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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13. 2021

전세와 대출은 이음동의어

대출과 세금은 사회인이 알아야 할 필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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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가구가 살만한 전셋집의 형태는 다양하지 않다.

투룸 빌라와 아파트. 2가지 옵션뿐이다.

전세자금 대출이 없으면 그마저도 구할 능력이 없다. 둘이 힘을 합하면 그래도 좀 낫다. 



사실 독립을 결심했을 때 전세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억 언저리로 원룸 전세가 가능은 했다. 그리고 그때도 대출을 하면 80%까지 대출이 가능했고, 2천만 원의 현금이 있으면 대출을 끼고 전세를 빌릴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현금은 매우 부족했고, 엄마가 해준 한마디가 마음에 크게 남아 월세로 시작했던 것이다.


10원을 빌려도 빚은 빚이야. 은행은 절대 널 봐주지 않아


우리 집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출과 빚에 시달렸던 집안이고, 엄마는 그 모든 순간을 온몸으로 막아낸 사람이었다. 대출이라면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비록 정기적인 수입을 가지게 된 상태라 할 지라도 대출로 무리수를 두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능력껏 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이 가진 무게는 딱 1년간 유의미했다.


월세를 낼 때는 감이 없다. 그냥 월세를 내나 보다 한다. 연말 정산할 때 1년 동안 낸 월세를 모아서 보고 있으면 세상 심란해진다. 45만 원씩 12개월. 540만 원으로 뭉쳐진 목돈이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생각하니 속이 뒤틀렸다. 내가 모을래도 모으기 힘든 돈이었다. 연말 정산할 때 환급받는다고 해봐야 10% 정도다. 결국 나머지는 다 생돈이 나간 셈. 그러다 우연히 사회초년생 재테크 정보를 찾아보다 ‘월세에서 탈출해야 하는 이유’를 쓴 글을 보게 되었다.


1억을 빌려도 전세자금 대출이자는 2~3%. 한 달 월세는 평균 50만 원. 보증금 1억 원에 이자가 3%라고 했을 때 한 달에 30만 원 내외의 이자가 나온다. 그리고 전세 만료 후 보증금을 그대로 대출금 상환에 사용한다고 해도 월세보다 대출 이자가 저렴한 것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땡 맞는 느낌이었다. 전세자금의 20%만 확보되고, 대출 조건에 부합된다면 일반 월세의 절반 가격에 은행에 월세 내며 살 수 있었다. 심지어 대출 이자와 전세대출 상환금액도 연말정산에 반영이 된다. 금액은 월세로 인한 세액공제만큼 까진 아니어도 유의미하다.


많은 사람들이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내면서 소액으로 전세에서 다시 전세로 이동하며 대출을 연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엄마와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는데, 내가 그리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나의 월세 금액은 45만 원이고, 1억 원짜리 대출을 받으면 30만 원 채 안 되는 돈으로 이자를 내는 조건이라면 대출해볼 만한 거 아니냐고. 엄마는 20% 고리의 은행이자를 겪은 세대였음에도, 대출이자가 월세의 반값이라는 것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음 계약엔 전세를 구할 생각을 하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야 했다.


물론 전세에도 허들은 있었다. 투룸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원룸의 경우는 전세대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적으로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지만, 자신의 자산에 어떤 형태로든 위험요소가 얹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 그들은 절대 손해보지 않는 구조


금전적인 측면으로만 보면 신축 건물은 기업형 투룸과 일반 투룸 빌라가 돌아가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가 대출을 끼고 건물을 분양/건축했고, 세입자가 내는 전세자금으로 그 대출원금을 빨리 갚지 않으면 건물주는 꽤 높은 금리의 대출금을 감당해야 했다. 금수저 부자라 해도 생돈이 나가는 느낌이 들어 화나고 억울할게 뻔한 구조이다. 2억 가까운 돈을 빌려야 전세 보증금을 낼 수 있는 구조이니 전세대출이 안된다는 투룸 빌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기존에 이미 전세로 굴러가고 있던 집은 다시 월세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걸 월세로 돌리려면 지금 현재 입주한 세입자의 전세 자금을 고대로 현금으로 주어야 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대출을 일으켜 건물을 세웠고, 전세 세입자를 들임으로 인해 건축으로 인해 발생한 대출 원금을 전액 상환한다. 건물주는 대출금을 해마다 아주 조금씩 인상하면서 물가상승분을 커버한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다되면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다음 세입자는 크건 작건 상승된 전세보증금을 건물주에게 전달하고, 그중 일부를 기존 세입자에게 주어 내보낸다.


결국 건물을 세울 수 있는 돈을 대출할 신용이나 담보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일정 시점이 지나면 임차인의 전세자금으로 인해 일제히 사라진다. 그리고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올 때 기존 임차인에게 진 빚을 갚는 구조. 그게 대한민국의 전세다. 이건 굳이 신축 빌라가 아닌, 아파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필요한 목돈을 들고 들어가 집을 빌리고, 임대인은 기존 임차인에게 진 빚을 해결한다.


그러니 전세와 대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조이다. 당시 우리나라 전세자금 대출은 대략 2가지로 나뉘었다. 정부보증 상품과 은행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전세대출.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으로 운영되는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은 정부보증 상품으로 전세자금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집이 불법 가건물이거나, 대출자의 신용도가 너무니 없이 낮은 게 아니라면(정규직이라면 대부분 OK) 버팀목전세자금대출은 어렵지 않게 승인이 나는 듯했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정부에서는 주거안정을 위해 만 19세 이상의 무주택 세대주 중 부부 합산 연소득 5천만 원 미만인자에게는 연 2.3~2.9% 정도의 금리로 대출이 가능했다. 서울을 기준으로 총 대출 금액이 1억 2천만 원은 넘지 않아야 하지만 그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결혼한 지 5년 이내의 신혼부부에게는 우대금리가 적용되어 소득에 따라 최저 1.6%까지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시중은행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전세대출은 금리가 2% 후반에서 3% 초반인데 비해 상대적으로 대출 가능금액이 컸다. 버팀목전세자금대출로는 빌라밖에 못 간다면, 은행 대출로는 아파트 전세도 꿈꿔볼 수 있었다. 물론 그도 전체 전세보증금의 80%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 우린 총대출액을 최대한 낮추고 싶었다.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빚은 없는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갑자기 억대의 대출을 낸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1억 8천만 원. 전에 살던 사람이 계약 기간을 다 못 채우고 나갔고, 중개사 부장님께 그래도 조금 더 전세금을 낮출 수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 약간의 조정이 가능했고, 우리는 500만 원을 낮춘 금액으로 최종 전세보증금을 확정했다.


대출을 받으려면 대출신청은 세대주가 해야 했다. 통상적으로 세대주는 남자가 하게 마련이지만 프리랜서로 살던 신랑은 금융권에서 선호하는 직업군이 아니었다. 페이가 크건 적건 정규직으로 안정적인 페이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 세대주여야 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세대주가 나다. 이런저런 서류들을 간단히 챙겨갔고 계약하고 일정 기간 이내에 혼인신고를 해야지만 신혼부부 우대 금리를 적용해준다는 말에 그냥 속 편하게 혼인신고를 했다. 어차피 날은 잡았고, 결혼은 할 거였으니까. 왜 들 결혼식 전에 혼인신고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대출을 보다 낮은 금리로 받기 위해서였다.


이미 주택전세자금계산마법사(http://nhuf.molit.go.kr/FP/FP08/FP0801/FP08010101.jsp) 사이트를 통해 시뮬레이션은 스무 번도 더 했다. 세대주여야 했고, 세대주 포함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이어야 했다. 혼인신고를 한 지 5년 미만의 신혼부부였고, 홈텍스상 부부합산 소득이 연간 5천만 원 미만이었다. 입주하고자 하는 주택이 등기부등본상 주거에 적합한 주택이고, 주택 전용면적이 85제곱미터 미만이었다. 연소득을 입력하고, 우대사항에 신혼부부 관련 칸에 체크를 마쳤다. 전세보증금 금액은 2억을 넘지 않았고 별도의 부채는 없었다. 1억 2천300만 원가량의 대출 가`능금액이 나왔고, 우린 남은 5천만 원 내외를 모아야 했다. 결혼자금 중 가장 중요한 돈의 규모가 나온 것이다. 전세보증금을 위해 빼둔 돈을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최대한 타이트하게 결혼식과 살림을 준비했다. 세탁기 냉장고 말고는 구입한 가전제품은 없었고, 침대는 엄마가 쓰던 돌침대를 받는 걸로 하고, 옷장이나 탁자 다해서 가구 사는데 100만 원가량 든 게 다였다.


대출 신청을 완료하며 새롭게 들은 사실은 원칙적으로는 불법 구조물에는 대출승인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전세자금 대출로 실사까지 나오지는 않으니 큰 문제는 안되었지만 우리가 선택한 투룸 빌라에도 불법 구조물은 있었다. 바로 베란다. 엄밀하게는 베란다가 아니었다. 건물이 용적률을 맞추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계단식으로 안쪽으로 들어간 구조를 가진 건물들이 많은데, 이 계단식 구조물 위에 가벽을 세우고 베란다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내가 선택한 집의 베란다는 베란다가 아니었다. 다른 층에는 없는 베란다가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세금 문제라는데 말이다. 결국 불법이었던 것이다.


물론 저 정도 상황은 별문제 없이 매끄럽게 지나갔고 대출 승인은 떨어졌다. 대출 승인이 떨어지고 서류작성까지 마친 상황에서 신혼부부 우대 금리가 추가 인하되었고, 담당 은행원의 배려로 서류를 다시 작성해 좀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할 수 있었다. 저출산 기조가 유지되는 통에 지금 소득 기준이라던가, 대출 가능금액 등의 기준들이 좀 더 완화되었다.


우리는 전세자금 대출을 위해 혼인신고를 하고, 청첩장 날짜와 혼인신고 날짜 중 어느 날을 결혼기념일로 해야 하는 농담을 하는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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