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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14. 2023

4. 떼구루루루루, 툭.

[단편소설] 탄피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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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oduduking/77


https://brunch.co.kr/@oduduking/78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사단장 1호차가 지나간 후 라일종 상병은 자신의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덩그러니 초소 밖에 서 있었다. 그러나 1분이나 지났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일종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둠 속에서 원숭이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다시 그를 갈구려고? 심심해서? 혹시, 사과라도 하려고? 저 인성으로 그럴 일은 없다. 어슬렁 초소 밖으로 나온 라 상병은 아무 말 없이 앞 뒤로 왔다 갔다 하다가 멈춰서 정문 밖을 바라보았다. 역시 심심해서 나왔구나.


그는 기회다 싶어 계획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할지 의문이었지만 소총을 직접 만져보며 느꼈던 감각은 가능성이 없진 않다 말하고 있었다.  공포탄이니 누가 다칠 일도 없다. 깊은 야간에 누가 더 있겠냐만은 그는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위병소 초소의 어두컴컴함과 정문 밖 주유소의 불빛. 마치 어두운 동굴 속과 저 멀리서 빛나는 해방의 입구 같았다. 아직 겨울을 마무리하지 못해 작은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곳과 멀리서 웅웅 거리는 음악소리와 가끔 쎙 하고 지나가는 차소리가 들리는 저곳. 죽음과 삶의 경계인가?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라일종의 정문을 향한 시선은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듯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 집중했다. 인간의 몸속 정밀한 근육과 뼈, 신경다발 같은 게 아니다. 단순한 기계 장치였다. 완전히 보이진 않더라도 그 물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다면 가능했다. 앞에선 라일종의 구부정한 세로와 총기의 비스듬히 기운 가로가 겹친 실루엣이 여전히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틀어진 십자가 같았다. 그는 라 상병의 옆구리에 걸린 소총을 생각하며 오른팔을 올렸다. 마음속 시선은 저쪽 오른편 중앙 즈음 방아쇠 위쪽에 있는 조정관으로 향했다. 그래 거기다. 그는 힘을 주었다. 몸의 근육과 관절에 주는 방식과는 다른,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힘주기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느낌이 들었다. 됐나? 됐나?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미 피부의 땀구멍에는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두 번째 단계로 돌입했다.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고 조정관에서 조금 밑으로 생각을 옮겼다. 만약 조정관이 단발이나 연발 쪽으로 틀어졌다면 방아쇠를 움직일 수 있다. 라일종이 손가락을 걸고 있을 가능성도 없다. 그는 또다시 집중했다. 그때 라일종이 몸을 틀어 그를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노려보는 걸 느낀 듯했다.


"너 뭐 하냐?"


그와 동시에.


"탕!"


고요한 위병소로 경쾌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하이바를 쓰고 있는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는 씨익 웃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라일종의 소총에 불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그의 몸이 살짝 뒤로 튕겼다. 흐릿한 화약 냄새가 나며 위병소 민원 창구 창문이 팍 열렸다.


"뭐야?!"


위병장교가 좁은 창문 밖으로 나올 기세로 외쳤다. 동시에 위병소 지붕에 달린 강한 라이트도 켜졌다. 위병조장은 아예 위병소 밖으로 뛰쳐나왔다. 눈이 부신 라 상병은 한 손으로 눈 주위를 가리고 손그늘 사이로 그와 위병장교와 위병조장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본 것일까. 확신할 순 없었다. 방금까지 어두웠고 그가 오른팔을 들고 손바닥을 라 상병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더욱 가려져 있었을 테다.


"오발! 오발입니다. 총. 총이 이상해요!"


초소 앞까지 나온 위병조장을 향해 원숭이는 허둥지둥 해명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것도 모른 척 가만히 서 있었다. 모르는 척, 순진한 척, 미안한 척. 이등병 생활을 하며 단련된 척척척. 그는 능숙했다. 아무도 그를 의심하거나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라일종 상병과 위병조장, 그리고 잠시 후 위병소 밖으로 나온 위병장교는 무언지 모를 이야기를 계속 떠들었다. 그는 그 근처에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듯이, 그러나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서 있었다. 잠시 후, 군용 레토나가 붉은빛을 반짝거리며 달려왔고 당직사령과 간부 몇 명이 내렸다. 대충 들리는 이야기로는 사단 내 각 부대별로 긴급연락망을 가동했지만 다행히 거수자가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것과 술 취한 사단장이 격노했다는 것 정도였다.


대략 30분 정도 여러 사람이 왔다 가고 라일종과 위병장교는 땀 흘려 해명하고 닦달하다 어느새 위병소 지붕의 라이트가 꺼졌다. 혼란은 거칠지만 짧게 끝났다. 이제 대략 1시간 정도 남았으려나. 그는 근무가 끝날 때까지 편안하게 초소 안에서 공상을 하거나 초소 옆을 조용히 왔다 갔다 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반면 라일종은 아예 초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소총은 비스듬히 기대어 놓고 등을 기대 바닥에 앉아 멍 때리는 게 분명했다. 어두운 초소 뒤쪽 그림자 사이로 원숭이의 반짝이는 군화가 언뜻 보이는 듯했다.


소문은 빨리 퍼졌다. 다음 근무자로 도착한 김이환 병장은 근무교대를 하고 나오며 말했다.


"야. 너 당겼다매. 흐흐흐."


라일종은 작게 욕을 웅얼거리는 듯했으나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위병소 내부로 들어온 그와 라일종은 위병조장에게 근무 종료 신고를 했다. 위병장교는 사령부로 끌려갔는지 자리를 비웠다. 장전된 탄피를 빼서 탄창에 넣었다. 소총을 몇 번 격발해 약실이 빈 것을 확인했다. 찰각찰각. 근무 나가며 걸었던 길을 되돌아 막사로 돌아오는 길은 짧았다. 라일종은 침묵한 채 걸었고 그는 그림자처럼 그를 뒤따랐다.


막사가 가까워옴에 따라 라일종은 몇 번 한숨을 쉬었다.


"아, 씨발. 분명히 안 당겼는데."


스스로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미 벌어진 일. 라일종은 순순히 막사 2층 중앙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에 위치한 당직실에는 당직사관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원숭이와 그는 조용히 들어와 탄창을 함에 넣고 소총을 거치대에 옮겼다. 철컥철컥 투둑투둑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에 사관은 눈을 떴다. 깨어난 그는 라일종 상병에게 냅다 욕을 박았다.


"씨발아. 거수자나 잘 보랬지 공포탄 쏘라고 했냐?"

"상병 라일종. 죄송합니다."

"넌 영창이야, 기대해."

"..."


기가 죽은 원숭이는 처량했다. 일을 벌인 그는 굳이 라 상병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섣부르게 위로한답시고 말을 건넸다 어떤 화풀이를 당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 넌 당할만했다. 그러게 그런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냐고. 사실 지금까지 그는 능력을 사용해 누군가를 골탕 먹인 적이 거의 없었다.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별 볼 일 없다 여길 뿐 아니라, 그 말고도 간혹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자들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미디어에서 마력을 지닌 자들을 다루는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이에 관해 크게 관여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나름 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이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있었다. 그를 포함한 대다수 마법사의 마력은 형편없었으므로 보통사람들은 마법에 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완전범죄를 저지른 그는 라일종에게 '수고하셨습니다' 속삭이고 자신의 생활관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천장에 흐릿한 붉은 점호 등만 켜져 있었다. 모두들 잠들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전투화 끈을 풀고 침상 위로 올라 환복 했다. 하이바를 벗어 관물대에 넣고 엑스반도를 벗는데, 작은 반짝임과 함께 무언가 침상 밖으로 떨어졌다.


떼구루루루루, 툭.


어? 뭐지? 그는 엑스반도를 내려놓고 침상가로 가서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흐릿하게 반짝이는 작은 것을 주었다. 공포탄 한 발. 이게 왜 여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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