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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07. 2023

3. 사악한 원숭이와 함께 한 야간 위병 근무 (2)

[단편소설] 탄피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https://brunch.co.kr/@oduduking/76


https://brunch.co.kr/@oduduking/77



[단편소설] 탄피

“야.”


분명히 갈굼이다. ‘야’ 딱 한 소리에 담긴 억양과 음색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일병 임재중.”

”정지원이 행사복에 뭔 짓을 한 거야? “


아. 그걸 또 어떻게 봤지? 분명 흔적이 거의 안 보일 텐데. 그는 라일종의 눈썰미에 감탄했다.


“아. 그거. 정지원 이병이 다림질할 때 실수로.”

“야, 씨발 드럼파트 군장 담당이 누군데?”


라일종 상병은 그의 말을 끊고 따졌다.


“일병 임재중. 접니다.“

“근데 지원이가 왜 다리미를 잡아!“


그럼 외박 간 내가 잡으리오. 슬며시 빡침이 올라왔다. 지난 주말 그가 외박을 나간 사이에 작은 행사가 있었다. 그를 대신에 행사복을 준비하던 서툰 파트 후임이 본인의 행사복 등에 다리미 자국을 내는 실수를 한 것이다. 다행히 훼손이 심하지 않고 티도 많이 나지 않았다. 이미 사정을 들은 드럼파트장과 군악대장도 크게 나무라지 않고 넘어간 일이었다. 근데 지가 뭐라고. 짜증이 났다. 그러나 그는 해명을 하지 않았다. 모든 해명은 또 다른 꼬투리와 갈굼의 단초가 될 뿐이니.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인생 끝나나?

“아닙니다.”


그는 어금니를 살짝 깨물고 입을 다물었다. 물론 눈빛과 표정은 관리하면서. 저 인간이 흥미를 잃고 어서 빨리 관뒀으면 하고 바랐다.


"근데 씨발 왜 행사 있는 주말에 외박을 나가고 지랄이냐?“


이젠 부모님 면회로 나간 외박까지 태클이 들어왔다.


“아. 부모님께서 면회를 오셔서…”


스스로 자신의 인내심에 뿌듯함을 느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갈굼도 잘 참고 견디다니. 더군다나 끝말을 흐리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갈굼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말투. 입을 닥친 라일종 상병을 보니 무슨 마법 같았다. 길지 않은 군생활이지만 좀 더 타인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저런 작은 불의(不義)도 참아야 하는 이곳이 다시 한번 혐오스러웠다.


라일종 상병은 그를 잠시 째려보고는 몸을 정문 쪽으로 틀었다. 분명 또 다른 꼬투리 거리를 찾고 있을 것이다. 계산을 해보니 그 외 라일종이 태클 걸만한 일을 한 건 없었다. 행사 때 실수한 기억도 없고, 악기와 부속품, 악보 등을 안 챙긴 적도 없다. 일병을 달 무렵부턴 중대 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그 뒤를 이어 들어온 후임들에게도 신뢰와 지지를 꽤 받았다. 군악대 내에서 후임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 저 원숭이보다 오히려 나중에 오래 왕고를 달게 될 그의 입지가 더 컸으리라. 그때 원숭이가 다시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사바나 초원에서 맹수와 마주쳐 튈 준비를 하는 가젤처럼 마음을 한껏 움츠렸다.


“야, 너 저기 바리케이드 앞까지 가서 거수자 한 번 해봐.“


어둠 속에서 라일종의 오른팔 실루엣이 정문 쪽을 가리켰다. 뭐라고? 나보고 거수자를 하라고? 도대체 왜? 그는 멍하니 서있었다.


“야. 내 말 안 들리냐? 가보라고.”


라일종이 짜증 섞인 어투로 보챘다.


"정문으로 말입니까? 초소. 벗어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금니로 꽉 깨물고 이 사이로 미묘하게 쉬쉬거리며 말했다. 근무 중에, 특히 야간에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는 건 근무 수칙에 어긋난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여긴 위병소이고 정문 쪽으로 나가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 탈영을 하라는 뜻이었다. 미친 거지.


"위병장교님이 뭐라 하실 거 같습니다."

"하 씨발. 이 새끼가 말대꾸를 하네."


터벅, 터벅. 초소 그림자를 지나며 라일종 상병의 실루엣이 전투화부터 천천히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원숭이를 닮은 검은 얼굴이 그의 1m 앞으로 다가왔다. 라일종이 자신의 총구 방향을 앞으로 틀어 그의 소총 몸통을 탁, 탁 때렸다. 쇠붙이끼리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렸다.


"위병장교는 쳐 자고 있고. 내가 가라고 하면 가면 되는 거야 새끼야. 씨발 내가 진짜 공포탄이라도 쏘겠냐? 병신이야? 생각을 좀 해."


툭, 인내심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며 숨을 들이켰다. 솔직히 덩치가 밀리는 것도 아니고. 나이도 같다. 아니, 언뜻 듣기론 그가 생일도 빨랐다. 고작 군생활 반년 일찍 시작한 원숭이 같은 새끼가 쓸데없는 계급 놀이에 빠져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전담 마크했던 채현주 병장도 이렇게 기분 나쁘게 그를 건들진 않았다.


버릇을 좀 고쳐줘야겠다. 그냥 강하게 겁 주면 쫄지 않을까? 어차피 새벽, 둘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감정을 드러내려 할 때, 라일종 상병이 뭐라 말을 이어나가려 할 때, 번쩍! 정문 쪽에서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쳤다. 동시에 위병소 민원 창구 창문이 팍 열리며 위병장교가 소리쳤다.


"야! 위병소 차단봉 치워! 사단장, 사단장!"


이 새벽에 사단장이 들어오다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둘은 기계처럼 잽싸게 몸을 날렸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는 차단봉을 밀어 입구를 열었다. 라일종은 자신의 초소 앞으로 가 앞에총 자세로 경례할 준비를 하였다. 차단봉을 끝까지 민 그 역시 자신의 초소 앞으로 뛰어가 라일종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차가 위병소 초소를 지나갈 때에 맞춰 둘은 '하나, 둘, 셋' 신호를 맞춘 후, 한마음 한뜻으로 우렁차게 경례하였다. '충! 성!' 창문이 닫힌 세단 안에서도 잘 들릴 정도였다.


사단장의 검은 세단은 조용히 엔진소리를 남기고 위병소를 지났다. 늦게까지 회식을 마치고 지금 들어오는 건 아닐까. 멀어져 가는 빨간 테일 라이트를 바라보다 그는 다시 차단봉을 당겨 입구를 닫았다. 라일종 상병도 자신의 총기를 허리에 끼우고 초소를 서성였다. 위병소 민원 창구 창문이 드르륵 닫혔다. 자기 위치로 돌아간 그는 작은 결심을 했다.




사단장 공관에 도착한 검은 세단의 엔진이 꺼졌다. 운전석 문이 열리며 후다닥 운전병이 차 뒤편으로 돌아 반대편 뒷좌석 문을 열었다. 검은 구두의 오른발이 척하고 차 밖으로 나와 흙바닥을 디뎠다. 비틀거리는 사단장을 부축한 운전병은 공관 현관으로 걸었다. 그때. 깊은 밤의 침묵 사이로 멀지 않은 곳에서 ‘탕’하고 경쾌한 총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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