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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10. 2021

미련하게 전세대출을 갚았다

대출 갚지 말고 목돈을 만들어야 계약금과 중도금을 낸다.

3줄 미리 보기 

종잣돈을 만들고 싶어서 전세자금 대출의 원금을 열심히 갚아갔다. 

나중에 알았다. 

전세자금 대출을 갚는 것보다는 주식이나 펀드로 돈을 굴려 현금을 손에 들고 있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저출산과 저금리가 만나 만들어낸 시너지는 위대했다. 1억이 넘는 돈을 빌리는데 한 달 이자가 20만 원 내외였다. 버팀목이라는 대출명은 매우 적절했다. 버팀목 없이 삶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대출은 아무에게나 나오는 것이 아니었고, 전세자금 대출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 버팀목전세자금대출. 


혼인신고, 이사, 집 정리, 무수히 많은 택배 받기, 각종 집들이를 겸한 청첩장 전달, 결혼식, 신혼여행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혼인신고 이전에 논문과, 큰 회사 행사, 집 알아보기가 선행된 후에 결혼이었던지라 혼이 들락날락하는 시기였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한 달쯤 후였다. 저녁 9시만 되면 정신을 못 차리고 뻗기 일쑤였고, 급기야 보약을 먹어가며 체력을 보존한 후에야 겨우 혼을 되잡았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의 자금상황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전세자금 대출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약간의 현금은 충동적으로 넷플릭스 매수하는데 밀어 넣고 나니 정말 매달 월급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나니 우리의 현실이 아주 명확하게 들어왔다. 


우리는 자본금이 없다. 종잣돈이 없다. 보증금에 묶인 돈도 생각보다 크지 않고, 대출이 70%이다. 애초에 전세 대출을 할 때 나의 다짐은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빨리 대출을 갚어나가자는 것이었다. 투자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미련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걸 갚을 돈을 차라리 저축하고 모았던가, 주식투자 등으로 불리던가. 더 많은 돈이 보증금에 묶이지 않을 방식을 선택했었어야 했다. 그 생각을 한건 나중일이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목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더 큰집, 더 나은 집을 이사 갈 때 추가 대출을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기존에 갚아둔 돈이 많아야 대출을 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억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1억만 만들어봐’다. 1억 원이라는 돈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큰돈인지는 나의 얄팍한 지갑만 봐도 잘 안다. 1억 원이라니. 무려 억이라니. 하지만 언젠가 홈텍스를 통해 찾아본 지난 몇 년간의 나의 총수입은 억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짧지 않은 사회생활, 제대로 등록된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10년이 넘어가니 1억 원은 족히 되는 것이었다. 1억 원이 남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1억 원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일 수 있다. 최소한 거기서 시작해야 뭘 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엄마가 말씀하셨다. 


돈은 10원, 20원 차근차근 모이는 게 아니야.
처음엔 100만 원, 그다음엔 300만 원, 500만 원, 천만 원으로 모이고,
천만 원이 모이면 3천만 원, 5천만 원, 다음엔 1억이야.
그 고비만 넘기면 돈은 모이게 돼있어


우린 그 수많은 고비를 넘고 넘어 돈을 모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이자가 낮아지는 기쁨을 누리기로 했다. 그랬다. 대출을 갚는 것으로 우리는 종잣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각종 생활비를 제외한, 저축 가능한 모든 돈을 대출 상환에 쏟아부었다. 나는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신랑은 돈이 생길 때마다 뭉터기로 툭툭 처내기 시작했다. 20만 원이던 월 이자가 10만 원으로 줄었다. 아이도 없고, 크게 사치하는 일도 없는 팔자이기에 그렇게 빚을 갚고 이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는 건 꽤 큰 기쁨이 되었다. 


대출을 갚는 즐거움은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연말정산에 소득공제 항목으로 반영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월세도 이것은 가능하다. 엄밀히는 월세는 세액공제 항목이고, 전세자금 대출 원금 및 이자 상환액은 소득공제 영역이다. 


특별소득공제 - 주택자금- 주택임차차입금 원리금 상환액
무주택 세대의 세대주(세대주가 주택 관련 공제를 받지 않은 경우 세대원도 가능)인 근로자가 국민주택규모(1호 또는 1세대당 85㎡이하)의 주택(주거용 오피스텔 포함)을 임차하기 위하여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차입한 일정요건의 주택차입금의 원리금 상환액


물론, 주택청약 불입을 하고 있다면 주택청약금액 포함해서 300만 원까지 일뿐이지만. 소득공제 영역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왠지 월세보다 전세가 좀 더 삶의 필수적인 요소처럼 느껴졌다. 이 와중에 난 청약도 한 달에 20만 원씩 꼬박꼬박 넣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왠지 청약으로 목돈을 만들어보고 싶었달까? 


1년이 거의 다됬을무렵 무려 원금의 절반을 갚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의 몫이 컸다. 어려서부터 레슨 하면서 벌어둔 돈을 쏟아부었다. 이자가 줄어드는 맛에 반한 나를 보며 함께 신나 했다. 멍 때리고 일단 모으니 순식간에 몇천만 원이 쌓였다. 혼자였으면 기약이 없었을 일도 둘이 하니 끝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돈을 그냥 아마존 주식 같은 거나 좀 사놓고 있었으면 더 많이 모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세상 고지식한 우리는 그렇게 미련하게, 굳이 전세금에 현금을 묶어가며 1년을 버텼다. 그렇게 다음 단계를 차곡차곡 준비했다. 빚을 갚는 즐거움이 언젠가 큰 괴로움과 위기로 올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는 게 문제였을 뿐. 그 순간은 매우 즐거웠다. 인생의 첫 빚이었고, 그렇게 큰 빚은 무서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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