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운동권의 행복한 시간

by 어른돌
#1. 2020년 그들의 모습




2020년, 국정원의 최고 요원 허백윤(36)은 남부러울 것 없다. 한 남자의 부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모두 인정을 받고 있다. 1억대의 연봉으로 강남의 고급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그녀, 지난해인 2019년에는 입사 10년 만에 최연소 정예 수석요원으로 발탁되기도 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2020년 6월의 어느 날, 허 요원은 최첨단화된 현재 아직도 운동권을 선동하는 사람들을 비밀리에 국정원으로 넘기라는 임무를 수여받게 된다. 나라에서는 그들이 국가의 발전과 공헌에 더 이상 이바지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들을 가상의 섬인 ‘아일랜드’로 보내려고 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임무 실패한 적 없는 최고의 정예요원 허백윤(36)은, 국정원 최고의 미남 파트너인 김태영(38)과 함께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상부에서 내린 파일에는 다양한 운동권 인사들의 이름과 가명, 그리고 현재 본거지와 학적이 소개되어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3~40대의 2000년대 학번이었으며 남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간혹 여자들도 있었다. 파일 속의 사진들은 그들이 검거되었을 당시 경찰서에서 스캔된 사진인지라 화질과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 두 요원들은 파일을 들고, 그들의 본거지 중 첫 번째 장소인 원효대교 북단으로 향했다.


운동권의 본거지는 아주 처량했다. 한강 원효대교 밑에서 천막을 치고 아직도 도심개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그들. 그 속에서 p의 모습이 눈에 띈다.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그녀의 모습.


2004년 그들이 대학 새내기와 선배로 만났을 당시 함께 점심도 먹고, 본관 앞에서 대학생활의 낭만을 만끽하기도 했던 허요원과 김요원 그리고 p여인. 하지만 학생회라는 것이 그들의 길을 갈라놓았다. 외교관이 되고 싶어 하던 p여인은, 운동권 선배를 따라 학생회를 하게 되고 그들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게 된다.


기회가 주어질 때 확실히 사회에 적응한 김요원과 허요원은 현재 국가정보원이라는 곳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지만, 사회의 밑바닥에서 부조리만을 외치던 운동권인 p여인은 최후를 맞이한 듯, 원효대교 밑의 천막에서 피켓을 들고 초라하게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2. 그들의 재회



원효대교 밑의 천막을 바라보고 있는 두 요원들. 서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허요원이 드디어 먼저 입을 연다.


'김요원, 파일에서 p봤어? p가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
'파일에서 보고 설마설마해서 너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녀가 저렇게 된 것은 동기인 너의 책임이 아닐까?'
'김요원, 말 함부로 하지 말게.
학교에선 내가 너의 후배였지만 현재 난 너의 선배야. 공과 사는 분명히 하자고.'
'알겠네. 그나저나 p에게 한번 가보지. 정말 놀랍네. 그녀가 여기에 있다니..'


두 요원들은 p에게로 서서히 이동했다. 케케묵은 썩은 냄새와 괴물이 나올 것 같은 한강변의 비릿한 강바람을 뚫고 이내 텐트 속에서 초췌한 모습의 p여인이 나온다.


'무슨 일이세요..?'


정장 차림의 두 요원을 한때 그들의 동기이자 후배였던 p여인은 못 알아보는 거 같았다.

먼저 허요원이 말을 꺼냈다.


'k대 나오셨죠?'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세요. 여기서 저희들과 하실 얘기 없으실 거 같은데요.'


이들을 정말 모르는 것 같은 p여인을 가만히 바라보면 김요원이 입을 열었다.


'우리 정말 모르겠어...? 본관 잔디밭.. 학부실.. 가요제 사회.. 오티.. 15년 전을 생각해봐...'


p여인은 둔탁한 물체에 머리라도 맞은 듯 순간적으로 놀라움과 공포를 동시에 경험한 듯했다.


'오.. 오빠.. 그리고 넌....! 어머 오빠.. 살 많이 빠지셨네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그리고.. 너.. 너는 어머! 진짜 오래간만이다. 동기들은 다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만둬. 우리는 사적인 이야기 할 시간이 없어.'


허 요원이 정색하며 딱 잘라 말했다.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은 15년 전의 낡은 유리조각 하나에 불과해. 너와 나는 그동안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어. 나는 국가정보원의 수석요원이 되었지만, 너는.. 지금 국가에 쫓기고 있는 신세야.'


허 요원의 이런 쌀쌀맞은 말투에 놀란 듯 김요원이 말을 자른다.

‘미안하지만 국정원에 함께 가 주어야겠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너를 체포하라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졌거든..'
'뭐......? 아... 오빠랑.. 너... 국정원에서 일하고 있구나.. 응?.. 국가를 위해서 일하고.. 있구나. 그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 줄 알고 있긴 하는 거지..? 그런 거지? '
'국가의 명예에 불복종하는 자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 거야?'

허 요원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국가..? 국가의 존재보다 인권이 먼저 아니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 그리고 지금 N구역의 일을 모르고 있어? 기지 확장을 위해서 강제 지역 철거를 하는.. 20여 년 전 에나 있을법한 일들이 지금 2020년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야.'


p여인은 이런 식으로 계속 말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런 것은 국정원 조사실에 가서 쾌적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아. 여기는 너무 끈적끈적하고 짜증 나잖아? 한강에서 끓여먹는 라면만큼이나 말이야..'
'사회과학부 출신이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 줄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알고 있을 텐데, 오빠. 오빠는 예전에 집회도 나갔다면서요. 이게 다 사회를 위한 일인지 몰라서 그래요? 난 죽을 때까지 계속 투쟁할 거야.. 나 막지 마.. 난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


처음엔 반가움에 호의적이었던 p여인도 이제 냉철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대항했다.


그때 저 쪽에서 짙은 턱수염에 각진 얼굴의 한 사나이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3개월 동안은 면도를 하지 않은 듯, 얼굴의 2/3 이상이 수염으로 덮여있었고, 질질 끌은 슬리퍼 끝쪽으로 구멍 난 양말은 그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오른쪽 검지에 끼고 있는 거의 다 탄 담배 한 꽁초는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듯 그의 손가락 마디 사이에서 절규했다.


'여보.. 누구야, 이분들!?'
'어.. 당신 왔어..? 돌아가. 이 사람들은 당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이야..'


순간 허 요원과 김 요원의 머릿속으로 문득 스쳐가는 한 인물이 있었다!

'헉!!! 너....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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