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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도개 Sep 28. 2023

단 한 사람

특별함에 대하여

나는 태어나서 지금껏 단 한 번도 특별한 사람인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존재감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업 때 화장실 간사이에 나 없이 조편성이 된다던가, 선생님이 피자를 쐈는데 내 몫은 없다던가. 급식실에서도 왠지 옆자리가 항상 비어있던, 붐비는 버스에서도 내 옆은 빈자리던 그런 사람이었다. 용산에 가면 컴퓨터를 강매당하고 동대문에 가면 옷을 강매당하고 역 주변을 걸어가다 엄청 비싼 요금제를 3년이나 들게 했다. 얼굴도 모르는 동창들에게 옥장판이니 게르마늄이니 잔뜩 사줘야 했고 온갖 보험에 심지어 여성속옷 세트까지 사준적도 있다.  겨우 겨우 취직한 회사에서도 밥 먹으러 갈 때 끼지 못한다거나 주말에 워크숍을 갔다는데 나만 전달받은 내용이 없는, 뭐 그런 조금 슬픈 인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밝은 구체가 내려오더니 우리가 흔히 아는 그나마 귀여운 모습이 아닌, 정말 무시무시한 촉수를 가진 괴물이 등장하였다. 그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젠틀하게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우주미식단이고 각 행성을 돌면서 새로운 음식을 접하는 중이라 했다. 그들은 전쟁 같은 건 원하지 않으며 많은 이들을 학살하지도 않을 거라 약속했다. 딱 한 가지. 단 한 사람만 맛보고 나면 지체 없이 다음 행성으로 떠나겠다 하였다. 그 후 전 세계 투표가 진행되었고 거의 100프로에 가까운 찬성을 얻어냈다. 전 세계에서 딱 한 사람정도로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면 득 보는 장사라 모두가 생각했다. 물론 당연히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찬성표를 던졌었다. 그들은 아주 쓴맛의 식재료를 원한다 하였다. 아주아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쓴 사람. 그들의 조건에 맞는 DNA를 이리저리 돌려본 결과 세상에서 가장 쓴 사람은 바로 나였다. 언제나 다수에만 속하던 내가 전 세계에서 일등을 하다니. 처음엔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점차 행복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들이 나를 맛보기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여러 방송에 출연하였고 전 세계를 구할 히어로라고 불렸다. 거리에 나가면 엄청난 인파가 나를 둘러쌓았고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였다.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전 인류 중 가장 쓴 단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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