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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6. 2021

아직도 엄마와 살고 있다.

나이 서른 넘어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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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내 공간은 필요하다.

임대아파트라도 들어가 보려고 이런저런 애를 써보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의지는 아직 살아 있다.



처음으로 독립을 고민하기 시작했던 건 33살 때였다. 프리랜서로의 삶을 정리하고 취직을 하고 채 1년이 되기 전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쭉 이어진 긴 프리랜서 생활의 결론은 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안정적인 삶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삶”은 대단히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결혼하기 직전까지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해왔다. 부모님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혼 전의 독립은 ‘가출’이야. 네가 가출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니?


결혼 전까지 독립은 없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일하면서 보증금 500에 월세 35로 사무실을 구하면서 알았다.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그 돈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돈인지. 저렴한 사무실 자리를 구하다 끝내는 원룸까지 헤집고 다녔다. 당장 힘든 굿을 해도 그 집에 깃든 혼령을 다 못 내보낼 거 같은 음침한 사무실 자리부터 산꼭대기 반지하 월세방부터 10여 곳을 버라이어티 하게 뒤지고 나서 겨우 자리 잡은 사무실도 2~3팀이 나누어 월세를 내야 버텼다. 사이즈가 크면 위치가 엉망이고, 조건이 좋으면 월세가 너무 비쌌다. 너무 당연했다. 이미 10여 년 전에도 모든 원룸의 월세는 50만 원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대학가라 저렴할 거라 생각했다. 정말 세상을 몰랐다. 대학가라고 해서 더 저렴하지 않았다. 가격은 고정되어있었고, 그저 위치에 따라 보증금만 조금씩 달랐을 뿐이었다. 사무실 월세도 겨우 내는 수입에 굳이 독립까지 해서 월세까지 내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다 취직을 했고, 사무실 월세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자 얄팍하게도 독립이 하고 싶어졌다. 33살 나이에 결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물론 더 늦은 나이에도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차츰 나의 공간이 그리워졌다. 프리랜서였던 나의 사무실은 그냥 사무실이 아니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나'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회사의 내 책상은 독립된 나의 공간이 아니었고, 엄마 집 역시 나의 공간이 아니었다.


난 늘 엄마 집에 얹혀 산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생활비 한 푼 못 내는 가난한 프리랜서는 그럴 거면 지금이라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냥 집에 안 들어갔다. 딱 잘 시간에 들어가 잠만 자고 나왔다. 아침에 눈뜨면 사무실에 와 앉아서 안정을 찾곤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다.


월급도 받겠다. 이제 독립 한번 해볼까?



단순했다. 나는 나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임대아파트였다. 임대아파트는 예나 지금이나 경쟁이 매우 격하게 치열하지만, 그래도 경제적 조건이 맞다면 지금보다는 가능성이 았던 시절이었다.


어설픈 원룸보다는 정부가 보증하고 관리하는 임대아파트 쪽이 훨씬 좋아 보였다. 임대아파트의 종류가 너무 많다. 임대아파트를 빌리는데도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임대의 방식이나 주체에 따라 준비해야 하는 조건이 너무 달랐다. 일단 서울에서 살아야 하니까, SH 사이트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SH. 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에 있는 임대아파트를 관리, 운영하는 주체다. 서울에 분포한 임대아파트의 위치를 확인했고, 의외로 꽤 많은 지역에 임대아파트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임대아파트가 단지 전체가 아니라 큰 단지의 일부에 부분 부분 분포되어 있었다. 신축 아파트를 지으면서 그중 일부를 정부에 임대아파트로 제공하는 정책이 시작한 이후였던 것이다. 물론 서울 중심부에 있는 아파트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서울의 외곽이었다. 여기서 신당동까지 어떻게 다니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못 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당시 부모님과 살던 지역이 교통이 좋았기에 그게 아니면 다 별로라고 생각하고 지원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배부른 생각이었다. 보증금 한 푼이 없었던 주제에 그게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란 말이가.


그리고 본격적으로 임대아파트 관련 공지사항들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임대아파트의 종류를 여러 가지였지만, 대충 영구임대, 공공임대, 국민임대, 장기전세 등으로 나뉘었다. 여기에 SH가 소유하지는 않지만 보증금이나 전세금 지원 같은 방식도 가능했다.


SH의 임대는 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것이었다. 주거안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을 위한 조건이 대부분이었다. 그와 중에 영구임대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기초수급 대상자 정도는 되어야 신청이 가능한 조건이었다. 나의 소득조건으로는 국민임대나 공공임대가 가능했다.


공공임대의 신청자격의 첫 번째 조건은 입주자 공고일 기준 서울특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소득 및 자산보유 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주택의 세대 구성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소득과 자산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청약도 가입 자체는 되어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주택의 세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우리 집에 주택담보대출이 산처럼 걸려 있다 할지라도 유주택인 상태였다. 나는 무주택이지만, 내가 속한 세대는 유주택이었기 때문에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다.


국민임대도 다르지 않다. 1번째 조건이 서울 거주, 성년, 무주택세대의 구성원으로 소득, 자산 등의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이었다. 소득기준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연도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1인부터 8인 가구까지 가구수에 따라 기준 금액이 있고, 그 이하면 되는 거였다. 나의 소득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자산도 전혀 없고. 문제는 내가 속한 세대였다.


무주택세대의 구성원. 그게 아니면 무주택 세대주.


나에겐 그 조건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내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야 하니 부모님께 집을 파시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난 그때부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이 가족으로부터 세대분리를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싶었지만 오산이었다.


난 일단 세대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세대란 매우 행정적인 기준이었다. 주민등록상에 있는 혈연(혹은 입양) 가족이 한 곳에 거주하는 것을 세대라고 부른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면 그냥 행정처리만 하면 되는 것 같지만 이나라 정부를 매우 무시하는 처사였다.


일단 세대가 분리되려면 3가지 중 하나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만 30세 이상의 나이에 세대를 분리하고 있는 경우

두 번째는 나이와 상관없이 결혼을 하거나

결혼 후에 사망이나 이혼 등의 사유로 1인 가구가 된 경우

나이, 결혼 유무와 무관하게 1년간 월수입 70 이상의 독립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


이 4가지 조건의 공통적인 필수요건은 주소지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곳은 아파트였다. 하나의 문을 갖고 드나든다. 집이 분리되어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각자 별도의 출입구를 가지고 층을 달리하거나, 층이 같아도 역시 별도의 출입구를 가지고 호수가 다르다던가 하는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야 세대분리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옆집이건 윗집이건 최소한 다른 집에서 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아파트는 그런 구조가 불가능하고, 더군다나 세대분리를 했다 하더라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면 세대분리라는 개념을 적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각종 카페를 통해 검색해 내린 유일한 방법은 내가 실제로 월세든 전세든 독립을 해서 주민등록을 별도로 하는 게 아니라면, 친척이나 다른 친지의 누군가의 집에 주민등록을 옮겨 세대를 분리하는 것이다. 독립이 아니면 위장전입. 나는 2가지 옵션이 있었다.


아는 사람 집에 대충 옮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월세나 전제 등 누군가의 집에 임대해서 사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원칙적으로는 내가 누군가의 집에 전입하고, 그 집에 별도의 주인이 있는 것이라면 임대인이 나의 전입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임대인에게 주소를 옮길 지인이 “친구가 들어와 살 것이다”라고 말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월세 살이 하는 대부분의 지인들에게 그런 사소한 일로 집주인과 통화하게 만드는 불편을 주고 싶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조물주 위에 건물주였다. 혹여 소소한 트러블이 쌓여 나로 인해 어떤 큰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했다.


결국 나는 독립의 의사를 밝히고, 아버지 지인 중에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이리저리 부탁을 드려 공릉동 언저리에 나의 주소를 얹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독립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전 01화 왜 서울인가, 왜 독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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