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소녀가 벌써 카공족이 되었어.
중학교 첫 시험을 앞둔 이 시점에서 학원이 끝난 저녁 늦은 시간, 유주가 친구들과 공부한다며 동네 카페에 가기 시작한 거야.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니, 누나 마음이 이만저만 불안한 것이 아니구나.
네가 있었으면 두 번도 생각 않고 몇 시든 어디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중 나갔을 텐데.
형은 야근이었어.
근데, 형이 집에 있어도 누나가 바라는 만큼 유주 픽업을 해주지 않아서….
처음으로 큰소리 내며 다투었네.
주말을 맞아 한겨레 출판에서 나온 권남희 번역가의 『스타벅스 일기』를 읽었어.
반려견 나무를 떠나보낸 후 맡닥드린 ‘빈 둥지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 스타벅스에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저자 눈에 담긴 카페 풍경과 사유가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펼쳐졌어.
누나 카페라는 공간을 유독 동경하잖아.
커피 향 가득한 공간이 주는 여유와 사람 풍경을 나도 가지고 싶어서….
헬렌켈러가 사흘만 눈을 뜰 수 있다면 거리 풍경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던데, 누나도 비슷한 마음.
보통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마주 앉은 이들 사이 분위기와 소리를 무람히 관찰하고 싶은….
권남희 선생은 일본문학 번역가야.
내가 또 일본 소설 마니아인 관계로 그분의 번역작을 줄줄 꽤고 있잖아.
‘얼마 전에 『라이온의 간식』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번엔 산문이구나.’
나 혼자 반가워하며 책마루 재생 버튼을 눌렀어.
‘와우! 스벅의 티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구나. 인터넷 검색해서 메뉴 공부 좀 해야겠군.
다음에 갈 때는 자몽블랙티를 주문해 봐야겠다. 울 아빠가 좋아하시는 호두가 들어간 음료도 있었구나. 파인코코 어쩌고 하는 요구르트도 꼭 맛봐야지.’
사실 누나가 카페에 갈 때마다 그 많은 메뉴를 다 읽어달라 하기도 그렇고 하여 주로 ‘아아’ 아니면 ‘뜨아’ 정도를 택하게 되거든.
착한 카페 ‘이디야’는 점자 메뉴판을 만들어 제공하는 은덕을 베푸사 이 맹인에게 여유롭게 메뉴를 살펴보고 가격까지 찬찬히 비교해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을 선사해 주셨더랬지.
『스타벅스 일기』에는 저자가 스벅에서 베이비 시터를 한 이야기며 당근 마켓에서 초등학생에게 사기당할 뻔 한 사연, 동네 할아버지로부터 들기름을 두 병 산 덕에 의도치 않게 불금 저녁 스벅을 탐사한 이야기, 나고야 어느 근사한 호텔 스벅에서 맞은 아침과 아픈 아기에게 선뜻 선물한 손수건, 치매 판정단 방문 시 노부모교육 꿀팁에 얽힌 우리 모두의 사연들이 무겁지 않게 녹아 있어.
짧은 시간, 끝까지 술술 읽혀버린 문장 중 기억에 남은 대목.
“〈브러시업 라이프〉처럼 인생을 리셋한다면 그날 오후에 아빠를 만나러 갔으려나. 가면 아빠를 만나야 하고, 가지 않으면 너를 못 만나고. 어려운 문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엄마가 와서 진지하게, 가끔 흥분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의 목소리가 얼핏 들리는데 아빠와 냉전 중이어서 속상함을 털어놓는 것 같다. 하아, 나도 많이 들었지. 아주 많이. 그럴 때마다 나도 같이 욕하고 싶었지만, ‘교육상 좋지 않아’ 하고 애써 아빠 편을 들었다. 그러면 정하가 한마디 했다.
“엄마, 그렇게 교육적인 멘트 하지 않아도 돼.”
정하는 누구보다 나의 스타벅스 생활을 기뻐하고 응원했다. 기프티카드와 기프티콘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아, 그런데 《스타벅스 일기》원고를 마칠 즈음에 정하는 오피스텔 월세가 터무니없이 올랐다며 만 2년 동안의 독립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에게는 알뜰하면서 엄마한테는 아낌없이 쓰는 것이 눈물 포인트다. 정하가 집에 돌아와서 너무 기뻤지만, 너무 기뻐하면 다음에 독립할 때 부담스러워할까 봐 적당히 기뻐했다.”
강산이 떠나고 아프게 겪었던 빈 둥지증후군.
플루트 배우면서 가슴에 뚫린 그 구멍 메우려고 안간힘 썼었는데.
악기는 온데간데없고, 지금 누나 머리는 유주 부녀 생각으로 가득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