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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라산’ 아니고 ‘함라산’

by 밀도


휴일을 맞아 모처럼 가족 등산을 했어.

함라산 둘레길 왕복 9km를 두 시간 만에 주파했네.

역시 우리 세 식구 중 가장 저질 체력은 예나 지금이나 ‘나야 나’.

유주에게 ‘습습 후후’ 호흡법을 배웠어.

신기하더라.

진짜 걷는 것이 훨씬 편해지더라고.

형이 원체 빠른 사람이잖아.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니, 버벅거릴밖에.

몇 번을 쉬었는지 몰라.

집에서 거리가 제법 있는 산인데, 형 덕분에 반나절 짧고 굵게 잘 다녀왔네.

목표 지점에 다 달아 유주가 좋아하는 젤리를 하나 꺼냈어.

아이 주려고 챙긴 건데 내가 다 빼앗아 먹었지 뭐야.

아빠 가방에서도 딸이 좋아하는 마이구미가 한 봉지 나왔어.

다디단고다디단 밤양갱 보다 더 달콤한 후르츠젤리.

실로 오랜만에 함께 한 우리 가족 봄나들이맛.

하산하고 집에 오는 차 안, 천사 활동지원사님 보내주신 톡.

“뭐 하십니까? 답답하면 좀 걸을래요?”

욱신거리는 종아리 통증이 나른하니 기분 좋은 귀갓길.

아이폰 쉬리를 호출하여 ‘받아쓰기’ 기능으로 또박또박 발음하며 메시지 내용을 읊었어.

“ㅋㅋㅋ 감사합니다. 오늘은 모처럼 유주 아빠랑 셋이 함라산 다녀왔어요. ”

보내기를 눌렀는데, “웬 할라산?”

그래도 우리 찰떡 선생님.

“함라산. 네. 쉬어요.”

명품인품의 소유자 활동지원사님이 곁에 계셔서 누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매일 통근이며 운동, 이동 지원뿐 아니라 인생 멘토로 사사건건 누나에게 큰 도움 주시거든.

무엇보다 이렇게 쉬는 날에 먼저 연락을 주실 때면 뭉클 감동이 밀려오 는 거지.

요구에 젬병인 누나가 선 듯 부탁 못하고 망설이는 참에 그렇게 말씀 주 셔서 성사된 은혜로운 산책이 셀 수 없음이러라.

누나 원고 작업하다가 막혀서 끙끙거리다가도 한바탕 걷고 나면 신통하게 글타래가 풀리고, 잔뜩 흐렸던 기분이 거짓말처럼 맑아지는 매직.

다름 아닌 강산이가 누나에게 선사했던 놀라운 해방감이었는데….

하나님이 누나 눈 대신으로 형을 보내주셨나 싶었고, 더 단단한 부부 되라고 유주 주셨구나 싶다가 강산이 없어도 숨 쉬고 살라고 활동지원사 보내주셨나 보다 깨닫는 중이야.

누나 한 번 움직이려면 한 주 전부터 시간 맞춰 장애인콜 예약해야지, 일반 택시 탈 때는 좋은 기사님이길 빌어야지, 구간구간 안내도우미 신청해야지 챙기고 기다려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직진박사 형과 함께 하니 과연 왕복 등산이 도깨비방망이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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