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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6. 2021

진짜 독립이 시작되었다

당신은 어디서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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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본격적으로 독립 도전!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살 곳을 알아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새털같이 많은 집들 중 과연 내 집은 어떤 집이어야 하는가.



이직을 했다. 강서구에서 중구 신당동까지 출퇴근하던 나는 어이없게 여의도에 새로운 직장을 얹게 되었다. 버스로 한 번에 15분. 도보 이동 포함하면 도어 투 도어 35분의 출퇴근 길에 나는 명분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았다. 나는 이직을 했고, 이직으로 인해 아주 약간의 연봉의 인상이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1인 가구 소득기준에서 완전히 탈락하고 말았다.


아니. 나는 아직도 이렇게 가난한데. 어찌하여 왜 때문에! 임대아파트 1순위 신청자가 못되냔 말이다! 그랬다. 배부른 소리였다. 4인 가족이 나와 같은 벌이로 사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나는 정부가 제시하는 절대적인 조건은 충족하지 못하는, 애매하게 커트라인밖에 밀려난 도시 생활자가 되었다. 이제 나의 독립은 저 멀리 멀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조신하게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연봉이 조금 올랐다고는 하지만 비영리기관에서 도긴개긴이었다. 커트라인을 벗어난 것이 문제였을 뿐. 1년의 시간이 흘렀고 갑자기 집에서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동구와 강서구를 오가며 식당을 하신지 10년이 넘었다. 너무 힘들고 지치셨다. 동생도 결혼으로 독립을 하고, 나와 함께 지내시던 부모님은 식당 근처로 이사를 가겠다고 선언을 하셨다. 거기서 여의도는 또 어찌 다니나 고민하던 나에게 2주도 채 되지 않아 이사를 안 가기로 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뭔가 싶었지만 수긍했다. 그리고 또 1주일 후. 부모님은 말씀을 다시 뒤집었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그 집으로 다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식구도 줄고 집도 줄이고 좋았다. 나도 추천하는 바였다. 굳이 큰집에 사실 거 뭐 있냐 했다. 하지만 엎었다 뒤집었다를 반복하는 건 나로서는 매우 복장 터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선언했다.


어차피 독립하기로 한 거. 엄마 아빠 이사 가실 때 나도 하겠소


언젠가 하기로 했고, 그게 지금이건, 내년이건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부모님의 섭섭함을 뒤로하고 독립을 준비했다. 나는 부모님에 의해 나의 살 곳이 좌지우지되는 삶이 아닌, 나 스스로 나의 공간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취경험 20년의 친구를 데리고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경험이 일천했고, 이사를 다니면서 뭘 봐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집을 알아보는 방법은 3가지였다.



1. 부동산 중개인을 통하는 방법

제일 고전적인 방법이다. 부동산 중개에게 찾아가 내가 원하는 금전적 조건과 지역을 이야기하면 가능한 매물을 차로 데리고 다녀주었다. 1시간이면 4곳은 볼 수 있었다.


2. 직거래 카페를 활용하는 방법

2번째 방법은 네이버 카페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카페에 올라온 매물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원하는 지역명을 매일 검색했고,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집들을 전화로 예약하고 방문했다.


3.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방법

새롭게 떠오른 방법이 바로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 ‘직방’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직방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방문을 원한다고 연락하면 방문시간을 예약하고 해당 부동산과 만나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제일 많이 활용한 방법은 직방을 보고 전화해서 해당 부동산이 가진 다른 매물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이때 알았다. 내가 생각보다 추진력이 남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회사 출퇴근을 기준으로 반경 15km 이내를 두고 대략의 지역을 결정했다. 일단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지하철 역 2~3개를 기준으로 반경 1km 이내를 잡았다. 2차 후보로는 그래도 뭔가 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 것 같은 홍대와 합정, 성산동 일대였다. 매일 검색했고, 퇴근 이후, 혹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가열차게 돌아다녔다. 우리 회사의 점심시간은 다행히도 1시간 30분이었다. 신촌, 홍대 쪽 부동산에 전화해서 대략의 금액을 알려주고 미팅 예약을 잡으면 짧은 시간에 3~4곳을 보여주었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는 피터팬에 올라온 매물을 보러 다니는 것이었다.


점심시간과 퇴근 이후, 저녁시간을 총동원해 몇몇 지역을 탐색한 결과, 난 강서구 9호선 라인에서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9호선 라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 혼자 살기 좋은 사이즈로 제일 먼저 떠 올린 건 ‘원룸’이었다. 하지만 나의 원룸에 대한 개념은 매우 막연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적당히 넓고 기본적인 전자제품이 옵션으로 들어가 있는 전망 좋은 방. 그런 원룸은 흔히 오피스텔이라 불리는 건물들이었는데, 오피스텔의 시절은 이미 10년 전에 끝나 있었다. 보증금 1~2천만 원에 월세 50만 원, 관리비 10만 원 선이 평균인 듯했다. 10년 차 오피스텔은 인기가 많이 없는지, 워낙 건물에 물건이 많아서 그런지 공실인 상태의 오피스텔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공실이라 더 넓어 보였고, 넓었음에도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다. 대충 10년 차 연식의 오피스텔이 사람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흔한 건 도시형 생활주택이었다. 오피스텔의 시대를 지나 수익형 부동산은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가있었다. 2009년부터 짓기 시작한 도시형 생활주택은 1인 가구를 위한 미친 듯이 작은 원룸이었다. 신축인 대부분의 원룸들은 도시형 생활주택이었는데, 이런 방은 모든 것이 새것이지만, 매우 작고, 비쌌다. 보증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월세였다. 지은 지 1년 이내의 오피스텔은 오피스텔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 숨 막히게 작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미 보아온 오피스텔의 반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 침대 하나 놓고 나면 그 옆에 빨래 건조대 세울 곳도 없어 보이는 작은 방이었다. 실평수 4평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벽에 다닥다닥 수납공간이 붙어있었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같은 설비들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게 큰 메리트로 다가오지 않았다. 심지어 다닥다닥 닭장처럼 지어진 통에 채광이 엉망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대낮에 보러 가도 창을 열면 바로 앞에 벽이거나 건물이었다. 보통 말하는 다세대나 다가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오래되면 좀 크고, 새 건물은 매우 작았다.


피터팬을 통해 만나는 매물은 좀 더 버라이어티 했다. 오피스텔보다는 다세대, 다가구가 대부분이었고, 더러는 한 체의 집에 출입문을 쪼개서 들어가는 듯한 집도 있었다. 건물주가 건물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단점으로, 누군가는 그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건물의 스펙은 천차만별이었고, 위치에 따라 규모나 엘리베이터 유무 등에 따라 컨디션은 다양했다. 오피스텔이나 도심형 주택은 입지 말고는 큰 차별점이 없었지만, 다세대나 다가구는 금액 외의 포인트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었달까? 아쉬운 점도 많다. 골목골목 들어가야 했고, CCTV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도 흔했다. 늦은 시간 귀가가 잦았던 사람인지라 대로가 아닌 골목 깊이 들어가는 구조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격이 괜찮거나 방이 유달리 크다거나 하는 경우들은 아무래도 오래된 다세대 주택에 더 많았기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부동산 가격은 빅데이터의 산물이라고. 아주 미묘한 위치, 서비스, 구성의 차이에 따라 가격은 섬세하게 바뀐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말이다. 최소한 원룸을 금액은 어느 정도 평준화되어 있었지만, 안전장치나 위치, 건물의 노후 정도, 크기가 편차가 컸다.


부동산 보증금과 월세와의 상관관계도 처음 알았다. 건물주에게 의사만 있다면 월세와 보증금은 조정할 수 있었다. 월세를 기준으로 필터링해서 보는 것이 무의미했다. 보증금 조정 의사가 있는 건물주인지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였다. 월세가 세다 싶어도 일단 집부터 보기로 했다. 집이 마음에 들면 돈은 어떻게든 맞춰보자 싶었다.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혹은 인터넷 요금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 정도는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다세대도 개중 깨끗하고 사이즈도 적당하다 싶으면 월세가 60만 원을 넘겼다. 그랬다. 사무실을 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가난했고, 월세 50만 원 미만에 살만한 원룸이라는 나의 조건은 원천적으로 이 세상의 시세에 맞지 않았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며칠 되지 않아 나는 월세의 금액을 좀 더 올려야 했고, 막연하게 “원룸 알아보고 있어요”가 아닌, “9호선 라인에 보증금은 XXX만원, 월세는 XX만원 전후면 되고요. 조율 가능하니 일단 매물을 먼저 보고 이야기할게요. 관리비는 적을수록 좋지만 아니어도 괜찮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관리만 잘 되어있으면 연식이 오래되도 괜찮아요. 실평수가 넓은 집을 선호해요. 옵션이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까지면 되고요. 없어도 무방해요. 베란다가 있으면 베스트고요.”라고 말할 수 있어졌다.


다들 난처해했다. 이야기했던 조건은 신의 직장 같은 조건이었다. 일단. 베란다에서 걸렸다. 요즘 만드는 집들은 크나 작으나 베란다를 만들지 않았다. 집이 작을수록 잡스런 짐들을 보관할 창고 같은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공간이 없으면 어떻게 해도 집이 지저분해진다. 심지어 칼바람의 겨울, 찜통 여름을 견디려면 베란다는 필수인데 말이다. 베란다는 단순히 잉여 공간이 아니다. 나의 잡스런 짐과, 빨래를 가려주는 곳이고,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완충지대였다.


나중에 알았다. 베란다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에 따라 세금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지인가 왜 때문에 요즘은 베란다가 없는지 모르겠다는 나의 푸념에 “돈 때문인지. 베란다가 있는 집과 그렇지 않은 공간은 분류하는 이름이 엄밀히는 달라요. 세금도 다르고. 당연히 베란다가 없는 쪽이 세금이 더 싸죠”. 아. 돈 있는 자들은 정말 섬세하다. 이런 작은 차이로 인해 세상의 베란다가 사라지게 된 것이라니.


난 그렇게 가열차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을 보러 다녔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부동산, 피터팬 안 가리고 돌아다녔고, 오다가다 문 열린 부동산은 다 문을 두드렸다. 직방에 있는 매물을 보고 연락해오던 중개사분께 “이 집 혹시 보여주실 수 있어요?”라고 거꾸로 묻는 여유도 생겼다. 대부분의 부동산들은 다 서로를 잘 안다. 본인의 매물이 아니어도 다른 부동산의 매물도 통해서 소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 내가 내는 수수료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중개사 입장에서는 원래 매물을 갖고 있던 중개사와 수수료를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매물을 더 추천하기도 한다.



10일간 33곳을 보고 맨 첫 집을 계약했다.


그렇게 10일간 딱 33곳을 둘러보았다.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인 우리 회사에게 무한히 감사를 드릴뿐이다. 그리고 나는 맨 처음 본 집으로 결정했다. 결국 그 무수한 삽질의 시간은 내가 본 첫 집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가늠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최종 결정을 하기 전 후보에 두던 두 집이 공교롭게도 같은 중개사가 소개해준 곳이었는데, 계약 직전 중개사에게 물었다.


“만약 여동생분이 독립을 한다면, 어딜 추천하시겠어요?”

“맨 처음 보신 집이요”

“그럼 거기로 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건물주분이 부자세요. 그거 되게 중요해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내가 원하는 조건에 완벽한 집이었으며, 원룸생활 유경험자에게 집에 대해 설명하면 하나같이 “그런 집이 어딨냐”라고 말할 정도로 흡족한 집이었다.


5층짜리 건물에 3~5층이 거주 공간이었고. 내가 계약하는 건물은 거주공간의 정확하게 가운데 위치해있었다. 건물 앞뒤가 트여있어서 창문과 문을 열면 환기가 기가 막혔다. 남서향이라 볕도 제법 잘 들었고, 현관과 화장실 바로 앞에 무려 중문이 있었다. 3.5m X 5m의 크기에 물론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까지 있었고, 집에서 쓰던 가구들도 넉넉히 들어갔다. 베란다가 별도로 딸려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관리비가 없었다. 다세대 주택들을 다니다 보면 용적률을 맞추기 위해 맨 위층에 원래는 야외여야 하는데 대충 가림막을 만들고 베란다라고 팔아넘기는 집들도 있는데 여긴 진짜 제대로 만든 베란다였다. 모든 원룸마다 다 베란다가 있었다. 집주인이 직접 말하기를 계약자는 여자만 받고, 월세는 10년간 한 번도 변동 없이 45만 원이었고. 앞으로도 보증금 상향 조정은 없는 대신, 월세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0년 된 건물인데 건물 신축 때부터 쭉 사는 세입자도 있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지하철 출구에서 뛰면 2분 거리. 이 정도면 정말 역대급 초역세권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관리비가 없는 경우도, 원룸인데 중문에 베란다까지 있는 경우는 자취생활 20년씩 한 사람들도 손에 꼽는 조건이었다.


나중에 계약이 끝나고 서로 계약서를 파기하러 올라간 주인집에는 100인치는 족히 되는 TV가 2개가 있었고, 그중 하나가 내가 머물던 건물을 포함한, 건물주가 보유하고 있는 인근 건물 3개를 관리하는 CCTV를 보는 용도였다. 오며 가며 보이는 CCTV가 과연 유의미한 것인가 늘 의구심이 있었는데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두말 않고 깔끔하게 상황 정리를 해주시는 프로 임대러였던 것이다. 마곡에 땅이 넓었는데 그게 개발이 돼서 부자가 되셨다나? 건물관리 못지않게 돈 관리도 깔끔하셔서, 세금처리 깔끔하게 하셔서 연말정산에도 무리 없었고, 두루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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