이는 양반.

아무 일도 아닌데 크게 놀라고, 어딘가 조급하고….

안 그래도 엄마를 꼭 빼닮은 작은누나인데, 그것까지 같을 필요는….

누나 가족들이 평생을 그렇게 산 거야.

전화 한 통에 놀라고 또 안심하면서.

안쓰러웠어.

분명 동생인데, 언니 같거든.

작은누나 대학 다닐 때 장마철이면 열일 제쳐놓고 우리 집 와 있었잖아.

사정을 몰랐던 당시 남자 친구, 현 제부께서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여친이 방학만 하면 득달같이 지방으로 사라지는지 속앓이를 꽤나 했었다는구만.

작은누나 아니었음 우리 아마 버티기 힘들었을 거야.

결혼식 할 때도 작은누나가 웨딩플래너처럼 다 알아보고 상담하고 계약하고….

일찍이 이런 명언을 남기셨지.

“내 결혼식 준비는 재혼하는 느낌이더라고.”

작은누나, 막내누나랑 내 배꼽 강탈 자거든.

조심해야 한다니까.

한 번 입 열면 너무 웃겨서 눈물까지 쏙 빼야 끝이 나요.

누나가 유주 임신 확인했을 때도 나보다 더 크게 울며 기뻐해준 동생이야.

그런데 둘이 한 날 엄마가 될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

분명 예정일이 달랐거든.

나는 11월 26일, 동생은 12월 15일.

둘 다 배가 남산만 해 가지고 친정집에서 한 달 스텐바이.

11월 29일 자정이 다 되어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라.

비 오는 밤길, 엄마차 타고 병원에 갔지.

30일 낮 12시 16분에 유주를 낳았어.

자연분만하는 과정에 유주가 태변을 먹었다고, 위험하다고 했던 것 같아.

가족분만실에 있다가 수술실로 옮겼던가.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와중인데, 곁에 있는 친정 엄마 전화를 받더니 깜짝 놀라시는 거야.

“김서방네 아기 낳았대.”

그렇게 나와 동생이 나란히 한 날 엄마가 됐다는 사실.

조카가 유주보다 6시간 오빠.

쌍둥이처럼 아이들 키웠어.

나 모유 많이 모자랐거든.

족발투혼, 아무 소용없더라.

분유 혼합해서 먹였는데, 함께 조리하는 동안 작은누나가 유주 젖도 물리고 그랬었어.

한여름이건 겨울이건 방학만 하면 이모집에 가는 거야.

천사 같은 이모부랑 이모가 유주 좋은 세상 많이 보여줬다.

첫 해외여행도 유주 이모네 식구랑 다녀왔잖아.

유주에게 이모들은 엄마나 진배없어.

쌍둥이 오빠와의 캐미도 남달라.

언젠가는 둘이 싸웠다며 연락처를 차단했다길래 내가 말해줬지.

“안타깝지만 두 분은 차단한다고 끊어질 관계가 아니세요.”

둘이 노는 거 보고 있음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이제 중학생 됐다고, 대화 주제가 이래.

“야, 니네 이번에 자유학기야? 수학 어디 풀어?”

“우리는 1학기에 시험 보고, 2학기가 자유. 너네 학원은 선행하지?”

“1차 방정식 좀 어렵지 않냐?”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난 쉽던데…. 호롤롤롤로. ”

뭐 이런 식이야.

서로 약 올리다가 같이 뛰어댕기다가.

 여름방학하면 작은누나 식구랑 우리 모녀, 친정 부모님 함께 생전 처음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려고 해.

올 해가 우리 엄마 칠순이시거든.

일곱 명이 떠나는 여행이라서 준비할 것이 많아.

목적지는 베트남 나트랑으로 정했네.

아무래도 휴양지가 좋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봐봐.

작은누나 부부가 청소년 둘, 노약자 둘, 장애인 하나를 인솔하는 거야.

A부터 Z까지 작은누나가 검색하고 일정 짜고 예약하고 결제하고 공지하고 당부하고….

솔직히 이 멤버로 같이 움직이는 것은 처음이라서 작은누나 부부 어깨가 무거울 텐데 흔쾌히 팔을 걷어 부쳤어.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 집 대소사 전문 해결사가 추진한 거지.

신경 쓸 것이 한 두 개겠어 어디.

첫 판부터 내가 본의 아니게 진상을 부렸잖아.

막상 날짜를 잡으려니, 유주 생리 주기가 마음에 걸렸어.

나는 방학, 그러니까 성수기에만 움직일 수 있는 몸이니 같은 상품인데도 비용은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일곱 명 단가가 일개미 하나로 인해 오르락내리락.

다행히 제부는 어렵사리 휴가를 냈다더라고.

세 번이나 날자를 변경해서야 겨우 계약이 성사됐어.

작은누나 눈 빠지고, 블랙리스트 되고 격로 각인데, 이 언니에게는 화낼 줄 모르는 바보로 세.

다음 주 약속한 편집자 미팅에도 작은누나가 동행하기로 했다.

김비서 진짜 바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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