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아 누나 주말에 남산 산책로를 다시 걸었어.
작은누나가 내 친구들까지 가이드해 준 덕에 서울 나들이 잘하고 왔네.
대학로 가서 연극 『라면』도 봤다.
단 다섯 명의 배우가 무려 100분을 꽉 채워서 공연을 했어.
코앞에서 배우들 음성과 발자국 소리가 생생히 느껴지는 소극장 공기가 누나는 참 벅차구나.
대사 한 마디, 동작 하나하나 그야말로 영혼을 담아 라이브로, 땀 뻘뻘 흘리며 열연하는 모습 앞에 게으름뱅이 누나는 맥없이 겸허해지고 마는 거야.
‘저렇게 열심히 사는 젊은 배우들 무대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예술인 복지 제도가 더 촘촘해져서 미술·음악·문예작가들이 밥 걱정 덜 하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사회면 좋겠다.’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생각을 했네.
연극 『라면』에는 두 커플이 등장해.
두 남녀의 사랑이 시작된 10대 시절부터 20대, 30대, 40대로 세월 따라 변해가는 우리 사는 모습을 코믹하고도 진솔하게 표현했더라고.
서울 시민인 작은누나 덕에 시골 맹인들이 복잡한 서울 한복판을 원샷으로 즐겼어.
친구들은 저시력이거든.
본인들도 눈앞에 사물만 겨우 식별하면서 더디게 보행하는 형편인데, 전맹인 나를 살뜰히 잘 챙겨줘.
시골 소도시에서만 사부작사부작 그렇게 셋이 놀러 다니다가 모처럼 큰맘 먹고 작은 누나를 청한 거야.
그 유명한 남산왕돈가스도 맛보고, 저녁에는 거하게 삼겹살도 먹었다.
너도 알다시피 형은 휴일과 관계없이 교대 근무하고, 유주도 이젠 누나랑 안 놀아주니, 주말이면 체력이 닿는 대로 친구들을 찾게 돼.
마음 맞는 이들과의 시간이 매번 ‘정답’이 더라니까.
전맹임에도 매일 새벽 혼자서 남산 산책로를 걷고 뛰는 장선배 있잖아.
글쎄 4시 반이면 집을 나선대.
새벽 남산을 가진 여자, 너무 대단하지?
그래. 누나 결혼식에서 반주하기로 했던 그 형 같은 누나 맞아.
결혼식 당일, 반주자 늦은 줄도 모르고, 누나는 신부 입장 때 흘러나온 피아노 소리가 당연히 그 선배 연주인줄 알았잖아.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당장 예식은 시작되는데, 반주자는 안 오고, 누나 엄친딸 아니었으면 심심한 MR에 맞춰 입장할 뻔했다는….
정작 신부는 그 사실을 신혼여행 다녀와서야 알았다는….
나 같은 사람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네.
그날 피치 못하게 약속을 펑크 낸 장선배는 오늘날 어엿한 개인사업자로 승승장구하고 있어.
광화문 한복판에 지하상가를 하나 사서 안마원을 개원한 거지.
장사장님이 작은누나 결혼식에서 근사하게 반주를 책임져 주신 덕에 작은누나랑도 친구가 되었지 뭐야.
나도 새벽 남산 공기 맛보고 싶어서 조만간 장사장님 따라가보려고.
그토록 ‘혼자’를 갈망하면서도 누나는 겁부터 나거든.
막상 ‘혼자’가 되면 무서워지고 마는 거야.
그래서 누나 눈에는 어디든, 언제든 혼자 씩씩한 장선배가 존경스럽기만 하구나.
노는 게 제일 좋은, 대책 없는 이 누나의 다음 행선지.
새벽 남산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