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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모레비 Dec 11. 2019

관계와 일을 망치는 ‘최소 커뮤니케이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에 맴돈다. 초코파이 광고에서 흘러나오며 전 국민이 따라 부르던 이 노래는 한국의 정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은 내게도 회사생활 속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겨줬다.


 차디찬 겨울에 목감기로 고생하고 있었던 내 책상 위에 무심한 듯 작은 유자청 한통을 올려두었던 선배, 회의 시간 나름 공들인 기획안이 허점 투성일지라도 끝까지 날 믿고 한번 자신 있게 해 보라며 지지해주던 팀장님의 묵묵한 응원을 먼 훗날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되는 일 같은 것들이 그렇다.


 사람들이 ‘츤데레’에 열광했던 이유도 표현하지 않고 숨겨뒀던 진심을 느닷없이 마주했을 때의 극적인 희열 때문이지 않나 싶다.




꼭 삽질해서 배워야 할까?


“냅둬.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는 거야.”

“다 그렇게 삽질하고, 혼나면서 배우는 거다.”


 이 얼마나 자신의 불친절함을 후배의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으로 포장한 무책임한 말들인가? 직장생활 속에서 ‘말하지 않아도 전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결코 속 깊은 정을 나누는 것에만 머물지 않았다. 굳이 길게 공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무조건적인 센스와 눈치로 알아서 잘 적응하길 바라는 '고맥락 문화’는 당연했고, 조직에 처음 들어온 신입사원들은 당황했다.


 고맥락 문화는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주장한 개념으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보다 그 당시의 맥락과 상황을 판단해 상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문화를 말한다. 한국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고맥락 문화를 가진 사회가 아닐까?


 결과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잘해야 하는 고맥락 문화는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도 상당한 비용을 소모하게 만들고 있다. 실무자는 직책자의 의중을 모른 채 갈피를 못 잡고 며칠을 헤맨다. 기획안을 작성하기 전에 프로젝트의 최초 목적과 기획 의도를 담은 컨셉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은 극히 적거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형식적으로 진행된다. '최소 커뮤니케이션'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고맥락 문화는 필연적으로 오해를 낳는다


 우리 부부는 페이스북을 즐겨한다. 맛집, 여행지를 소개한 게시물에 댓글로 태그를 달며 서로를 소환하고, 댓글을 달며 정보를 나눈다. 퇴근 후 공유했던 게시물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 직장 선후배와 페친이 되면서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페친 사이는 그 친구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 것들이 타임라인에 가끔씩 보였던 것이다. 혹시라도 업무시간에 일 안 한다고 오해 사기 딱 좋은 상황이라 잠깐씩 쉬는 시간에 페이스북을 보며 아내에게 댓글이나 좋아요를 달았던 즐거움은 느닷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그때 페이스북에서 댓글 단거 봤어. 같이 가고 싶더라~"

"어? 여보 그거 봤어? 나는 반응이 없길래 못 본 줄 알았는데.. 아니면 보고 그냥 지나쳤나 보다 했어"

"근데 왜 얘기 안 했어? 섭섭했을 텐데"

"응 그냥. 별거 아니잖아~조금 서운하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았어"

"사실은 말이야~blah blah"


 아내는 대화 후에야 쌓였던 오해가 풀린듯했다. 그리고 자세히 이야기해줘서 좋았다. 덕분에 오해가 풀렸다고 말해줬다. 내가 '굳이 뭘 그런 얘기까지. 말 안 해도 알겠거니'라고 생각했다면 아내는 나의 난처한 상황을 알 수 있었을까? 별거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조금 서운했던 감정은 풀리지 않은 채로 점점 페북에서 날 소환하는 빈도가 줄어들었을 테다.




표현하는 것과 제대로 전달되는 것은 다르다


MBC 무한도전 중 '방과방사이' 게임을 하는 모습


 ‘방과 방 사이'라는 게임을 보면 5명이 쭉 서있는 채로 첫 번째 서있는 사람이 속담을 보고 다음 순서의 사람에게 몸짓 발짓을 통해 설명한다. 다음 순서의 사람은 큰 소리로 음악이 나오는 헤드셋을 낀 채로 입 모양과 제스처만 보며 정답을 맞혀야 한다. 각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내는 사람이 설명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순식간에 ‘남 말은 내가 듣고, 반말은 지가 듣는다’와 같이 말도 안되는 문장으로 둔갑해버린다.


 Shannon과 Weaver는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모델을 연구했다. 이 분들은 정보를 개인이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코딩과 디코딩이 이뤄지며, 필연적으로 전달 과정에서 메시지의 변형이 나타난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나의 잘못된 해석과 표현으로 메시지가 변질되기도 하고, 상대방이 해석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경험적, 지식적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정확히 내가 의도한 대로 전달되기 어려운 법인데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얼마나 비합리적인 낙관성을 내포하고 있는가?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더 많이 표현하고, 시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상대가 눈치 있고, 센스 있기를 바란다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아무리 본인의 일이 바쁜 리더라 할지라도 조직원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최소한의 기대 수준과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 기업의 CEO가 조직의 비전과 미션을 수립하고, 깊은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똑같은 이야기를 직원들 앞에서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단 한 번의 자리를 통해 전 직원이 중요성을 느끼고 공감하길 바라는 건 너무 무리한 기대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코칭에서는 AAR(After Action Review)이라는 기법을 자주 활용한다. 팀원과 업무 관련 면담을 나눌 때 다음 4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라는 것이다.


① 해당 업무를 진행하면서 최초에 얻고자 한 것

② 업무를 통해 실제로 얻은 것

③ 그 차이와 원인

④ 앞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4가지 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최초에 얻고자 한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팀원과 리더(혹은 조직)가 원하는 끝 그림이 달랐다면 아무리 과정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만족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시작점에서부터 대화를 아끼기 시작했을때 기대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서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최소 커뮤니케이션' 멀리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최대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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