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째, 까미긴 생활
1월 중순에 까미긴에 도착했을 땐 정말 아무도 몰랐다. 갓 강사과정을 마친 내가 프리랜서 강사이자 요가 강사로 일하도록 받아준 로버트도 전화로만 연락을 했지, 실제로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그래도 새로운 곳으로의 도전이 아주 무섭지는 않았다. 필리핀에 지낸 기간을 통틀어 몇 개월 이상의 경험이 있어서 그랬나. 처음 가보는 섬인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사람을 사귀는 데 소극적이고 시간이 걸리는 나의 성향에 비해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로 활짝 열린 대문 같은 성격을 지녔다. 웃는 얼굴로 인사만 잘하면서 다녀도 대화로, 식사로, 파티로 홀딱홀딱 초대받곤 한다. 막상 친해지기 시작하면 이것저것 나누기 좋아하고 정이 많은 나 같은 사람과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어쩌면 내가 필리핀에서 인기 높은 K드라마나 K팝에서 보이는 외양처럼 생겨서 덕을 본 걸 수도 있겠다. 반면 내가 BTS의 노래를 한곡도 모르거나 인기 배우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면 그들은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런 필리핀 사람의 친화력과 호의 덕에 찾아온 선물 하나가 집이었다. 순전히 선의로 집을 구하는 일에 나서서 도와준 로엘을 만난 건 까미긴 항구에서였다. 보홀에서 막 도착한 우리들을 상대로 호객을 하던 툭툭(삼륜차) 기사들 가운데 로엘이 있었다. 배도 듬직하게 나오고 전화기도 선뜻 빌려주는 어쩐지 선한 인상의 그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집을 구한다는 내 얘기를 들은 로엘은 당장 다음날 아침부터 빈집 몇 군데를 소개해줬다. 그때 본 집들 중에 첫눈에 확 꽂힌 집이 있었으니 바로 내가 석 달을 살게 된 언덕 위 오두막집이다. 그 집이 아니었다면 멀리서 오는 친구에게 선뜻 집에서 묵어도 좋다는 선택지를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집은 내가 볼 때 완벽하게 배산임수 명당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뒤로는 1300미터 고지의 히복히복(Hibok-hibok)산 준경이 자리 잡고 앞으로는 까미긴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당 넓은 집이었다. 집 크기가 크진 않았다. 화장실, 부엌, 침실이 모두 일체형으로 된 정사각형 방은 10평을 넘길까 싶다. 그래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무엇보다 해안가 도로에서 얼마간 떨어진 높은 지대여서 청량한 공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좋은 풍광과 기운만큼 까미긴에서 나는 산들산들 여름바람 같은 생활을 누렸다.
처음 입주할 때부터 집에는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았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현지 심카드를 구입해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던 때보다 온라인 연결이 차단된 생활이 더 건강하게 느껴졌다.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코바늘 뜨기로 무언가 만들었다. 또 저녁을 직접 요리해 먹고, 설거지하고, 머리카락 줍고, 속옷 등을 손빨래해 널고 나면 시간은 훌쩍 간다. 해 떨어지고 일곱 여덟 시면 잠이 든다. 해 뜰 녘 자연스레 일어나면 센터로 가 가르칠 준비를 하거나 아침 커피를 마셨다.
내가 프리다이빙을 가르치는 센터는 집에서 오토바이로 오 분, 걸어서 십오 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까미긴에는 정해진 노선을 다니는 마을버스 같은 '모터렐라'가 있어서, 단돈 오백 원이면 번화가까지 쉽게 오갈 수 있다. 그리하여 보홀에서 대여했던 것처럼 오토바이도 딱히 필요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 친구들이 놀러 올 때는 예외였다.) 하루 대여료가 1만 원 남짓 하는 만큼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오토바이 생활에 익숙해지면 짧은 거리도 걷지 않게 되는 것이 싫기도 했다. 그리고, 걸을 때면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작은 일상의 면면들이 좋기도 했다. 빠르게 이동하는 데 익숙해지면 출발지 A와 도착지 B 말고는 그저 휙 스쳐 지나가는 풍광이 된다.
게다가 까미긴 섬에는 산 한중턱에 아담한 도서관까지 있었다. 기부받은 책들로 운영되고,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책 위주지만 성인 책도 조금 있다. (지내는 동안 마거릿 앳우드의 <시녀 이야기>와 매리 올리버 시집을 빌려 읽었다.) 오후 시간이면 근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와글와글 뛰어온다고 한다.
다이빙은 주로 센터 앞 산호초 구역에서 했다. 푸른 바다거북이, 줄무늬 바다뱀, 검은 성게, 아네모네피시, 댐젤피시 등이 살고 있는 모래사장을 지나 오십 미터쯤 나가면 첫 번째 부이가 있다. 그곳에선 주로 하루짜리 프리다이빙 체험 과정을 진행했다. 같은 거리만큼 더 나가면 십칠 미터에 가라앉은 작은 난파선 위로 두 번째 부이가 있다. 좀 더 나가면 이십이 미터 깊이에 줄을 드리우고 잠수할 수 있는 부이가 있었다.
더 깊은 수심으로 가려면 센터에서 차를 타고 십 분 거리에 있는 올드 볼케이노 포인트로 간다. 이름 그대로 오래된 휴화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이곳은 검붉은 화산암모래를 배경으로 연산호 군락이 펼쳐진다. 바닥은 깔때기 모양으로 점점 깊어지고, 고정된 부이가 설치되어있지는 않아서 기다란 닻을 함께 가져간다. 수심 오십 미터 바닥에 내려진 닻이 우리가 떠내려가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다.
저녁이 오면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한참 지켜보곤 했다. 어둑해지면 거리에는 나뭇잎을 태우거나 바비큐에 고기, 생선 따위를 굽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섬사람들은 운동장에 모여 농구 경기를 구경도 하고, 거리에 깔린 테이블에 앉아 바비큐를 먹으며 두런두런 하루를 마무리한다. 집에 가는 길엔 개똥을 밟지 않으려 조심한다. 맑은 날은 별이 히복히복 산자락 너머로 쏟아진다.
까미긴에서 나는 외지인이지만 안내자이기도 하고, 여행자이면서 노동자기도 했다. 이 두 정체성 사이를 흐름에 따라 왔다갔다 넘나들고 뒤집어엎기도 하며 지냈다. 때론 알뜰살뜰한 일상의 안정감을 느낄 때가 있는가 하면, 섬에 오래 살아온 이들 가운데에선 부평초처럼 붕 뜬 기분도 들었다. 아마 섬에 가족이 있거나 사업이 있고, 삶의 뿌리가 깊은 이들에겐 나 역시 들고나는 행자로 보였으리라. 한국에서도 섬살이를 좀 해보아서 그런가, '오래'머물지 않을 것 같은 '타지인'들과 쉬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그 마음자리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다이빙 센터나 요가 수업에서 만나는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자니 그것도 한두 번이지, 길어야 일주일, 짧으면 사나흘 있다 떠날 사람들과 매번 친해지기도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불평하는 건 아니다. 여행자와 거주자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하고 달콤 쌉싸름한 매력을 한껏 경험할 수 있었다. 지역언어인 비사야어를 배우고 지역 축제에 참여하며 고속(?) 여행자는 볼 수 없는 섬의 면면들을 찬찬히 알아갈 수도 있었다. 한편으론 진과 같이 나보다 더 이곳이 낯선 친구들을 초대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도 '머무는 여행'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지. 또 한 달가량 길게 머물렀던 한 다이버와는 이후로도 쭉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게 되기도 했다.
까미긴에서의 한 계절은 내 생에 '타지'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 본 시간이다. 돌아보면 정주와 유랑,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그때그때 알아차리면서 산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타지'는 뭘까? 낯선 언어, 모르는 문화, 새로운 장소... 실은 우리 모두 어디에서나 조금씩은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