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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May 27. 2024

여수 낮 바다

작은누나랑 둘이서 단 10시간 만에 여수에 다녀왔어.

서울에 사는 작은누나가 혼자서 기차를 타고 친정집에 놀러 온 거야.

오리지널 번개.

당근 표가 없었지.

작은누나가 눈 빠지게 검색한 끝에 간신히 두 좌석을 잡아 그 길로 출발.

내 동생 얼마나 바빴는지 기차에 앉고 나서야,

“어, 역방향이네.”

20년이 넘도록 이용한 역이었건만 입구에 커피전문점이, 그것도 열차표가 있으면 10% 할인되는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을 나만 까맣게 몰랐구나.

작은누나랑 동행하니, 안내 도우미를 신청할 것도 키오스크 앞에서 멈칫거리며 주변에 도움을 구걸할 일도 없었어.

전에 없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손에 들고 여수행 기차에 올랐어.

누나가 자주 이용하는 상행 열차와는 사뭇 다르게 분위기가 흥겹더라.

주말이라서 더 그랬겠지만, 승객들 대부분이 등산객 혹은 여행객 같았어.

크게 웃는 소리며 담소하는 소리들이 출렁거려도 이심전심 넉넉한 객실.

 1시간 40분 만에 여수에 닿았어.

City 버스 접근성이 멋지더라.

코스도 다양하고 여수엑스포역을 기점으로 2층 순환버스가 운행되고 있었어.

시원한 바닷바람에 울창한 나무들이 거대한 그늘을 선사하는 섬 오동도 음악분수가 햇빛을 발했지.

나무들이 하나같이 우람하더라.

언니손 끌어다 ‘연리지’ 둥치를 만져주며 작은누나가 물었어.

“이런 걸 1타 5 피라고 하나?”

 데크로 조성된 산책로는 명백한 유장애길.

계단도 많고 폭도 간격도 제멋대로인 것이 보호자 없이는 절대 접근 불가겠더라고.

안전만 확보된다면 하루 종일 걸어도 좋을, 푸르른 섬이었네.

 다시 순환버스를 타고 음식물 특화거리에 내렸어.

게장백반으로 점심을 먹었거든.

시내 거리를 구경하는데 꼭 일본 유후인 느낌인 거야.

생초콜릿이며 딸기 찹쌀떡이 일본에서 맛본 간식이라서였을까?

SNS에 맛집으로 검색되는 곳에는 웨이팅줄이 어마어마했어.

기본 한 시간은 줄을 서야겠더라고.

번호표를 뽑고 유명 김밥집에서 시그니처 계란김밥과 갓김밥을 샀어.

정작 현지에서는 딱히 별미인지 모르겠는 거야.

그런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비로소 왜 맛집인지 알겠더라고.

고소하고 짭짤하고….

하루 종일 무겁게 들고 다닌 보람이 있었잖아.

이 시대 최고의 소식좌 내 아버지께서 그 김밥을 맛있게 제법 드시더라니까.

 점심식사 후에는 하멜전시관을 둘러봤어.

작은누나가 하멜장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준 덕분에 누나 교양이 소복소복 쌓이는 시간이었구나.

‘하멜 장군도 일기 써서 유명해졌구먼. 역시 사람은 글을 써야 해.’

낭만포차 거리가 탐났어.

한낮 지열이 솟는 땅바닥을 걷고 있자니 여수밤바다를, 낭만포차를 반드시 접수해야겠다는 투지가 샘솟더라고.

등대 앞에서 인증샷 찍는 것으로 호로록 떠난 여수 여행을 마쳤어.

짧아도 너무 짧았잖아.

귀가하여 저녁을 먹었으니까.

할아버지랑 유주랑 누나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막창전골냄비를 깨끗이 비웠어.

 팀으로만 움직이던 작은누나의 생애 첫 개인행동인데 그대로 끝낼 수야 없지.

서로의 뱃속까지 아는 자매가 뭉치니, 그야말로 두 여자는 날개를 단거야.

유주 저녁 챙겨줬겠다 다시 집을 나섰어.

코인 노래방에 들어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깔깔거리며 목이 쉬도록 놀았다.

변진섭이 부른 "새들처럼" 가사가 새삼 이렇게 좋았나 싶더라.

누나에게 두 동생은 다름 아닌 ‘인공호흡기’

작은누나는 언니 같고, 막내누나는 동생 같은 평생 동무들이야.

유주에게 형제자매 못 만들어 준 엄마라서 맥없이 또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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