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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도개 Sep 02. 2023

녹아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일반적이지 않은 것


비는 확실히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


오늘도 주르륵 화장실로 들어갔다. 녹은 덕분에 따로 씻을 필요가 없지만 괜히 거울을 한번 본다. 녹았을 때가 더 잘생긴 것 같은데. 물론 개인적인 감상이다. 난 빈말로라도 잘생겼다 할 수 없는 외모를 가졌다. 밥이나 먹자. 부드럽게 미끄러져 부엌으로 들어선다. 냉장고에서 식빵을 꺼내 토스터기에 넣고 계란도 하나 까서 후라이팬에 튀기듯이 부친다. 계란을 올린 식빵을 한입 베어 물며 신문을 펼쳤다. "액체화된 사람들을 병에 담아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늘어나고 있다."  아침부터 무서운 이야기다. 밥맛이 뚝 떨어져 신문을 덮는다. 녹아버린 사람들은 아무래도 희소가치가 높다. 지금은 어느 정도 사회에 녹아 어우러져 살지만 한때는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범죄라니. 또다시 어딘가로 숨어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띠리릭. 알람소리에 잡생각을 떨치고 회사에 가기 위해 방을 나선다.


"밥, 잠깐 이리 와봐요." 귀찮다. 맨날 불러내 잔소리만 하는 사장. 그는 내가 녹았다는 이유로 채용했지만 녹았다는 이유로 하루가 멀다 하고 쓴소리를 해댄다. 정부에서 녹은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 내가 이 회사에 채용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녹아버린 사람들을 위한 시위에 참가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왔다. 내 업무는 녹으나 안 녹으나 전혀 관계없지만 나는 녹아버린 게 마치 죄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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