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려 하루가 더 길게 느껴졌던 여름날의 오후 퇴근 무렵, 놀이터를 지나다가 눈에 들어온 풍경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아이들 넷이 지열로 후끈하게 뜨거워진 놀이터 바닥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 6학년 서현이와 남동생인 서준이, 맞은편에는 6학년 동현이와 동생 동훈이다. 2 : 2 대치 상황 대형으로 앉아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기는 하였으나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심각한 표정들로 미루어 볼 때 쉽사리 결정이 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너희들 무슨 일 있어? 혹시 싸웠니?”
“아니요.”
“얘 때문이에요.”
아이들 손바닥 만한 고양이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동현이 뒤쪽에서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새끼 고양이였다. 등 쪽과 다리는 얼룩덜룩 검은색 털이었고 배 부분의 털은 눈처럼 하얗다. 봄에 새로 돋아난 능수버들 가치처럼 가녀린 네 다리와 짧고 성긴 고양이 털이 산들바람에 살살 나부낄 때마다 통째로 날아갈 듯 애처롭다.
‘쟤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한숨이 나왔다.
아이들은 새끼 고양이를 누가 데려가느냐에 대한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 팀이 막무가내로 데려가겠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분위기로 봐서는 협상보다는 흥정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두 팀은 고양이를 맘대로 데려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고양이를 주워 온 아이, 소위 고양이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아이는 저 쪽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6학년 효섭이었다. 효섭이는 새끼 고양이를 잠시 동현이에게 위임한 것이었다.
효섭이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효섭이와 둘도 없는 단짝인 동현이가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서현이와 서준이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서현이 옆에는 물이 반쯤 들어 있는 눅눅하게 구겨진 종이컵과 캣맘들이 길고양이들을 위해 학교 사철나무 울타리 밑에 놓아두는 사료통에서 가져온 듯 오래되고 불결해 보이는 갈색 알갱이 사료가 반쯤 들어있는 종이컵이 놓여 있다. 서현이는 나름대로 준비를 했고 고양이를 데려가겠다는 확고한 뜻을 비치며 협상에 더 유리하게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서현이가 고양이를 데려가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자기는 마당 넓은 시골에 살고 있으며 할머니는 고양이 키우는 것을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강조했다.
“동현아 너희 집 아파트지? 너희 엄마가 집 안에서 키울 수 있도록 허락하실까?”
서현이가 동현이의 단점을 연타로 몰아붙인다.
“뭐...엄마가...허락하면...”
말을 더듬는 동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현이가 또 다른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동현이를 궁지로 몰아간다. 언젠가 동현이에게서 자기 엄마는 아파트에서는 절대로 동물을 못 키우게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형이 안쓰러웠는지 동생 동훈이가 형의 어깨를 토닥인다. 이 정도 되면 서현이가 완전히 주도권을 쥐게 되는 셈이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하던 효섭이가 어슬렁거리며 놀이터에 왔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효섭이가 고양이를 자기 집에서 키우겠다는 결심을 밝히자 사태는 또 꼬였다. 동현이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지만 효섭이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새끼 고양이를 자기 품에 끌어안고 교문 밖으로 사라졌다.
이튿 날, 나는 놀이터에서 어제 만났던 아이들을 또 보게 되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었다. 새끼 고양이가 서현이 품에 안겨 있는 것이었다. 서현이가 우쭐함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으로 동현이를 바라보며 연신 새끼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효섭이와 동현이는 집에 돌아가서 고양이를 키우는 문제에 대하여 어머니의 허락을 받으려 했을 것이나 자신들의 의지가 무참히 거절당하자 서현이에게 선심 쓰듯 고양이를 넘겨준 것이리라.
아이들이 고양이를 그리도 간절하게 원했던 이유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거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살아 있는 것은 소중하니까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 때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사물에 자기를 개입시키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줄을 안다. 새끼 고양이 입장이 자기 입장인 것처럼 생각한다. 고양이가 엄마를 잃고 거리를 헤맨다면 어떻게 될까. 비라도 오면 얼마나 추울까. 캄캄한 밤이 오면 어디서 잠을 잘까 등 이런 단순함에서 비롯된 행동들이다. 서현이와 서준이는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어서 더욱 간절하게 새끼 고양이를 원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진정으로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을 거침없이 실천한다. 손익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순수하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타인에게 온정을 베푼다. 내가 40여 년을 가까이서 지켜본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다. 약하고 작은 것들에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이 땅의 어린아이들이야말로 세상을 향기로 채울 수 있는 시들지 않는 영원한 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