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마오리족과 국가 정신
그러한 국가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나는,
다행히도 큰 아픔을, 혹은 큰 차별을 겪지 않고
아직까지는 감사하게도 잘 살아나가고 있다.
뉴질랜드의 문화를 얘기할 때 마오리부족(폴리네시안)을 빼놓을 수 없다. 뉴질랜드는 원래 마오리 부족들의 땅이었던 곳을 네덜란드 탐험가가 발견하고, 그 이후부터 여러 유럽인들이 찾아온 땅이었다고 한다. 1840년 영국인들이 들어와 마오리 추장들과 와탕이(Waitangi) 조약을 맺고, 영국의 식민지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현재에 와서 보니 마오리 버전과 영국 버전의 와탕이 조약은 다르다고. 이 다른 문건이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어 국회에서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https://youtu.be/N__OF41CqoY?si=xvx0muBXmqvA50_D
[국회 마오리 정당이 와탕이 조약의 정당성을 위해 하카(Haka)를 하며 시위하는 모습. 하카는 전쟁 시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해 시작하는 군무와 같은 행위이다. 올림픽에 나간 뉴질랜드 선수들이 시합 전 하카를 하는 모습도 때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뉴질랜드 정부는 마오리부족을 무시하고 유럽의 문화를 강요하기보다, 마오리부족을 인정하고 그 문화를 존중하는 쪽을 끊임없이 선택해 왔다. 뉴질랜드의 공식 국가 언어는 수화, 마오리어, 그리고 영어다. 만일 뉴질랜드에 왔을 때 누군가가 키아오라 ‘Kia Ora!’ 하고 인사했다면, 마오리말로 안녕하세요와 같은 뜻이니 반갑다고 인사한 것이다. 마오리부족의 설(마타라키 Mataraki, 남반구이므로 6월에 있다.)과 와탕이 조약을 맺은 날(Waitangi day, 2월)을 국정휴일로 하고 있다.
어떤 과학 프로젝트를 이행하더라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마오리 부족과 그 문화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항목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이 항목을 설명할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예산을 따기 어렵다. 또한 각 국가기관에는 마오리부족을 대표하는 당연직 자리가 있다. 마오리부족과 국가의 정책을 연계하려는 노력이다.
우리 연구소에서 월마다 하는 전체 직원회의가 열리면, 마오리 말로 개회 (karakia)와 폐회 (karakia whakamutunga)를 선언한다. 일종의 기도문이다. 한 편의 시와 같다.
Karakia whakamutunga (폐회 기도문)
Unuhia! Unuhia!
Unuhia i te uru tapu nui
Kia wātea, kia māmā, te ngākau, te tinana, te wairua i te ara tangatā
Koia rā e Rongo whakairia ake ki runga
Kia tina Tina
Hui e Tāiki e
Draw on, draw on
Draw on the supreme sacredness
To clear, to free the heart, the body and spirit of humankind
Rongo suspended high above us
Draw together, Affirm!
그리다, 그리다
최고의 신성을 그리다.
맑고 자유로운 인간의 몸과 정신을 위하여
신(Rongo)이 우리 위에 높이 거니며
우리와 함께 그리다, 확언하시다!
내가 숲에서 온실가스 실험을 하게 됐을 때 (3화 가짜어른 참고), 그 숲의 주인들은 마오리 부족 중 하나였다. 뉴질랜드의 원시림 대부분은 마오리부족에게 속해있다. 그들은 우리가 숲에서 실험하는 걸 허락해 주는 대신, 자신의 자녀들을 우리 연구소에 초대해서 일주일간 교육해 주길 원했다. ‘나중에 커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할지 누가 알아요?’
우리는 이 협약을 맺기 위해 마오리부족과 회의를 시작했다. 마오리부족은 우리네 시골마을의 마을회관처럼, 마래(marae)라는 마을회관이 있다. 여기서 결혼, 장례, 마을의 큰 행사들을 치른다 (장례의 경우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3-4일을 한다고 한다. 내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하자 마오리족들은 신기해하며 기뻐했고, 백인들은 왜 자신들은 슬픔의 기간을 길게 갖지 못하는지 의아해했다). 우리 연구소 측과 숲의 주인인 마오리부족 측이 한자리에 모였다.
앞선 기도문에서도 보았겠지만 모든 의식은 과히 영적이라 하겠다. 마오리부족 중 여자 어른이 마래의 입구에서 카랑아(Karanga: 마오리식 환영 인사, 죽은 자와 산자 모두를 한 곳에 모으는 의식)를 하면 우리가 한 명 한 명 마래 안으로 입장하고, 차례로 개최자들과 홍이(Hongi)를 했다. 홍이는 이마와 코를 맞대고 하는 인사로, 코에서 나오는 숨을 나눠 가지는 의미다. ‘당신과 나의 영혼을 공유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이후로도 노래로 환영하고 노래로 화답하는 행위를 한다. (물론 여기서도 자기소개하기에서, 좋아하는 음식 말하기를 했다. 5화 당신을 아는 방법 참고)
https://youtu.be/dbSBak7msfs?si=azjEqnngLveiLvau
[카랑아의 한 장면. Harea mai는 welcome과 같은 뜻이다.]
나는 이 모든 행위에서 국가의 존엄성 같은 걸 보았다. 너무 거창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철학이란 게 늘 있는 법이다. 미국은 자유, 프랑스는 혁명 등. 나는 뉴질랜드는 독보적으로 존중에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과 나의 영혼을 공유합니다.라는 말은, 당신의 삶이 어떠해왔던, 당신이 어디서 왔던, 지금 이 인사를 한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을 우리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마오리부족과 유럽인들을, 그리고는 장애인들을, 이민자들을, 다른 제3의 성별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연을. 사회 공동체로 강하게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한다. 존중은 국가의 발전이전의 가장 우선의 가치이다. 이 정신이 사회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러면서도 마오리족 자체를 존중하는 일 또한 절대 잊지 않았다. 여전히 영어를 쓰면서도 국가 1언어를 마오리어로 지정한다던가, 학교에서 하카(Haka)를 가르친다던가, TV에는 마오리 채널이 있다던가, 모든 회의의 개회와 폐회를 마오리 말로 선언하는 등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나는, 다행히도 큰 아픔을, 혹은 큰 차별을 겪지 않고 아직까지는 감사하게도 잘 살아나가고 있다.
https://youtu.be/ett6E1GFNPE?si=euLM6Dzi_m1oX0Vy
[홍이의 설명. 지금은 은퇴한 보리스존슨 영국 총리가 홍이를 배우고 있는 모습이다.]
[마오리민족을 좀더 알고 싶다면?]
Whale rider(Niki Caro, 2002)
https://youtu.be/QDiPBjk8fAA?si=JPAtm5EVPJyFjxmV
Boy (Taika Waiti, 2010)를 추천한다.
https://youtu.be/oP05fUP9xAo?si=vN6mGvsrUa_tgfPE
두 영화 모두 뉴질랜드 마오리민족을 잘 나타낸 영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