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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7. 2021

월세가 아깝다면? 다음 순서는 전세다

월세는 아꼈지만 지금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기도 했다.

3줄 미리 보기

월세가 아깝다면 전세를 알아보자.

월세로 집주인에게 주는 돈보다 전세자금 대출 이자로 은행에 주는 돈이 더 싸다.

전세로 갈아탈 목돈만 만들어보자.



2년을 살았다. 2년이 좀 넘는 월세 살이 기간 동안 강력한 화력의 가스레인지 덕에 얇닥한 냄비 하나를 홀랑 태워먹은 것과, 욕실이 좀 작고 추웠던 것이 유일한 흠이었던 나의 첫 집. 냉방병 걸리게 에어컨 빵빵하게 돌려도 전기요금은 3만 원을 안 넘고, 위아래 좌우 살림집 사이에 딱 끼어있는 최상의 배치 덕분에 보일러를 안 틀어도 크게 춥지 않은 호사를 누린 시간이었다. 급기야 내가 계약을 끝내고 나갈 때 생판 모르는 사람이 계약하게 하는 게 아까워 주위에 독립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돌렸으니 말 다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원룸은 집이 아니라 구멍이라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데 대략 1년이 걸렸다. 1년이 지날즈음, 난 주방과 각종 기물을 마주하지 않는 ‘집’을 원했다. 침실은 침실로, 거실과 주방은 거실과 주방으로 구분된 공간에서 살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1.5룸 혹은 투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본을 모아야 이동이 가능한지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다.


1.5룸은 구하기 매우 힘들었고 대부분은 신혼부부들이 살법한 투룸이었다. 그리고 투룸은 월세보다는 전세가 더 많았다. 역에서 아주 멀면 저렴하게는 보증금 1.5억에서 역과 가까우면 2억까지 갔다. 그 정도 현금이 당장 있을 리 없었고. 그러다 불쑥.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 혼자 모은 돈은 부족했지만, 둘이 힘을 합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두 사람이 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내가 생각했던 원룸 전세가 아닌, 한 단계 점프한 투룸으로 직진했다.


집을 구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구하는 단계가 처음보다 매우 심플해졌다. 첫 독립에는 어디로 이사 갈지, 어떤 형태의 거주 방식을 선택해야 할지 마음속 가이드가 전혀 없었다. 집을 직접 보러 다니면서 어떤 형태의, 어느 지역이 나에게 맞는지 새로 찾아야 했다. 하지만 전세는 달랐다. 최소한 지역은 확정을 지은 상태였고, 2인 가구가 살 수 있는 집의 형태도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다. 아파트 아니면 투룸 빌라였다.


언감생심 아파트는 꿈도 못 꿨다. 둘이 돈을 모아 보증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보니 대출 외에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자부담 금액도 둘이 만드니 좀 더 수월했다. 그래도 인생 첫 대출만으로 충분히 쫄리는데, 심지어 1억이 훌쩍 넘는 금액을 빌리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아는 것을 이때도 알았다면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나마 좀 수월했던 것은 월세 계약할 때 만났던 중개사 부장님의 톤 앤 매너가 우리 커플이 대하기 매우 편한 스타일이었어서 여러 중개사를 통하지 않고 그분에게만 집을 구했던 것 정도다. 가지고 계신 매물을 보거나, 직방에서 눈에 띄는 매물의 링크를 공유해 볼 수 있도록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면 회사 점심시간에 택시라도 타고 날아가서 집을 보고 왔다. 역시 이번에도 10곳을 넘게 봤고, 2룸 빌라는 놀라울 정도로 선택지가 심플했다. 연식과 위치로 아주 미묘하게 보증금의 수준이 갈렸다. 매일매일 직방과 다방을 리뉴얼해가며 매물을 검색했고, 지하철역 기준 도보 10분까지 넘어가면 1.5억, 역으로 가까워질수로 2억에 가까운 금액으로 올라갔다.


투룸 빌라의 구성은 대략 이랬다. 5층 내외. 엘리베이터는 있고, 완전 신축(첫 입주)의 경우는 제법 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이 기본으로 장착되어있었다. 천장형 에어컨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 정도면 따로 살림을 사지 않아도 될 수준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집을 구할 때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투룸이 있었으니 투룸인 도심형 주택이었다. 10층 이상의 고층이고, 기업형으로 추정되는 명칭을 갖고 있었다.


원룸 월세는 크기, 위치, 안전장치 등 다양한 옵션이 있었지만 투룸은 평면도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오로지 위치와 연식으로 인한 미묘한 가격 차이뿐이었다. 신축으로 가면 갈수록 옵션도 거의 비슷하다. 문자 그대로 집장사들이 똑같은 구조의 집을 서울 여기저기 깔아놓고 위치별로 돈을 벌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그 집장사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일 뿐이고.


여하튼. 우린 집이 필요했고 직방을 활용해 중개사 부장님께 이 집 저 집 보여달라는 매우 적극적인 세입자였다. 가장 마지막에 본 집이 우리의 낙점을 받은 집이었다. 부장님이 가지고 있는 매물은 좀 더 비싸고, 좀 더 새것이었으나 나는 좀 더 오래되었고, 좀 더 멀리 있지만 베란다가 있고, 앞이  비교적 시원하게 트여있는 6층짜리 빌라를 선택했다. 비록 북향이었지만 바로 옆에 고등학교가 있어서 운동장 쪽으로 일부 베란다 창이 나있어서 저녁노을이 근사했다. 베란다에 대한 니즈를 아시는 부장님의 추천 매물이었다. 당시 거주하던 세입자분은 지하철과 비교적 가까운 입지, 전통시장의 활용, 베란다에 세탁기와 각종 물건들을 빼고 사용하면 집안이 훨씬 쾌적하다는 것을 어필하셨다. 다른 층에는 없는 베란다라며. 난 어디든 이사 들어갈 때보다는 나갈 때가 중요했다. 나중에 이사를 나올 때 수월할 집을 최선을 다해 고른다면 좋은 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2살 내외의 아이와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왜 이사를 가냐는 말에 “아이가 뛰니까 층간소음으로 말이 너무 많아져서 집을 샀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층간소음은 각오하고 시작할 일이었다. 비록 옵션은 없었지만 전에 사시던 세입자분들이 달아놓은 에어컨 매입하고 딱 냉장고와 세탁기만 사들고 계약을 하기로 했다.


계약 직전 부동산 부장님께 여쭤보았다.


건물주 아저씨 어때요? 부자예요?
예. 그럼요. 관리도 철저해요


아예 다른 곳에 출근하시는 법이 없는 건물주 아저씨는 건물 주위를 매일 돌아다니면서 관리를 하셨고, 여기 외에도 다른 아파트가 또 있다고 하셨다. 우린 부자 건물주를 좋아했다.


월세 보증금은 그래도 금액이 적기라도 한데, 전세보증금은 건물에 담보가 잡혀있거나 하면 크리티컬 한 문제가 된다. 필로티 구조로 실질적으로는 8층 높이의 7층짜리 건물의 등기서류는 매우 깨끗했다. 부자인 건물주가 이 건물을 담보 잡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확정일자를 받고 입주를 한다면 보증금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된다. 물론 보장된 권리가 보증금을 즉각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대출사기 같은 무서운 말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우울한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겠나. 보증금 500만 원과 1억 8천만 원의 무게는 다르다. 여하튼 건물주 바로 아래층에서 우리는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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