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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04. 2022

하얀 손수건


 입학식 날이다.  아이들은 새하얀 색은 아니지만 그나마 하얗다고 할 수 있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있다. 입학식 날에 왜 손수건을 달아야 하는지 지금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손수건을 안 달은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한 달가량 열심히 달고 다닌다. 

     

 1년 내내 코를 훌쩍거리고 맑은 콧물을 달고 사는 영수도 한 달 정도밖에 달지 않았다. 영수는 왼쪽 옷소매로 콧물을 닦는다. 닦는다기보다 스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코에서부터 왼쪽 볼 아래쪽까지 한 줄기 콧물 자국이 남는다. 자주 닦으면 생길 수 있는 피부 자극을 그나마 줄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영수의 왼쪽 옷소매는 늘 촉촉이 젖어 있다. 콧물이 심하지 않은 날은 말라서 살짝 반들거린다.

      

 친구들은 영수를 ‘훌쩍이’라고 불렀다. 영수가 없을 때 자기들끼리 가끔 사용하는 영수의 별명이다. 이 별명이 영수의 귀에 들어가 싸움이 일어난 적은 없다. 친구들은 영수와 사이좋게 잘 지낸다. 코를 풀 정도는 아니고 그냥 살짝 손으로 처리하면 될 정도의 콧물을 흘리는 친구도 서 너명 쯤은 있다.

      

 영수의 콧물은 손으로 간단히 처리하기에는 좀 무리다. 콧물이 완행버스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윗입술 언저리에 도착한다. 워낙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알아채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초고속열차로 환승해서 콧물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리는 작업은 최대한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때를 놓쳐 콧물이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까지 다다른다면 그야말로 대참사다. 떨어진 콧물이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의 경계에서 가로 세로로 번져 입으로 스며들어가 짭짤한 맛을 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콧물은 훌쩍하는 소리와 동시에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다. 문제는 완행버스와 초고속열차의 운행이 1회성이 아니고 반복된다는 것이다.      

 “훌쩍...훌쩍...훌쩍...훌쩍...훌쩍...” 


 2학기 학부모 공개 수업 날이다. 미술 수업을 공개하기로 했다. 우리 반에도 부모님들이 많이 오셨다. 주제를 정하여 그림을 그리고 발표를 하는 순서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의식해서인지 평소보다 수업 분위기가 양호하다. 크레파스나 색연필을 사용하여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민수의 책상에서 '드륵 드륵, 딱 딱' 요란한 소리가 난다. 크레파스를 쥔 손에 힘을 주어 과격하게 칠을 하면 크레파스가 책상에 부딪쳐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이다. 주의를 주었더니 민수가 주먹의 힘을 푼다. 학부모님들은 자기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뒤쪽에 앉아 있다. 나도 흡족한 미소를 띠고 책상과 책상 사이를 순회한다. 조용한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훌쩍...훌쩍...” 

 영수의 훌쩍임이 시작된다. 조용하니까 더욱 크게 들린다. 영수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잊을만하면 들릴 정도의 간격이지만 꽤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순호가 갑자기 다 들릴 정도로 한숨을 쉰다. 미간을 찡그리고 입꼬리가 내려가 있다. 뒤 쪽에서는 학부모님들이 곁눈질로 슬쩍 영수의 어머니를 쳐다본다.       

 “야, 너 왜 그래. 코를 확 풀면 안 돼?”

 결국 순호가 영수에게 날카로운 소리로 직격탄을 날린다. 


 “아이구 진짜 짜증나 쟨 맨날 저래.”

 민재는 그림을 그리면서 영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소리를 지른다. 그 이후로 민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궁시렁거린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뒤에 있는 엄마를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이 소동이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여전히 훌쩍거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학부모님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보고 있다. 영수 어머니는 양손을 포갠 채 오른쪽 엄지 손가락으로 왼쪽 손등을 연신 쓸어내린다. 시선은 무릎 위에 고정되어 있다.           


 휴지를 뽑아 영수에게 건네며 나는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예상치 못한 소란으로 분위기가 흐트러졌고 시간이 좀 촉박한 것 같아 약간 걱정이 되었다. 나는 팔레트 세 개와 큰 붓 몇 자루를 꺼내고 물통에 물을 담아 칠판 앞에 준비해 놓았다. 크레파스는 유성이기 때문에 수성 물감이 닿아도 섞이지 않으니 크레파스보다 빠른 시간에 바탕색을 칠할 수 있다. 아이들이 하나씩 나와서 원하는 색깔로 바탕색을 칠한다. 다행히 정해진 시간에 전체 아이들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아이들이 완성된 그림을 칠판에 붙이고 발표를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평소보다 발표를 잘했다.       

 “자 오늘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가 큰 박수를 친다. 


 우연히 내다본 운동장에 세 친구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미술시간에 영수에게 직격탄을 날렸던 순호와 혼잣말처럼 궁시렁댔던 민재가 영수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수를 곤란하게 한 것에 대하여 순호와 민재가 사과라도 한 것일까?          


 공개 수업 이튿날 영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영수를 데리고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간다고 했다. 영수 어머니가 감기라고 여겼던 생각을 바꾼 것이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영수의 맑은 콧물은 감기가 아니라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이라고 전해 들었다. 그 후로 영수의 훌쩍임이 많이 줄었고 코를 옷소매로 닦지 않고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영수 어머니가 날마다 예쁜 손수건을 바지 왼쪽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 늘 손수건 한 자락이 삐져나와 바람에 나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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