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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Sep 16. 2023

아빠가 사라졌다 (9)


이 글은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둘은 동창회에 참석한 다른 어떤 동문과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교문을 통과해 학교 담장을 따라 큰길의 인도를 걸어갔다.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정문 앞 큰길은 40년 전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지만 다행히도 골목은 그런대로 예전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 만큼만 바뀐 듯했다. ‘용화장’은 골목이 끝나고 길이 양갈래로 갈라지는 지점 중앙에 있었다.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길 끝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큼지막한 간판이 붉은색과 금색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주택가에 있기에는 어색할 만큼 큰 건물의 1층과 2층 전부가 한 식당이었다. 1층에는 2, 4인용 둥근 테이블이 수십 개가 있었다. 이른 저녁이었고 반 정도의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규민과 진순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계단을 오르자 좁은 복도 여기저기 크고 작은 홀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복도 끝은 2층에서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홀로 연결되었고 그 중앙에 대략 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둥근 테이블이 있었다. 큰 테이블 주위로 2인용 작은 테이블이 벽과 창 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둘은 창가에 붙은 한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 외에도 몇몇 자리에는 먼저 도착한 동문들이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앞에 각자 작은 샐러드가 나왔다. 코스요리였나 보다. 규민은 직원에게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독특한 향이 나는 드레싱이 올려진 샐러드는 나쁘지 않았다. 규민과 진순이 샐러드를 다 먹고 소주를 한 잔씩 마시는 동안 테이블은 점점 채워졌다. 그리고 곧 정장 차림의 사람들 한 무리가 홀로 들어왔다. 황준목과 그만큼 덩치가 큰 노인이 제일 선두로 들어왔다. 아마 회장일 테지. 만약 입장하는 순간에 양쪽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 번쩍이고 셔터가 찰칵찰칵 거렸다면 티브이 시사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인의 회동자리라고 해도 될 듯한 장면이었다. 그 무리가 앉은 후에 황준목은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술과 음료는 테이블 별로 편하게 주문하시기 바랍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홀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대화하는 소리, 웃는 소리, 직원을 부르는 소리가 시끌시끌, 벅적벅적하게 들려왔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중국식 요리가 과하게 큰 접시에 담겨 나왔다. 전분을 넣어 걸쭉한 요리도 있었고 물엿이 들어간 소스를 올려 끈적한 튀김 요리도 있었다. 규민과 진순은 별 대화 없이 먹고 마셨다. 요리는 맛있었다. 술은. 썼다. 그나마 식당 내 어느 누구도 그들을 아는 체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둘 다 서로의 빈 잔을 신경 쓰거나 건배를 해줄 필요가 없는 정도로 친한 사이인 것도. 규민은 빈 소주잔을 채우고 한 모금 마셨다. 해결되지 못한 예전 기억과 해결할 의지가 부족한 스스로에 환멸을 느꼈다. 알코올에 녹아 속을 드러낸 자아는 자기 비하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각인된 트라우마가 사라지고 짙은 공포가 희석될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규민은 여전히 그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묵직한 불편함을 느꼈다.


술에 취해 청각도 무뎌졌는지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이렇게 취한 적이 언제였던가. 한 병은 넘게 마신 듯했다. 그는 슬그머니 중앙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황준목이 시뻘게진 얼굴로 옆자리에 앉은 이와 큰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때로는 술잔을 들이켜고 “캬아” 탄성을 지르고.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탕 치기도 하고.


“어떻게 저렇게 즐거울, 수가 있을까?”


진순의 말에 규민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코끝이 빨개진 진순도 역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응?”

“아니. 생각해 보면.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닐 거잖아. 여기 다들 35회, 졸업생들 아닐 텐데. 되게 가식, 적인 것 같아.”


진순의 목소리 음이 평소보다 조금 높아졌다. 그의 말은 살짝 느려지고 자연스럽지 않은 곳에서 끊어졌다.


“황준목 봤잖아. 그냥 다들 흐릿한 기억 재조립해서 남들 이야기랑 맞추는 거지. 그리고 아름다웠던 그 추억을 공유하는 척하는 거고.”


규민은 오른손에 쥔 젓가락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엉덩이를 앞으로 빼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하. 괜히 온 거 같네. 너 인마. 이런데 다시는 부르지 마라.”

“나도 후회된다. 미안타.”


둘은 그날 처음으로 술잔을 부딪혔다. 쓴 술을 목으로 넘기며 규민은 그냥 조용히 일어나서 찜질방이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도 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불현듯 위화감이 들었다. 술에 취한 시뻘건 얼굴. 악수할 때 떨리던 턱살. 무대 위에서 행사를 진행하던 과장된 몸짓. 그는 흠칫 놀라 다시 황준목이 있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굴만큼 시뻘건 시선을 마주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술에 취해 비틀비틀 떠들고 있었는데. 지금 그 시뻘건 두 눈은 한계까지 당겨진 활시위에 얹힌 화살처럼 정확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황준목은 기억하고 있었다. 규민을 반기던 모습도, 서로 친하게 지냈다는 말도 모두 꾸민 것이었다. 그의 악함은 무뎌지지 않았다. 그러나 수십 년 전 그 눈빛을 마주했을 때의 공포는 규민에게서 떠오르지 않았다. 취해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서 그런지, 아주 오래전이라 잊어서 그런지, 그때와는 다른 용기가 생겨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황준목의 눈빛을 대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묵직한 불편함이 지금은 오히려 안정감을 준 것인가. 규민은 차분하게 황준목을 마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흐릿하지만 한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마저 지었다. 스스로 의아했지만 그 담대함을 무던하게 수용했다.


황준목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느 순간 애초에 규민이 아니라 그 너머 창밖을 보고 있었다는 듯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황준목은 자신의 식탁으로 시선을 옮기고 앞의 요리를 먹고 술을 마셨다. 그 어색한 모습까지 지켜보던 규민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술잔을 채웠다. 작은 승리에 도취되었는지 공중파 소주 광고의 배우가 하는 것처럼 단숨에 소주잔을 들이켰다.


“하아. 씨발.”


탄식과 함께 욕이 작은 소리로 따라 나왔다. 순간 규민은 황준목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던 이유가 순수함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을 깨달았다.


“갈까?”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진순에게 규민이 말했다.


“오케이. 뭐 더 있을 필요 있겠냐?”


둘은 동시에 일어났다. 홀에는 서 있는 사람도 많았고 소란스러워 둘이 출구로 나가는 모습은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들은 복도로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은 들어올 때보다 손님이 많았다.


“화장실 좀 갔다 가자.”

“갔다 와라. 난 입구에 있을게.”


규민은 진순에게 다녀오라고 손짓하고 식당 정문으로 나왔다. 늦여름 저녁 해는 길어 밖은 아직 밝았다. 규민의 그림자는 동쪽으로 꽤나 길게 자라 있었다. 정문 앞 작은 주차장 한쪽에는 차가 몇 대 서 있었고 반대편에 울타리를 따라 긴 의자가 있었다. 2층 동창회의 시끄러움은 밖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탈출한 듯했다. 규민은 의자 한편에 앉아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켜 시간을 보았다. 저녁 6시 50분. 오늘은 하루 종일 아내와 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주에 온 것도 말하지 않았다. 각오는 했다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주 오랜만에 담배 생각이 났다. 죄책감을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식당 정문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황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와이셔츠 밑단은 바지 밖으로 삐져나와 흐트러져 있었다. 반듯하게 넘겼던 머리카락도 흐트러져 있었다. 결국은 자존심 문제야. 규민은 한숨을 쉬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황준목은 규민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인마. 어딜 갈라꼬?”


소강당에서 대화를 나눌 때와는 다른 태도였다. 격양된 어조였다. 단순히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헤어지며 느끼는 아쉬움이 묻은 말투가 아니었다. 40여 년 전 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아니다. 그냥 그렇게 자라 어른이 된 것뿐이었다. 규민은 묵묵히 다가오는 황준목을 쳐다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젠 내 말도 씹네? 많이 컸네?”


지척에 다다른 황준목은 취해서인지 사투리 억양이 더 진해졌다. 규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그는 악성 민원 학부모를 대할 때처럼 그 분노를 억누르며 답했다.


“배웅 안 해도 된다. 이제 곧 환갑인데 술 적당히 마시고. 진순이 나오면 갈 테니까 올라가 봐라.”


규민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황준목은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 새끼가 쳐 돌았나.”


두터운 몸뚱이에 밀려 규민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놓쳤다. 투둥, 퉁. 두루록. 폰이 의자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지고 잠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마치 점화장치처럼 규민을 발진시켰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황준목의 두툼한 두 손을 힘껏 뜯어내 밀어버렸다. 체중에 걸맞지 않게 황준목은 뒤로 두 세 걸음 물러나며 비틀거렸다. 덕분에 규민의 반팔 와이셔츠 가슴 위 첫 번째 단추도 뜯겨나갔다.


“너, 아직도 철없는 애새끼처럼 구네? 나이도 먹을 만큼 처먹은 게, 안 부끄럽냐?”


규민은 어금니를 씹고 오히려 냉정하게 말했다. 순간 황준목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식당에서 본 눈빛이 우연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듯이. 하지만 결국은 자존심 문제였다. 황준목은 다시 규민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그따위 글 쓴다고 날 엿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니 그때 천섭이가 왜 문집 못 내게 했는지 아나?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거든. 재밌제? 걔도 우리 아버지한테 받아 처먹은 것 많아서 내 말 안 들으면 안 됐지. 아. 니도 이제는 교감이니까 그런 거 더 잘 알겠네."


몸에 잔뜩 힘을 주고 황준목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마지막엔 빈정거림까지 섞어서. 규민은 멱살을 잡힌 채 황준목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천천히 밀기 시작했다. 몸집이 큰 황준묵은 어, 어 하면서 뒤로 몇 걸음 밀려 어느새 주차된 차 트렁크에 등을 기대게 되었다. 피가 머리로 몰렸는지 술이 취해 벌겋던 황준목의 얼굴과 눈 흰자는 검붉어졌다.


"니 그 눈빛은 안 변했더라. 4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구질구질하게 대드는 건 그때랑 똑같던데. 아까 처음 보자마자 딱 알았지. 좆만 한 게 웃기지도 않지."


서로 엉켜 있었지만 힘에 밀려 몰린 황준목은 그러나, 계속 비아냥 대며 규민을 자극했다. 규민은 있는 힘껏 황준목의 목을 조였다. 마치 더 이상 지껄이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차 트렁크에  막혀  목이 눌린 황준목은 켁, 켁거리며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잔뜩 인상을 쓰며 힘을 주던 규민의 얼굴은 순간 차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규민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단어를 골라 말했다.


"너 같은 것들에게는 단순히 재미있는 놀이였겠지. 아니면 자존심 문제 뭐 그런 건가? 근데 그게 나 같은 놈한테는 생존의 문제야. 한 세계가 붕괴되는 경험이 뭔지 감도 안 오겠지. 40년? 50년, 100년이 지나도 그건 복구가 안돼. 누군가를 미워해서 어떻게 살해할지 구체적으로 계획해본 적 있냐? 불안 요소를 소거하고 살해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정말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기분을 네가 알까? 그 문집의 글이 내가 평생 후회할 짓을 못하게 스스로 막으려 했던 발버둥이란 거. 그런 건 평생을 고민해 봐도 너 같은 쓰레기는 알 수 없을 거다.”


황준묵은 고통에 버둥거렸다. 규민은 황준목의 목을 조르던 손의 힘을 풀었다.


"그만하자. 평생 이해 못 할 벌레 앞에서 내가 무슨 헛수고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그냥 꺼져라."


규민은 한걸음 물러났고 황준목은 차 뒤 범퍼에 걸터앉아 목을 주무르며 켁, 켁 거렸다. 규민은 호흡을 천천히 크게 들이켜고 다시 뱉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스마트폰이 떨어진 긴 의자로 걸어갔다. 쪼그려 앉아 의자 밑을 보았지만 떨어진 폰은 보이지 않았다. 의자 주변 여기저기를 살펴도 찾을 수 없었다. 울타리 바깥쪽으로 길게 뚫린 배수구 덮개 안으로 떨어진 건가. 두꺼운 격자무늬 철근 덮개 안으로는 어두컴컴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꽤나 깊었다. 황준목은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취기 때문인지 이제는 아예 바닥에 퍼질러 앉아 차범퍼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규민은 다시 정문으로 들어가 근처 종업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종업원은 그 배수로는 학교 뒤편 작지만 깊은 천으로 흘러가니 떨어뜨린 스마트폰을 찾기는 쉽지 않을 거라 했다. 식당에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며 종업원은 멋쩍게 사과했다. 하는 수 없지. 규민이 정문으로 다시 나왔을 때 맞은편에서 걸어 들어오는 황준목을 마주쳤다. 규민은 황준목에게 눈길도 주고 않고 지나쳐 나왔다.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자존심보다는 목숨이 더 소중하지. 처음 정문을 나왔을 때 앉은 긴 의자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휴우. 한숨이 나왔고 동시에 진순이 정문에서 나왔다.


“야. 나오다 황준목 봤는데 아는 체도 안 하는데? 너도 봤냐?”

“아. 후우. 신경 쓰지 마라. 일진놀이에 아직도 취해 있나 보더라. 그나저나 나 현금이 없어서 그러는데, 올라가면 갚을 테니까 한 5만 원만 빌려줘. 아니다. 기름도 넣어야 되니까 10만 원만.”

“아이고, 가지가지한다. “


규민은 멋쩍게 웃었고 진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품에서 지갑을 꺼내 지폐를 규민에게 건넸다.


“고맙다. 날도 어두워졌네. 갑시다.”

“나는 내일 오전에 볼일이 있어서 바로 밤기차로 서울 올라가야겠다. 넌 본가 가서 자야지.”

“아. 그래? 나는 시내 찜질방에 가려고. 본가는 지금 술 먹고 가기 좀 그래. 내 차 타고 역까지 가자.”

“됐다. 나 기차 예약했는데 시간이 좀 있어서. 술도 깰 겸 미주 구경도 할 겸 걸어서 갈란다. 넌 꼭 대리 부르고.”

“그래. 그럼 조심히 올라가고. 연락할게.”


규민과 진순은 학교 정문까지 걸어갔고 그곳에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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