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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Aug 21. 2022

Since 1980, 두유 노우 불고기?

서울시 중구 주교동, <보건옥>

한국 전통 소스인 간장을 베이스로 하면서 호불호 없는 달달한 맛을 지녔기에 한식 문화 선봉장으로 자리 잡은 불고기가 의외로 <분식집 돈까스에 밀려나버린 경양식 돈까스>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1980년대 말 마이카 문화와 함께 등장한 도심 외곽의 가든 식당의 등장으로 황금기를 맞이하였으나 축산업의 발달로 원육이 급격히 좋아지며 현재 우리 식탁 위 고기 문화는 <로스구이>가 지배하게 되었다.

분식집과 평양냉면 식당의 불고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었어야 할 불고기'의 적은 <불고기>이다. 주적(主敵)은 과도한 감칠맛의 분식집 뚝배기 불고기(7천원 안팎)와 일상식으로 먹기엔 과도한 금액의 노포 냉면집 불고기(3만원 이상)이다. 너무 싼 맛이거나 과도한 비용이거나 완충지대 없이 둘 중 하나인 데다 두 경우 모두 불고기는 주연을 빛내주는 조연 역할이다 보니 주변에서 '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한일관을 제외하고는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음식에 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불고기의 원조를 고구려 시대 맥적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 맥적은 맥족(고대 백두산 일대 지역에 거주한 종족)의 <직화 통구이> 음식이다. 맥적이 문헌상 한반도 지역의 직화(直火)로 구워낸 육류 음식으로는 가장 오래되었기에 불고기의 원조로 인식될 뿐 '얇게 저며낸 고기를 양념하여 구워낸 불고기'와는 고기의 손질 방식 등이 달라 아직도 역사학자와 푸드 인문학자의 논쟁 거리로 남아있다.

꼬치에 구워낸 설하멱적(tvn 식스센스)과 석쇠로 구운 언양식 불고기

오히려 불고기의 직계로 따지자면 소고기를 넓게 저며 양념하여 구워낸 너비아니가 가깝고, 그 이전엔 기름 양념장에 재운 소고기를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 약한 불에 굽다가 냉수에 침잠시켜 다시 구워내기를 3번 반복하는 설하멱이 있다. 이렇게 한반도 고대 불고기는 꼬치구이 형태로 이어지다가 1800년대부터 석쇠가 등장하며 현재 언양식 불고기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보건옥의 신판(上 : 오목한 전골팬)과 구판(下 : 하이브리드 방식)

재미있는 부분은 뚝배기 불고기라는 메뉴의 등장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린 육수 불고기는 <서울식>이라 불리는데, 서울식 불고기라 통칭하는 조리 방식에도 오목한 판에 끓여내는 <전골> 방식과 고기를 구워내는 중앙 부분은 솟아있고, 가장자리에는 당면과 채소를 양념국물에 조릴 수 있는 <하이브리드> 방식 2가지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서울식 육수 불고기는 한국 전쟁 이후 등장하여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직화로 구워낸 석쇠구이 불고기는 질 좋은 등급의 소고기를 사용해야 했던 반면 물자가 여러모로 부족했던 전후(戰後) 등장한 서울식 불고기는 비교적 열위 등급 소고기로도 양념 육수를 통해 맛을 극복할 수 있었고, 또한 당면과 채소 등으로 양을 불리는 한국식 탕반 문화의 지혜가 들어있다.

을지로 4가역 인근 골목의 보건옥

노포로 힙하다 하여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보건옥>은 서울식 불고기를 맛볼 수 있는 몇 안 남은 전문식당이자 전골판과 하이브리드판 2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40여 년 업력의 노포이다.

바로 썰어주시는 육사시미 (150g, 31천원)

우선 이 집에서 주문한 것은 육사시미이다. 소 잡는 날이 따로 있는지 벽면에 '금일 육사시미 있음'이라는 안내판이 재미있다. 주문과 동시에 정육고에서 고기를 꺼내 바로 칼질을 해주시는데 고기가 신선해서 대구의 뭉티기살처럼 접시를 엎어도 고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옛날 방식으로 주물럭 양념을 한 등심

다음으로 주문한 등심도 흥미롭다. 등심 로스구이처럼 생고기로 받던지, 간장 · 다진 마늘 ·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주물럭으로 받던지 선택할 수 있다. 이 식당을 방문한 목적 자체가 <옛 방식의 소고기 문화 체험>이었기 때문에 1950년대 후반 마포에서 시작되었다는 <주물럭>으로 받았는데 최소화로 무쳐낸 양념은 고기의 감칠맛을 더해주고, 육향과 식감은 고기의 존재감을 드러내주는 그 옛날의 향수 어린 맛이니 술이 절로 들어간다.

뽀얀 곰탕 국물이 담긴 불고기 불판과 버섯과 양파 등으로 양을 불린 보건옥의 서울식 불고기

이 식당의 화룡점정은 불고기이다. 당연히 <옛날 불판>으로 달라하였는데, 간장을 베이스로 했으되 설탕의 사용은 최소화하였고, 육수는 사골과 양지로 우려낸 뽀얀 곰탕 국물이다. 곰탕 국물을 육수로 사용하는 불고기는 처음 경험해봤는데 처음에는 은은했던 맛이 간장 양념과 함께 졸아들며 맛이 조화로워진다.

옛날불판으로 구워낸 불고기와 소면 사리

마무리로 소면사리를 청하여 졸아든 육수에 말아먹는 것도 별미이다. 불고기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이유도, 대중의 관심이 줄어든 이유도 천편일률 뻔한 맛과 자극적인 양념 때문인데 이 집의 불고기는 그 2가지가 모두 배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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