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조각 맞추기
초등학교 다닐 적 '칠교' 놀이를 했었다. 칠교는 7개의 각기 다른 조각을 조합해 다양한 실루엣을 만드는 놀이다. 같은 조각이라도 위치에 따라 완성 실루엣이 달라지며, 7개 조각으로 수백 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그 시절 담임선생님 주도하에 칠교를 했던 기억이 난다.
각기 다른 7개의 조각이 수백 가지 모양을 만드는 것처럼 내 메모장, 바탕화면 폴더 속 낱개의 파일 등 각각의 원고는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따라 책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내용이 명확하게 이어지는 소설이나, 시간순으로 진행하는 여행기는 정해진 순서를 따라가면 된다.
흩어진 글을 모아 전자책으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뼈대, '목차'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일단 내 서랍 속에 있는 글을 다 꺼내어 보자. 여러 조각의 원고를 손바닥에 올려 호두 굴리듯이 굴려보자. 그리고 고민해보자. 이 내용을 인트로에 활용할까? 아니면 마지막에 쓸까? '폭삭 속았수다'처럼 시간 흐름대로 가지 않고 각 인물이 겪는 중요한 서사를 따라갈까?
내 여행기는 확실하게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첫날 동해,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는 서천. 시간순으로 진행하면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되는 글이다. 반대로 순간순간 감정을 담은 '시'가 여러 개인 경우, 서로 다른 시기에 작성한 에세이 모음집, 메모장에 끄적인 단편적 사색, 다양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과 짧은 글, 오랜 기간 모아온 인용구, 각기 다른 분위기의 단문 소설, 여러 주제의 칼럼처럼 명확한 시간적 순서나 논리적 연결성이 부족한 원고를 정리할 때 목차 구성이 어려울 수 있다. 목차가 애매한 경우는 어떻게 할까?
목차는 단순히 글의 순서를 나열하는 것 이상이다. 콘텐츠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분류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직관적인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나는 MECE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MECE란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의 약자로, '상호 배타적이면서 모두를 포괄한다'는 뜻이다. 컨설팅 업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인데,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할 때 유용하다.
MECE 원칙은 다양한 관점에서 적용할 수 있는데, 이전 회사에서 유용하게 활용했던 관점은 다음과 같다.
1. 요소별 분류
여행책이라면 '교통', '숙박', '음식', '명소', '쇼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요소는 겹치지 않으면서 여행의 모든 측면을 포괄한다.
2. 순서별 분류
시간 순서대로 '출발 전 준비', '첫째 날', '둘째 날'... '귀가 후 정리'와 같이 구성한다. 나의 여행 이야기처럼 시간 흐름이 중요한 콘텐츠에 적합하다.
3. 이해관계자별 분류
요리책이라면 '초보자를 위한 레시피', '아이들을 위한 요리', '파티용 메뉴', '건강식 레시피' 등 대상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4. 입장별 분류
같은 주제도 '찬성 측 입장', '반대 측 입장', '중립적 시각'으로 나누어 균형 있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5. 단계별 분류
'입문', '기초', '심화', '전문가' 등 난이도나 발전 단계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이다. 학습서나 가이드북에 적합하다.
6. 지역별 분류
여행 가이드라면 '동부 지역', '서부 지역', '남부 지역', '북부 지역'처럼 지리적 구분으로 목차를 구성할 수 있다.
7. 용도별 분류
'일상적 사용', '특별한 날', '비상시' 등 용도나 상황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이다. 생활 가이드나 매뉴얼에 유용하다.
내 글은 순서별로 분류하려고 한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여행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기본 구성이다. 완성한다면 여행에세이 처럼 보이는 칠교가 될 거 같다.
MECE를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겹치지 않고 누락된 것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빼먹은 내용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이 규칙을 지킨다면 분류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빈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빈 공간'은 누락된 영역을 드러내어 새로운 창작 기회를 제공하므로, 목차 작업이 단순한 정리를 넘어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드는 생산적인 활동으로 확장된다.
다시 내 글을 봤다. 시간순으로 나열하니 흐름은 괜찮은데, 분량이 너무 적다. 이 부분이 '빈공간'처럼 보인다. 인트로, 아웃트로가 있어야 모양이 살 거 같다. 그리고 첫 글에 5일 치 분량이 들어갔다. 이 글을 나눌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할 일이 더 생겼다. 귀찮지만, 시간을 내서 여행 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자. 열심히 더듬어 분량을 늘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