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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

by 밀도 Mar 06. 2024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모범생 민수가 수능시험에 응시했다. 수시 전형으로 원서를 접수하고 6개 학교 면접 준비에 여념이 없다. 틈나는 대로 대입에 도움이 될만한 질문을 찾아 토론했다. 민수는 말에 강하고 글에 약하다. 고3 학급 반장으로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급 상황을 두루 살핀다. 멍안마의 대가 대중이의 달팽이 같은 행동을 나무라고, 잠꾸러기 홍시를 어르고 달래 이동 수업에 늦지 않도록 신경 쓴다. 지선이 누나가 간식을 흘리면 로봇 청소기처럼 치운고, 전맹 선생님들 옷에 티가 묻은 것을 빠짐없이 짚어준다. 분리수거며 교실 청소는 말할 것도 없다. 

독서지도자 연수에서 NIE 수업 모형을 배웠다. 마침 이태원 참사 관련 기부 천사 기사가 귀에 들어왔다. 인쇄물로 출력하여 민수에게 주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첫째, 그 아저씨는 왜 굳이 익명으로 유가족을 위로했을까?

둘째 지금 내 손에 1천만 원 현금이 쥐어져 있다면 같은 방법으로 기부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이랬다.

‘나 같으면 못하지. 암만. 당장 나부터 사정이 빠듯한데 오지랖이고 말고. 일하는 장애인이라서 장애연금도 못 받고… 작년에 투자한 주식 제대로 쪽박 난 다름 아닌 내가 불우이웃인데 기부는 무슨.’

“선생님 저 다 생각했어요.”

“그래. 어떻게 생각했어?”

“저라도 익명으로 했을 것 같아요. 굳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 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것을 생색내고 주변에 막 알리는 것은 뭔가 자기만족을 더 크게 생각하는 사람일 것 같아요. 제 손에 만약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금이 있다면 30%는 기부하고, 나머지로는 휴대폰 사고 대학 등록금 하고 그럴 거예요. 뉴스 보면 수재민도 많고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고, 그런 분들께 도시락도 드려야 할 것 같고. 저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버스에서 짐 들고 타는 할머니 손 잡아 드리고 짐도 들어 드렸어요.”

 퇴근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동네 마트에 들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제법 쌀쌀한 기온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참에 앳된 청년들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들 잠시만 저희 얘기 들어주세요. 지금 우리 사회에 아동학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시나요?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저희가 지금 대학병원에서 3일 안에 응급 수술받아야 하는 아이의 수술비를 모금하고 있어요. 바쁘시더라도 꼭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미 많은 곳에 후원금을 내고 계신 천사표 활동지원사님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세상에 비도 오는데 고생하시네. 하루 종일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후원자는 많이 모였나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희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인데요. 정말 나쁜 부모들이 너무 많아요. 상처받고 학대당하는 어린이들이 수술비가 없어 죽어 갑니다. 실제로 한 초등학생이 의식 없이 응급실에 실려 왔는데 깨자마자 아빠가 어디 있는지부터 확인하더니 가까이 없다는 얘기 듣고 그제야 안도를 하더래요.  후원 등록해 주시면 매달 20,000원씩 세이브 더췰드런에 자동 이체 됩니다. 어린이들에게 전하실 메모 여기 적어 주시면 저희가 직접 읽어줄게요. 어머님들의 도움이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지원사 선생님이 후원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짠했지만 최소 20,000원이라는 금액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실컷 얘기 듣고 그냥 돌아서려니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선생님도 같이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가 딱 6시까지만 모금 활동을 할 수 있는데 두 분만 더 도와주시면 그 아이 치료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병원까지 다 섭외해 놓은 상황인데, 수술비 없이는 진행할 수 없어 의사 선생님들도 난감해하고 계세요.”

청년들 목소리가 크니 마트에 들고 나는 사람들이 다 나를 주시하는가 싶었다. 슬며시 그 자리를 혼자 피할 제간도 없었다. 떠밀리듯 후원을 수락했다. 이번에는 내 몫의 서류가 천사표 선생님 손에 맡겨졌다. 금융 관련이라서 서명할 곳이 많았다. 한참을 쓰고 있자니 청년이 다가와 자필이 아니면 후원이 불가능하다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익숙하고 익숙한 거부 아니던가!’

장애로 인한 차별은 어김없이 쓴맛이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잘 알겠습니다.”

도망치듯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장을 보고 나오는 길, 다시 그 청년이 다가왔다.

“본부에 확인해 보니까 대필로 서류 작성하셔도 된답니다. 너무 다행이지요.”

청년의 들뜬 목소리가 한 구두쇠의 지갑을 열었다.

 학교는 감옥이라고 외치던 중학생이 있었다. 분노조절장애처럼 보였고 선생님들 걱정을 한 몸에 독차지했다. 밤마다 까만 운동장을 홀로 뛰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센터 운영 자금을 후원받기 위해 사업 계획을 설명하는 포스가 낯설었다. 졸업 후 10년 넘는 세월 동안 사회복지 석사 과정까지 공부하고 서울에 작은 장애인자립센터를 열었다며 소장 직함이 박힌 명함을 건넸다.

“선생님 금액보다는 인원이 중요해요. 꼭 도와주세요. 후원자 리스트가 모여야 저희 시설이 정식으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거든요. 서류 놓고 갈게요. 적은 금액이라도 좋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싫으나 좋으나 자동 납부가 개시됐다.  매월 20일이면 어김없이 출금 문자 알림음이 울린다. 본의 아닌 선의가 정기 알람이 되어 내 속에 똬리 튼 악마 하이드를 가격한다. 

민수의 합격 소식이 속 속 날아왔다. 뛸 듯이 기뻐하는 녀석은 틀림없이 내로라하는 사회복지사로 자라리라. 외로운 이웃들의 빈손을 온정 넘치는 손길로 마주 잡고 따뜻한 체온 나누며 ‘함께’를 실천할 거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로 클 거다.

편의점에서 플랙스 하고 택시 아닌 버스만 타고 다녀도 민수는 욕심부리지 않는다. 

얄팍한 선의로 시커먼 탐욕을 가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웃으며 화내는 스승이다. 청출어람 청어람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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