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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May 12. 2023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내 몸

나의 폐경일지 2

얼마 전에 한국에 다녀온 친구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한국에서 쇼핑을 하는데 Medium도 끼더라! 여기서는 Small 입는데……”

“난 한국 가서 옷 사면 Large 입어야 해. 대체 한국은 왜 이리 옷이 작게 나오는 거야!!”


흥분한 중년 아줌마들은 대한민국 여성 옷 사이즈에 대해 한참을 성토했다. 참, 내가 말 안 했나? 나 외국에 산다고. 아무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년 전에 입었던 먼지가 뽀얗게 쌓인 여름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역시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이가 먹으니 살이 찐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위에 살이 찐다. 많이 찐다. 울퉁불퉁한 내 몸을 쳐다보며 가끔 ‘이런 곳에도 살이 찌는구나’라는 신기함마저 느낄 정도다.


우선 등에 살이 찐다. 속옷이 등살을 파고 들어가 몸에 밀착되는 셔츠를 입기 민망할 정도다. 허리 라인이 없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팔뚝살이 늘어지며, 마른 체형도 두툼하게 배가 나오기 시작한다. 중년 여성들은 호르몬 변화와 기초 대사량이 낮아지면서 배에 지방이 쌓인다. 사이즈 변화를 받아들일 시기가 된 것이다.


솔직히 평균적인 한국 아줌마들이 체형이 요즘 젊은이들처럼 길쭉길쭉 늘씬늘씬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사이즈 (자)부심은 있었다. 젊은 시절 XS을 입고 나이가 조금 먹어서는 S를 입었다. 더 나이가 먹고 솔직히 S사이즈를 입고 불편하기는 했지만 호흡곤란 없이 껴입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침대에 누워서 바지를 입어도(작아진 바지 입는 방법 중 한 개) S는 무리다.


중년이 되어 가장 어려웠던 것은 현재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살은 찌고, 체력은 전과 같지 않다. 눈은 침침하고 귀도 안 들린다. 흰머리가 생기고 헤어 라인은 정수리 쪽으로 빠르게 후퇴 중이다. 지금 거울 속의 저 여자가 내가 맞나? 깊은 주름과 검은 기미(설마 검버섯은 아니겠지?), 처진 눈과 탄력을 잃은 피부. 내 얼굴이지만 낯설다. 젊은 시절 주연 자리를 독차지하던 여배우가 나이가 먹어 조연으로 밀려날 때 이런 느낌일까?


변화에 적응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년기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젊고 싶다. 어쩌면 나는 '내 젊은 몸'이 아닌 '내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을 놓아 버리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버릴 것처럼. 중년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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