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내면의 소리를 찾아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인생의 운전대를 기꺼이 잡으려는 용감한 분들일 것이다. 나의 마음에게,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타인에게 넘겨주었던 인생의 운전대를 다시금 거둬들이고 나에게로 가져오자. 오아시스 모먼트는 인생의 거친 폭풍 속에서 기꺼이 멈추고, 나를 마주하고, 나에게 답을 찾기 위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정이다. 때론 폭풍에 휩쓸려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모래폭풍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나에게로 집중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고요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문제와 나를 분리하여 바라보는 연습, 생각과 나를 분리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문제를 나의 전체로 보는 것이 아닌, 그저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총 4가지의 도구를 소개하려고 한다. 명상, 요가, 기록, 독서가 그것이다. 누군가는 뻔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구를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얻게 되는 결과는 달라진다. 이번화에선 명상에 대해 먼저 다뤄보자. 그동안 자기 계발서에서 소개된 내용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이 바로 명상이었다. 명상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따분하고, 지루할 것 같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부터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지 않았고,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명상을 배우면서 알게 된 것은 명상을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30분 동안 힘들게 앉아 있어야만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를 보내면서 잠깐 동안 의도적으로 멈추어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 걷는 그 순간 걷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고, 밥을 먹으며 먹는 행위에 집중하며 음식의 맛과 향, 질감, 턱의 움직임 등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또한 설거지를 하며 들려오는 물소리, 뽀득뽀득 그릇이 씻기는 소리, 감각 등을 느끼며 우리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일 수도 있다. 2022년, 명상을 접하고 나서야 나에 대한 수수께끼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해오던 요가, 기록, 독서가 모두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명상을 통해서만 깨달음이나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나만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내가 온전히 하나의 행위에 집중했다면 충분히 '명상적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 삶에 명상을 초대해 보자.
지금 내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인가
명상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 명상은 하나의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대게 자동적인 사고를 하며, 쉽게 생각에 빠지곤 한다. 이때 현재 하고 있는 행위에, 내가 의도한 것에 집중하는 것을 명상이라 한다. 호흡 명상, 걷기 명상, 싱잉볼 명상, 마음 챙김 명상 등을 들어봤을 것이다. 호흡 명상은 호흡에, 걷기 명상은 걷는 행위에, 싱잉볼 명상은 싱잉볼 소리에, 마음 챙김 명상은 현재의 나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명상 방법은 다양하며, 집중 명상, 통찰 명상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명상을 이해하든 그 핵심은 '알아차림(awareness)'이다. 무엇에 대한 알아차림인가. 내가 집중하는 대상에 대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생각에 빠지려는 우리의 습관을 호흡에, 소리에, 움직임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현재로 닻을 내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고요해진 우리의 마음속에서 나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현대에서 종교적인 색을 빼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명상 기법이 바로 '마음 챙김(mindfulness)'이다. 현재에 깨어 있기, 현존하기,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며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 아쉬움, 수치스러움에 대해 생각하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생각이 오고 간다. 여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사라지게 된다. 마음 챙김은 이러한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재로 닻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현재 나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지?', '현재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지?', '현재 나의 신체 감각은 어떻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마음 챙김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존 카밧진 박사는 “마음 챙김의 취지는 우리의 삶이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행위(doing)의 바닷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모든 행위를 멈추는 시간, 즉 존재(being)의 섬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라 설명한다. 행위모드를 넘어 존재모드를 배양하는 것은 고통받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슬퍼하는 나를 바라보고, 분노하고 있는 나를 허용해 주는 것이다. 그런 나를 자책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마음 챙김은 내가 경험하는 것에 대한 애정 어린 자각을 말한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좋든 싫든,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고 현상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신경해부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90초에 대한 화학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고쳐야 한다는 생각,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고통을 더 강화시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멈추고, 판단 평가 없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현재 내가 무엇을 경험하는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현존하는 것이다.
명상을 한다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명상을 하면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가?'가 그것이다.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마음의 풍경은 날씨가 계속 바뀌듯 맑았다가, 흐렸다가, 그저 그렇듯이 계속 변한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하지만 명상을 하다 보면 나의 마음의 변화를 보다 잘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어! 지금 내 마음이 불편해, 뭔가 이상한 것 같아, 이건 나에게 고통을 줘'와 같이 무뎌졌던 감정의 신호를 보다 잘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초반에 명상을 하다 보면 '오히려 더 괴로워지는 것이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일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동안 괴로움을 느끼지 못했던 건 고통이 너무나 오랫동안 쌓여서 굳은살이 베어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내성이 너무나 강해 고통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감춰졌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우리를 스스로 치유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비로소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 삶의 다양한 고통을 더 명료하게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명료해진 감각만큼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맞는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명상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명상 중 하나는 자애 명상이다. 자애, 자비, 연민으로도 해석되는데 자기 비난이 강했던 나에게 특히 도움이 된 명상법이었다. 인정욕구와 완벽주의 성향이 높았던 나는 스스로 준비된 상황이 아니면 도전하기가 두렵고, 나서고 싶지 않았다. 비난이 예상되는 상황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높은 기준을 들이댔다.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객관적으로 성과가 나오고 있음에도, 나에게서 계속 부족함을 찾아냈다.
이제는 내 안에 인정욕구와 완벽주의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은 어렵다. '그것밖에 못하냐'고 비난받을 것 같고, '네가 하는 게 그렇지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고, '그럴 줄 알았다'며 무시하는 말을 들을 것 같아 두렵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자기 연민 명상 프로그램인 MSC(Mindful self-compassion)을 들으며 나는 나의 자기 비난과 마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자기 비난을 하는 나와 자기 비난을 받는 나의 일부분과 마주한 것이다.
자기 비난을 받는 내면아이는 무서워서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자기 비난을 받는 아이에게는 가히 폭력적이었다. 무서워서 얼어붙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기 비난을 하는 나는 어땠을까? 그는 만족하고 있었을까? 당혹스럽게도 자기 비난을 하는 나의 일부분 또한 불만족하고 있었다. 큰소리를 쳐서 의기양양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나는 너를 도와주려는 건데, 왜 내 맘을 몰라주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고..!'
'아.. 그렇구나. 사실은 내 안의 자기 비난도 내가 타인에게로부터 비난받지 않도록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의 일부였구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를 보호해 주기 위해, 나를 동기부여 시켜주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렇구나. 표현방식이 달랐던 것뿐이었구나..', '나를 가혹하게 채찍질하지 않고 좋게 얘기해 줘도 나는 알아들었을 텐데. 그것이 너의 사랑의 표현이었구나..' 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니 내 안의 자기 비난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것에, 나에게 서운함을 느꼈다는 것에 공감이 되었다. 자신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존중은 없었으니까. 그를 존중하기보다는 나무랐으니까. 그렇게 나는 그동안 그의 노력들을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도 전했다.
'근데 사실은.. 나는 네가 좀 힘들어. 나에게 좋은 말로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거니?'
자기 비난을 하는 나의 일부에게 친절과 존중을 요청했다. 우리의 마음은 위협에 투쟁하며 자기 비난을 쏟아붓는다. 지금은 싸워야 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자기 비난은 우리에게 파괴적이기도 하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자기 비난이 아닌 자기 연민이다. 우리는 자기 연민을 통해 자기 친절을 연습할 수 있다. 자기 비난을 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렸을 때, 멈추고 친한 친구를 대하듯 나에게 친절하게 위로와 위안을, 용기를 줄 수 있다. 자기 연민은 자기 친절, 인간의 보편 경험, 마음 챙김의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자기 비난 대신 자기 친절을, 혼자라고 생각하며 고립하는 선택 대신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 걱정, 슬픔을 곱씹는 것이 아니라 마음 챙김 하며 현재에 현존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자기 연민 명상을 배우며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인간의 보편 경험이었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과 실수를 경험하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것,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위안이 되어준다. 우리는 때때로 삶의 어려운 부분을 만나면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고,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은 절망감에 빠지고, 세상과 나에 대한 분노가 차오르기도 한다. 받아들이려는 마음보단 밀어내고, 저항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한다. 마음이 굳게 닫히고, 공감과 위로, 연민 어린 시각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자기 비난이 올라오려는 순간 친한 친구를 대하듯,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나를 대해보자. '이것은 그저 고통일 뿐이야, 이것 또한 마음의 풍경 중 일부일 뿐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며 친절과 애정 어린 마음으로 나를 대해보자. 자기 연민은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동정 어린 시선과는 다르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나에 대한 애정 어린 자각이자,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의 자각이자, 나를 적극적으로 돌봐주는 용기 있는 자각이다. 힘든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에 새겨놓은 한 문장이 떠올라 고립되거나 자만하지 않도록 나를 잡아준다.
"왜, 당신에겐 그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앞으로 3주간 소개할 요가, 독서, 기록 또한 우리가 주의를 어떻게 집중하느냐에 따라 명상훈련을 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특히 요가는 움직이는 명상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독서는 글을 통해 나의 상황과 나의 감정과 연결할 수 있는 행위이며, 책을 쓴 저자와 대화하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기록은 나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행위가 된다. 우리의 잠시 눌러놓았던 감정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게 되며 생각만으로는 명료하지 않았던 상황이 쓰는 행위를 통해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거나 정리하며 새로운 통찰을 얻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나와 연결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복잡한 세상과의 소음으로부터 나의 마음을 듣는 시간을 갖다 보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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