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미주로 가는 기차는 도시를 벗어났다. 그에 따라 창밖 풍경도 회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하림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진순과 헤어지며 받은 낡은 졸업 문집은 가방에 넣어 두었다. 우선 당장은 좀 숨을 고르고 천천히 미주에 도착하기 전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떠오른다. 그녀는 불현듯 아빠의 장례식이 열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한 번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이어나가는 일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아빠의 장례식을 꽤나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아빠가 원하는’ 장례식 말이다. 다른 나라의 어떤 영화에 등장하는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이나 우리나라의 어떤 작가는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장례식을 꿈꾼다고 했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죽은 그 개인과의 좋았던 기억을 환기시킴으로 주변 사람의 삶을 조금 더 충만하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즐거운 장례식을 원한다고 했다. 아빠는 항상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던지며 본인은 이런 장례식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신에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꼭 진심으로 슬퍼해 주기를 바랐다. 고인만이 아니라 오히려 고인의 가족, 친구, 동료들도 함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장례식의 본질은 위로이니. 아빠는 본인의 장례식에 오는 많은 이들이 슬퍼함으로써 엄마와 그녀가 위로받기를 원했다. 또한 그 사람들 역시도 슬퍼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했다. 본인은 이미 죽었으므로 아무 상관없다는 논리였다. 얼마 전까지 그녀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아빠의 장례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코끝이 찡해졌다. 만약 지금 거울을 본다면 분명히 분홍빛 충혈된 눈과 양쪽 콧방울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결코 타인을 온전히 이해(comprehension) 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세계 속에 비친 타인의 상(像)만을 어렴풋이 해석하는 정도. 하지만 그 속에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서 축적하는 사람의 체취나 말, 표정, 혹은 그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 같은 기억의 총체가 담겨 있다. 그녀의 세계를 이루는 부분 중에 아빠의 상은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 상은 실제 아빠와는 다름에 틀림없다. 그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빠의 부재가 그녀의 세계에 큰 상처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닦아 내고 문집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