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유리 May 31. 2024

나에게 솔직해진다는 것

불완전한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불완전한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인정해 줄 수 있는가이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인정을 바라다보면 나의 욕구보단 타인의 눈치를 보며 나를 맞추게 된다. 나에게 어색한 가면을 쓰게 되고, 마치 그 모습이 나라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속이며 조금씩 스스로를 잃어간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나의 길을 가고, 나의 것을 탐구하고, 나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면 된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답은 나의 밖에서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이기적이거나 독단적인 행동이 아니다. 비행 중 위급상황에서도 타인을 구하려면 우선 나부터 산소호흡기를 쓰도록 지시한다. 내가 먼저 살아야 타인에게도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 내가 나를 단단하게 지지하고 있을 때,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나에게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를 여전히 부족하다고,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아직은 즐길 때가 아니야, 아직 안주해서는 안 돼.’라며 가혹한 말들을 쏟아냈다. 타인의 인정을 그렇게 원했으면서도 정작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스스로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지금으로도 충분해, 힘들면 조금 쉬었다 가도 돼' 등의 위로와 이해였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사실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나의 인정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내면에 깊숙이 숨어있던 감정을 만나고 엄청난 해방감이 올라왔다. 10년 넘게 마음속에 혼자서 꽁꽁 싸매고 있던 감정을 쏟아내고 나니 이내 스스로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 올라왔다. ‘나의 선택이 옳았구나, 내가 나를 더 믿어줘도 됐었구나’라는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한편으론 서글프고 슬픈 마음도 함께 올라왔다. '내가 나를 믿어주기만 했으면 됐는데, 내가 나를 힘들게 했구나..',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구나..'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더 많은 행복과 기쁨들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20대보다 30대가 된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어둠의 시간이 없었다면 빛과 같은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방어기제


나에겐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 방어기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빠지면 고통스럽고, 서글퍼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고, 들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시키며 '계속 도전하는 사람',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며 나를 혹사시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나는 그저 실패한 사람으로 남을 것 같은 두려움, 비난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방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나를 혹사시켰던 건 방어기제 때문이었다. 방어기제란 감정을 회피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말한다. 우리는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감정들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이는 우리가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웃음으로 무마하기, 화제 돌리기, 시선 회피하기, 타인을 향한 비난 등의 방어행동이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실제 감정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우리를 조용히 무너뜨린다. 우리의 모든 감정들은 내면으로부터 보내져 오는 '구조 신호'이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은 우리의 감정과 방어기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초등학생인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타워에는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짜증이, 버럭이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기쁨이가 주가 되어 라일리를 이끌어간다. 나 또한 기쁨이, 긍정적인 마음에만 애정과 관심을 주었다. 나는 항상 긍정적인 사람이고,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프거나 화나거나 짜증 나는 것은 나쁜 감정이라며 나의 감정을 편 가르기를 했다. 하지만 내 안에 화와 분노도 있으며, 슬픔 또한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자 기쁨이에만 집착했던 나의 얄팍한 마음이 보였다.


영화에서 기쁨이 또한 슬픈이를 억압하고 나쁜 감정으로 치부한다. 슬픔이에게 허락된 공간 속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라일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슬픔이의 위로를 통해 라일리가 위안을 얻고 회복되는 것을 보며 슬픔이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임을 깨달아가며 성장해 나간다. 우리 안에겐 슬픔이도, 소심이도, 버럭이도, 짜증이도 살고 있다. 모든 감정은 존중받아야 할 우리의 일부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것을 잊고 살아간다.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 자아가 내뱉는 진실은 조금씩 흐려지기도, 우리를 보호하거나 맞서 싸우기 위해 다른 감정들로 가리기도 한다. 진실은 그렇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사실은 괜찮지 않았노라고, 사실은 슬펐다고, 사실은 외로웠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오아시스 모먼트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세상의 기대로부터, 부모님의 기대로부터, 친구들의 기대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우리에겐 절실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했던 감정 밑에 다른 감정이 숨어있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오늘 하루를 보내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그때 어떠한 생각이 올라왔는가? 혹시 부정적인 생각들을 밀어내지는 않았나?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감정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나를 마주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솔직해지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는지, 판단 평가하는 마음 없이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사회적 자아, 보이는 자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만의 진실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직 그곳에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진실이 숨어있다.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모래바람을 거둬내 보자. 잔잔하게 떠오른 당신만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화 다시 보기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다음화 이어 보기> 잃어버린 내면의 소리를 찾아서.


이전 06화 빛과 그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