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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현 Jul 05. 2019

PlastiCity

ProPose

“이슈가 필요해. 떠날 때가 되었어.”

카더리지가 말했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고 자네가 갈만한 모서리는 이 지구에 더는 남아 있지 않다네.”

앨리엇은 하얀 수염을 만지며 대답했다.

“그보다 자네, 캐롤라인에게 프러포즈는 했나. 더 늦으면 손을 쓸 수 없게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어. 명심하게. 한 번 다녀온 사람의 충고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라네.”

캐롤라인은 붉은 곱슬머리가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카더리지는 그녀를 멜리산드레라 부르기도 했는데, 일종의 그만의 애칭이었다. 물론 캐롤라인은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미 준비는 해놨어. 하지만 회사 경영과 결혼은 별개의 문제야. 퓨쳐.”

카더리지는 주머니 속의 반지를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언제든지 준비된 자세는 좋지만, 그 반지만큼은 필요할 때 가지고 있기를 바라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건 고쳐지지 않는 습관 중 하나이니까. 다이아몬드는 영원하지만, 그것이 자네 손에 영원히 머물 것이라는 뜻은 아니라네.”

앨리엇은 카더리지의 뒤에서 위스키를 따르며 이야기했다.

“그래, 다이아몬드는 영원하지만 반지는 영원하지 않지. 관계도 마찬가지이고. 다 상술일 뿐이야.”

카더리지는 책상에 놓인 캐롤라인의 사진을 보며 대답했다.


카더리지는 생각했다. 이번 모험을 끝내고 오면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해야겠다고.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이 모험도 끝낼 생각이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의 안정을 가져올 변곡점과 같이 보였고, 동시에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의 CEO였으며, 세계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하고, 남극과 북극을 탐험한 모험가이기도 했다. 그가 보여준 자연에 대한 도전정신은 기업의 근본정신이 되어 성공한 사업가 또는 모험가의 표본이 되었으나, 일부 사람들은 기업홍보를 위한 쇼일 뿐이다, 모험가들의 순수한 도전정신의 왜곡이다, 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부를 축적해 놓고 있는 거대한 기업의 CEO가 목숨을 담보로 모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든 비난을 잠잠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카더리지는 곧 새로운 도전을 기획하였다. 그것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기록을 세우는 것이었다. 서태평양의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은 약 11km에 달하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1960년 1월 ‘돈 월시’와 ‘자크 피카르’가 ‘바티스카프 트리에스테호’에 타고 최초로 유인 탐사에 성공한 이후로 이 도전에 신기록을 세운 사람은 영화감독인 ‘제임스 캐머런’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영화 ‘타이타닉’을 위한 이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고 참여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제임스 캐머런’과 영화 ‘타이타닉’의 전례가 있었기에 이번 도전은 더욱 주목받을 수 있어 보였다. 


“그래, 이번 기회로 해양스포츠 사업에 도전하는 거야. 잘만하면 타이타닉을 뛰어넘을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겠지.”

카더리지가 말했다.

“예감이 좋지 않아. 더구나 자네 아이디어의 근원이 추락하는 배가 나오는 영화라니. 나로서는 쉽게 찬성하기 어렵네.”

앨리엇이 답했다.

늘 꿈같은 구상은 카더리지의 몫이었고, 그의 몽상을 정리하여 구체화시키는 것은 앨리엇의 몫이었다. 그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인중을 쓰다듬었다. 카더리지가 골치 아픈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타이타닉호는 침몰했지만, 나의 배는 바닥까지 닿았다가 다시 부유할 거라네. 우리 회사의 처지와 같은 거지. 이 얼마나 상징적인가. 그리고 자네가 자네의 예감을 따르다니! 그것 참 믿기 어려운 일이야. 저쪽 방향에서 돈 냄새가 나고 있어. 어서 방향타를 잡고 배를 돌리게. 그것이 자네의 일이니까. 전담팀을 꾸리고 어서 사업계획을 짜보세. 보수적인 이사회 늙은이들을 구워삶으려면 치밀한 준비가 필요할 거야.”

카더리지는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앨리엇에게 말했다. 앨리엇은 카더리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 선장이 떠올랐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어째 같은 연극을 반복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군.’

앨리엇은 한숨을 쉬었다.


앨리엇은 직업군인으로 20여 년을 복무한 배테랑 군인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작전 수행 중 다친 부상은 그를 더는 전쟁터에 머물 수 없게 만들었다. 불시에 전역을 한 그의 삶은 불안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그동안 제대로 나누지 못한 정을 가족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나누느라 바빴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인생의 톱니들이 녹슬어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군 복무를 하던 시절 그의 삶은 녹슬 틈이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과 작전은 그의 삶에 기름칠을 해주었다. 그의 톱니는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시계의 부속 같았다. 째깍째깍 그의 시계는 늘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었고, 그의 삶에는 의문이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그러나 의도치 않은 전역을 하고 난 뒤 그는 자신의 삶이 다친 다리만큼이나 삐거덕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교한 기계일수록 매일 관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망가진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삶에 기름칠할 무언가 동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간을 가리키며 한 초를 넘기지 못하는 시계처럼 그의 하루하루는 제자리에 머물며 녹처럼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카더리지에게 연락이 온 건 그즈음이었다.

“자네의 이야기는 전해 들었네. 마침 자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연락하게 되었어. 언제 시간 내어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을까.”

엘리엇에게 카더리지의 사업 제안은 등대의 불빛과도 같았다. 항로를 잃고 표류하던 바다에서 그는 멈춘 심장이 다시 뛰는 듯한 진동을 느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카더리지의 구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물론 착실하고 능력 있는 그의 파트너이자 지휘자 앨리엇에 의해서였다. 이번 도전은 그동안의 도전과는 사뭇 달랐고, 준비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그 깊은 바다로 들어가 견딜 수 있는 잠수정을 개발하는 일이었지만 이미 여러 차례 챌린저 해연을 탐사에 관여해 온 업체의 기술력은 충분했으며, 그들의 기술력을 뒷받침할만한 기업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마침 카더리지에게는 자금력이 있었고, 적절한 시기를 읽을 줄 아는 눈도 있었다. 이사회는 새로운 사업의 장래를 밝게만 보지는 않았지만, 사업의 흐름을 읽는 카더리지의 능력만은 존중했다. 그의 새로운 사업은 의결되었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잠수정은 개발이 완료되어 시운전을 마치게 되었다. 잘 익은 먹잇감을 노리는 파리처럼 기자들은 몰려들었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이슈도 충분하였다. 도전의 성공은 단지 시간의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뜬구름 같구먼.”

“뭐라고?”

“뜬구름 같다고 했네. 자네의 저 잠수정 말일세. 구름은 푸른 하늘 위를 흘러 다니지만, 자네의 잠수정은 푸른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유영하겠지. 그것참 아이러니하구먼.”

완성된 잠수정을 처음 본 앨리엇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더리지는 갑자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흥분한 듯 말했다.

“바로 그거야!”

“뭐가 말인가.”

“클라우드 아틀라스! 우리의 잠수정의 이름은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하세. 영화 제목과 같으니 자연스레 타이타닉과 연관될 수 있고, 미래지향적이며 몽상적인 이름이기도 해. 더구나 뭔가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같아. 어떤가? 클라우드 아틀라스 호!”

카더리지의 자유로운 사고와 경험이 충돌하는 구름은 종종 앨리엇이라는 단단한 땅을 만나 아이디어를 번개처럼 내리게 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잡고 내지르는 모습은 어떤 이에게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이 느껴졌고, 어떤 이에게는 미치광이 같이 느껴지기도 하였으며, 신이 들린 무속인 또는 사이비 교주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앨리엇은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영감의 순간을 놓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 자네의 저 잠수정의 이름이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면 자네의 이름은 ‘제우스’라고 바꾸는 게 어떨까.’

앨리엇은 그리스 신화 속 이름을 가져다가 붙인다는 건 많은 리스크를 동반한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신화 속 인물들을 대부분 복잡한 성격과 스토리를 갖고 있으며 그 내용은 대개 퇴폐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앨리엇은 자기 생각을 카더리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경험상 대중은 그의 복잡한 생각만큼 고민하며 해석할 정성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이름들은 대부분 단순한 의도에서부터, 또는 우연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달에 처음 착륙한 우주선 이름이 ‘아폴로’인 것을 고려하면 꽤 괜찮은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구시대의 대명사들을 가져다가 의미를 부여하고 다시 쓰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후세의 사람들이 쓸만한 구시대의 이름들이 미래에는 남아 있기나 할까.’

앨리엇은 습관적으로 카더리지의 빛나는 눈을 훔쳐보았다. 바다와 하늘빛을 섞어놓은 듯한 그의 푸른 눈을 보고 있자면, 앨리엇은 자신이 마치 지구를 바라보는 위성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구가 달의 앞면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앨리엇의 뒷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으나 카더리지는 결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없었다.


도전 당일이 되자 많은 기자는 일본의 가고시마 항구로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잠수정을 싣고 갈 인양선이 정박해 있었다.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맑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잠수정이 수평선 사이로 묘한 대칭을 이루었다. 하얀 잠수정의 옆구리에는 ’CLOUD ATLAS’라는 이름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카더리지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CLOUDATLAS 사이에 빗금처럼 서서 포즈를 잡았다.

기자들이 모인 광장의 연단에 서서 카더리지가 말했다.

“저는 오늘 지구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지만, 인류는 더 높은 곳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카더리지의 도전은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으며, 앨리엇은 그 중계를 회사 내에 마련된 모니터링 실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앞으로의 항해에 별문제가 없다면 인양선은 64시간 뒤 목적한 지점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가고시마 항에서 멀어진 인양선은 정확히 64시간 뒤 챌린저 해연에 도착했다. 준비작업을 마친 잠수정은 인양선에서 분리되어 바닷속으로 하강했다. 잠수정에 탑승한 선원은 카더리지와 엔지니어 두 명이 전부였는데, 세 명을 실은 잠수정 내부는 엉덩이 하나 쉽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그것은 애당초 예산과 기술적 문제로 인하여 단시간 내에 잠수정을 크게 만들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설사 많은 인원이 내려간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이 도전은 연구가 목적이 아닌 홍보에 더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카더리지에게는 다른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캐롤라인에 대한 프러포즈였다. 이것은 단순히 로맨틱한 프러포즈가 아닌 도전의 여정에 포함될 카더리지의 계산된 연출이었다. 그 시나리오는 이러했다.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항구로 돌아가면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캐롤라인이 달려와 그를 껴안고, 그는 주머니 속의 반지를 꺼내어 그녀에게 내민다. 그녀는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와 함께 두 사람은 준비된 차를 탄다. 떠나가는 차량의 배경으로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날리며 이 연극의 커튼은 내려질 예정이었다.

카더리지는 그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꿈을 이룬 듯 즐거웠다. ’CLOUD ATLAS’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심해 속으로 내려가고 있었으며, 눈을 감은 듯 어두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그 과정은 그의 꿈으로 가기 위한 의식과 같았다. 가장 깊은 곳으로 떨어진 잠수정은 꿈을 건져내어 현실로 가져 나올 예정이었다. 그의 여정은 메타포로 가득했으며 그가 원하는 결말로 쓰일 하나의 문학작품과 같았다. 그는 이 여정의 작가였으며, 수면 밖에는 그의 작품을 감상하게 될 독자들이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캐롤라인은 부두에 서서 카더리지의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금기를 품은 바닷바람이 그녀를 덮칠 때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붉은 파도가 치는 듯했고, 그녀의 외모는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거센 바람과 뜨거운 태양 때문에 흐드러진 머리카락과 흔들리는 드레스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질문과 카메라의 셔터 소리들도 지금 그녀의 불편함에 일조를 하였다. 그녀는 며칠 전 엘리엇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이번 탐험이 끝나면 항구에서 그가 너에게 프러포즈를 할 것이다. 너는 그의 프러포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며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이제 우리 계획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고 있어.”

엘리엇이 캐롤라인에게 말했다.

“당신의 계획이겠지. 앨리엇. 그리고 그와의 결혼은 길게 끌지 않을 거야. 다음 심해 탐사 일정이 어떻게 된다고 했었지? 다음은 대서양이라고 했나?”

“그래, 그를 하늘로 띄운 ‘클라우드 아틀라스’호는 그 이름과 어울리는 대서양의 바닥에 영원히 잠들게 될 거야. 그렇게 된다면 그의 재산과 회사는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는 거지.”

“당신의 손이겠지. 아무튼. 이 일을 끝으로 우리의 관계는 깨끗이 정리하는 거야.”

“물론이지. 알잖아, 캐롤라인. 내가 아주 깔끔한 마무리를 좋아한다는 걸.”


그 시각 잠수정은 점차 이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잠수정 내부와 외부를 비추는 카메라를 통해 이 과정은 고스란히 녹화되고 있었으며, 어느덧 해구의 바닥과 가까워진 잠수정은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바닥과의 접선에 대비하고 있었다. 잠수정이 신기록을 달성하고 점점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갈수록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심해 어종이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였지만 카더리지의 관심은 오직 바닥에 있었다. 레이더에는 바닥까지의 남은 거리가 표시되고 있었으며, 500m를 기점으로 빨간 조명과 함께 남은 숫자는 반짝거렸다. 40, 30, 25, 20, 15, 10, 5, 4, 3, 2, 1. 그의 잠수정은 천천히 해구의 바닥에 앉혀졌다.


잠수정이 바닥에 닿은 순간 카더리지의 눈은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이 탐험에서 바닥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지만, 달에 처음 착륙한 ‘아폴로 호’처럼 ‘클라우드 아틀라스 호’에게는 갖고 귀환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이 필요했다. 카더리지의 욕망에 따라 잠수정의 눈과 팔은 바닥을 뒤지고 있었다. 모래가 바닥에서 일어나며 시야가 잠시 흐려졌다 맑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밝아오는 시야 사이로 모래 바닥에 튀어나온 물건 하나가 카더리지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카더리지는 엔지니어에게 로봇 팔을 이용 해 그 물건을 집어 올리기를 재촉하였다. 엔지니어는 차분히 시야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그것은 어느 보물선이 떨어뜨린 보물이었을까. 아니면 고대 문명의 기록이었을까. 어쩌면 심해 어종의 사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흐려진 시야는 엔지니어와 카더리지의 상상을 자극하며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시야가 걷히면서 로봇팔에 걸려든 물건의 작고 동그란 파이프가 잠수정의 로봇 팔에 걸려 올려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물건의 정체는 원통형의 플라스틱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상상 속의 보물은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였던 것이었다. 그 쓰레기는, 아니 버려진 플라스틱은 잠수정의 관절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플라스틱의 겉면에는 영어와 숫자가 쓰여 있었는데 워낙 크기가 작아서 맨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웠다.


“마치 전 부인에게 다시 프러포즈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네요.”

동승한 엔지니어가 말했다.

엔지니어가 말을 건넨 그 순간 특별한 보물을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가득했던 카더리지의 복잡한 머릿속에는 운명처럼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A Plastic is Forever”

 

그것은 지구가 자신에게 약속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처럼 느껴졌다.



<PlastiCity>는 플라스틱을 주제로 쓴 글들의 모음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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